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에 대하여 / 이정호

 

  미국 연방 대법원은 1973  낙태에 관해 역사상 중요한 판결을 한다.  이것은 웨이드 (Roe v. Wade) 사건으로 불리는데 여성은 임신 6개월까지 임신중절을 선택할 헌법상의 권리를 가진다고 판결하였다또한 판례에서는 출산 3개월 동안은 낙태가 금지될 있다고 판결하였는데, 의학 전문가들은 3개월 동안을 태아가 자궁 밖에서도 생명체로서 존중될 있는 기간이라고 인정하였다.

 

  낙태죄 폐지는 세계적 추세이다. 1960년대 낙태죄 폐지 운동이 부상하면서 1985 36 이상 국가에서 관련법이 바뀌었다. 나라들은 대부분 낙태를 보건과 의료 서비스의 일부로 관리하고 있다.

 

  현재 임신부의 요청에 따른 낙태를 허용하거나 처벌하지 않는 나라는 60여개국이며, 경제적 사유가 있을 때에 낙태를 허용하는 국가는 10여개국이다. 반면 바티칸 시국, 몰타, 도미니카 공화국, 엘살바도르와 니카라과 5개국은 낙태를 예외 없이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한국은 2021 1 1일부터는 임신중절이 기간이나 이유 등의 제한 없이 전면 합법화되었다. 그러나 여성의 안전한 임신중절의 권리를 확실하게 보장하는 대체 입법이 마련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임신중절에 관한 입법 공백은 아직도 완전히 해소되지는 못했다.

 

  그런데 미국에서 역사의 흐름과 역행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미국 텍사스주에서 2021 9월부터 6 이상의 태아 낙태를 금지하는 'Heartbeat Bill(심장박동법)' 시행되었다. 대부분의 여성이 6 이내에 임신 사실을 인지하고 낙태를 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사실상 낙태 금지법으로 여겨지고 있다. 게다가 근친상간, 성폭행으로 임신한 경우에도 낙태를 없도록 규정했다.

 

  이것은 1973 Roe v. Wade( 웨이드) 사건 이래로 반세기간 낙태를 여성의 자기결정권으로 보고 허용해왔던 미국 대법원의 중대한 판례를 정면으로 뒤집은 것이다.  미국 법무부가 텍사스주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미국 대법원이 기각했다. 대신 낙태 시술자들이 하급법원에 이의를 제기할 있도록 했다.

 

   이런 일들이 가능한 것인가.  미국 연방 대법원은 대법원장과 8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되어있다. 미국은 오랫동안 5-4 보수 성향 대법관이 연방 대법원을 이끌어 왔다.  때때로 로버츠 대법원장이 진보쪽으로 손을 들어줘서 중요한 판결을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임기 말인 지난해에 별세한 진보 성향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후임으로 보수색이 강한 에이미 코니 배럿이 기용되었다.  이로써 미국 연방 대법원은 6-3으로 보수 성향의 대법관이 지배하게 되었다.

 

  이제 낙태와 관계된 실제 예를 보기로 하자.

   주위에 혜정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녀는 한국에서 조그만 무역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2014 가을 그녀는 갑자기 그녀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계획에 없던 임신에 그녀는 당황하게 되었고 낙태를 하기로 결정했다.  혜정씨는 산부인과 3곳을 돌아다녔다. 울면서 애원했지만 의사들은 돈을 벌며 아이를 키울 있을 나이라며 수술을 거부했다.

 

  임신 3개월 차까지 산부인과를 전전하던 그녀는 마지막 병원에서 보호자를 데려오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데 점점 뜸하던 남자 친구가 아예 연락이 두절되어 버렸다.  그녀는 수술을 포기할 밖에 없었다. 다니던 직장도 그만 두었다.

 

  혜정씨는 앞이 깜깜했다.  모든 것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그녀의 친구가 로스엔젤레스에 살고 있었는데 그곳으로 가기로 했다.  친구집에 도착한 후에 낙태하는 것을 생각해 봤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어느새 세월이 많이 흘러 버렸다.

 

  그녀는 아이를 출산했다.  그리고 엘에이 남쪽 Santa Fe Spring 있는 의류공장에 직장을 얻었다. 친구 집에서 나와 한인타운에 있는 주택 뒤에 거라지를 개조해서 만든 조그만 방을 얻었다. 혜정씨는 한국에 있을 드문드문 교회를 나갔다.  집근처에 많은 한인 교회들이 있었다.  그녀는 이제 교회를 열심히 나가기로 했다.

 

  그런데 그녀에게 우울이 엄습해 왔다.  자기의 처지가 애처롭고 슬프게 보였다. 그녀를 쥐어짜듯이 마음의 아픔이 떠나지를 않았다. 여기서 헤어나야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자신을 통제할 수가 없었다. 세상에 살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혜정씨는 죽기로 마음먹었다.  수면제를 구입했다.  그리고 그것을 다량으로 먹었고 그녀의 의식은 사라졌다. 그녀는 이세상을 떠날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다행히 주인집 아주머니가 쓰러져 있는 그녀를 발견했다.

 

  혜정씨는 이제 어떻게든 자기의 어려운 처지를 극복하려 하였다.  심리상담을 받기로 했다.  한인타운 근처에 알려져 있는 심리상담사에게 정기적으로 갔다. 그리고 교회를 열심히 나갔고 하나님께 매달리며 끊임없이 기도했다.

 

   그녀의 간절한 기도후에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혜정아, 내가 너같이 힘들고 병들고 소외되고 외로운 자들을 위해 땅에 왔다.  수정된 순간부터 생명으로 간주하여 낙태한 것을 죄로 여기는 것이 내가 안식일에 병든 자를 고치는 것을 바리새인이 안식일을 범했다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나만 믿고 따르라.  내가 너를 보듬어주고 위로해주고 항상 너의 곁에 있을 것이다.”

 

  “주님 감사합니다.”

 

   혜정이는 끝없이 눈물을 흘렸다.

 흐르는 그녀의 눈물속에 혜정씨는 조그만 바램이 생겼다

 

  “다시는 나와 같은 불행한 사람이 생기지 않게 해주세요.  반세기간 낙태를 여성의 자기결정권으로 보고 허용해왔던 미국 대법원의 중대한 판례를 역행하는 일을 하지 않게 하여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