아버지 3주년 기일 한국 방문 / 이정호

 

  교통사고후 필요한 장루복원수술을 마치고 몸이 어느정도 회복되었다. 그래서 5 20 아버지 기일에 맞추어 한국을 가기로 결정하였다. 주위사람들은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서 한국 가기에는 무리라고 생각하였다. 나도 걱정은 조금 되었지만 의사가 비행기를 타도 괜찮다고 하였기 때문에 가도 괜찮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비행기에 오랫동안 앉아서 갔지만 예전보다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편안한 기분으로 있었다. 비행기는 50 늦게 출발하였지만 오히려 1시간 일찍 도착하였다. 그래서 아버지 제사에 너무 늦지 않게 있게 되었다.

 

  리무진 버스를 타고 도심공항 버스 터미날에 가니 자형이 마중나와 있었다. 집에 도착하니 아버지 제사상이 이미 차려져 있었다.  어머니께 큰절을 드렸다. 어머니는 무릅관절 수술후 퇴원하신지가 얼마 되지 않으셔서 불편해 보이셨다. 오래간만에 어머니를 직접 있어서 기뻤다.

 

  다음날 아침 아버지 산소에 성묘를 하러 갔다. 아내와 , 형수와 함께 갔다. 3년만에 다시 이곳을 찾아 것이다. 예전에 이곳에서 어머니께서 무척 슬피 우셨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2년정도 슬픔에 잠기셨는데 이제는 슬픔에서 벗어나셨다.  간단한 음식을 차리고 절을 후에 매트에 잠시 앉았다. 형수가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에는 어렵고 깐깐한 분이 셨는데 이렇게 돌아가시고 계시니 인생이 허무한 같다고 했다.

 

  요리하는 것은 취미이다.  내가 요리를 하는 것은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있고 재미도 있어서 이지만 어머니께 맛있는 음식을 해드리고 싶은 것도 하나의 동기 부여가 되었다. 그동안 유튜브를 통해서 요리를 배우면서 아침마다 많은 음식을 만들어 왔다. 꽃게탕으로 시작해서, 녹두 빈대떡, 약식, 갈치조림, 해물 파스타, 갈비찜등을 만들었고 만든 마다 노트에 재료와 조리 방법을 메모해 왔다. 메모해온 요리 가짓수를 세어보니 48가지였다.  마지막 48 요리는 갈비찜이었고 장모님한테도 드렸는데 간이 되고 맛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어머니께 어떻게 음식을 해드릴 있을 기회를 엿보았다. 아침은 형수가 일찍 나와서 음식을 준비했다. 우리를 위해서 맛있는 음식을 특별히 준비하기도 하였다. 내가 음식을 만들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점심은 나가서 사먹는 경우가 많았다. 어머니가 좋은 맛집 식당에서 음식을 주시기도 하였다. 친구들을 만나거나 모임이 있어서 밖에서 먹는 경우가 많았다. 어머니께 음식을 해드릴 기회가 생기지 않았다. 다음에 한국에 나올 기회에 어머니께 맛있는 음식을 해드려야 같았다.

 

  어머니는 연세가 93세이시고 아직도 건강하시다. 어머니의 그런 보습을 있는 것만으로 기뻤고 한국에 나온 보람을 느꼈다. 나이가 많으시면 누구도 날을 예측 못한다. 살아 계실때 자주 뵙고 연락을 햐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