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유럽도시기행 1’ 읽고 / 이정호

 

  파리에 여동생이 살고 있다. 동생을 보러 유럽에 가고 싶다. 오래전에 파리에 보았지만 동생을 본지가 오래되었다. 겸사겸사해서 동생도 보고 가는 김에 주변 국가도 돌아보고 싶다. 유시민의 유럽도시기행 1’ 눈에 띄었다. 책을 읽으면 나중에 유럽 여행을 도움이 같았다.

 

  첫번째 그는 그리스 아테네를 여행하였다. 그는 아테네를 멋있게 나이 들지 못한 미소년으로 제목을 지었다.  그는 어디를 가든 그리스의 대지는 인생의 모진 풍파를 견디고 이겨내느라 기운을 써버린 사람을 떠올리게 했다고 한다.

 

  우리가 아는 고대 아테네는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대부분 B.C, 5세기에 만들어졌다. 전성기의 아테네는 민주정이어서 왕이 없었다. 파르테논은 아테네가 스파르타에 패하는 순간 빛을 잃었다.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하자 아테네 여신은 파르테논에서 쫓겨났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기독교 예배당이 되었던 파르테논은 오스만 제국의 술탄 에메르 2세가 그리스 본토를 정복한 이슬람 사원으로 바뀌었다.

 

  소크라테스에게 실형을 선고한 종교재판은 프닉스 언덕에 나지막하게 펼쳐진 바위절벽 아래 강당에서 열렸다. 그가 당근즙을 마시고 죽은 감옥도 근처에 있었다고 한다.

 

  대표적인 폴리스였던 아테네는 페르시아 전쟁이 끝난 B.C. 479년부터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끝난 B.C. 431 까지 번영을 눌렸다. 파르테논, 민주주의, 공연예술, 철학, 과학, 헤로도토스의 역사까지 우리가 아는 아테네의 문명적 성취는 대부분 그때 것이다.

 

  철학과 과학과 민주주의가 탄생한 고대도시, 1 500 망각의 세월을 건너 국민국가 그리스도의 수도로 부활한 아테네는 비록 기운이 떨어지고 색은 바랬지만 내면의 기품은 지니고 있었다.

 

  두번째로 로마는 뜻밖의 발견을 허락하는 도시로 시작한다. 로마는 아테네와 달랐다. 만남에서부터 곧바로 존재감을 확실하게 내뿜었다. 저자는 다음날 아침 호텔을 나서면서 3일짜리 로마패스를 구매했다고 한다. 걸어서 다니기에 도시는 너무 컸다. 이틀 넘게 머문다면 모든 대중 교통수단을 이용할 있고 입장료 할인 혜택도 따라오는 로마패스를 사는 것이 무조건 이익이었다.

 

  저자는 아테네의 슈퍼스타가 파르테논이라면 로마의 슈퍼스타는 콜로세오라고 한다. 로마제국은 건축 기술의 발전에 획을 그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아치와 돔이다.  콜로세오의 아치와 파르테논의 돔은 유럽건축에 크고도 지속적인 영향을 주었다. 

  이탈리아 공화국의 역사는 70년이 겨우 넘으며, 영국을 포함한 통일국가의 역사도 15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통일의 계기는 나폴레옹 전쟁이었다.

 

  바티칸은 세상에서 하나 뿐인 곳이다. 로마에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교황이 다스리는 별도의 도시 국가인데, 특이한 국가의 영토는 겨우 0.44제곱 킬로미터이고, 1천명이 겨우 넘는 시민권자의 직업은 성직자, 직원, 근위병이 전부다.

 

  바티칸 박물관의 손꼽는 인기스타는 시스티나 예배당이었다. 천장에는 미켈란젤로가 4년동안 척추가 휘고 시력이 약화하는 고통을 감수하며 그렸다는 천지창조가 아래에는 교황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워서 그린 최후의 심판이 있다. 대성당의 최고스타는 단연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조각상이었다.

 

  피오리 광장의 조르다노브루노, 아무도 그를 쳐다보지 않았고 그는 모든 것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철학과 과학 이론을 통째로 부정하라는 교황청의 요구를 거부했다. 종교재판소가 사형을 선고한 열흘만에 교황청은 피오리 광장에서 입에 재갈을 그를 불태워 죽였다.

 

  세번째로 이스탄불은 단색에 가려진 무지개로 제목을 잡고 시작한다. 역사가 무려 2 700년이나 되는 이스탄불의 최초 이름은 비잔티움이었고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이름이 바뀐 4세기부터 15세기 까지는 동로마제국 (비잔틴제국) 수도 였으며, 다음 500년은 오스만 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이었다. 오랜 세월 경제적, 문화적 번영을 누렸던 도시는 20세기에 터키 공화국의 영토가 국제도시의 면모를 거의 잃고 말았다. 이스탄불 인구는 1 500 정도 되고 인구의 2/3 유럽 사이드에 살고 1/3 아시아 사이드에 거주한다.

 

  이스탄불 관광의 꽃이라는 보스포루스 해협의 유람선을 빠뜨릴 없었다. 지질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보스포루스 해협은 원래 육지의 협곡이었지만 7 500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상승했을 바닷물이 흐르는 해협으로 바뀌었다.

 

  저자는 낯선 도시에서 눈썰미와 요령만으로 맛집을 찾는데 성공하면 세가지 즐거움을 얻는다고 한다. 혀로 맛보는 기쁨, 배로 느끼는 만족감, 그리고 마음이 누리는 뿌듯함이다. ‘그래. 이스탄불은 광어 숯불구이지! 라고 말한다.  화덕에서 끊이는 터키식 커피도 마셔볼 하다고 한다.

 

  네번째 도시로 파리는 인류문화의 최전선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지금 시점에서 어떤 도시를 지구촌의 문화수도로 정한다면 어디가 좋을까. 저자는 자기보고 결정하라면 망설임없이 파리를 선택하겠다고 한다. 왜냐하면 파리는 에펠탑이 랜드 마크 1 건축물이니까. 파리에는 박제된 건물이 없었다. 시민들의 일상과 가장 멀리 떨어진 베르사이유 궁전조차, 궁전 건물 모퉁이에 있는 레스토랑과 운하 건너 숲에는 현재의 삶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혁명 이전 정치권력의 민낮은 루브르보다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적나라하게 목격 있었고, 대혁명이후 프랑스 예술은 오르세 미술관에서 여유있게 즐길 있었다.

 

  루브르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은 서쪽 건물 광장의 유라피라미드였다. 산책하기 좋은 파리에서 특히 좋았던 틜르리 정원, 길은 몸과 마음의 모든 감각을 깨운다. 틜르리 정원이 끝나는 지점에 콩고르드 광장이 펼쳐졌다. 대혁명이 터진 광장에는 루이 15세의 기마상이 철거되고 단두대가 들어왔고,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앙투아네트는 단두대에 간격으로 목이 잘렸다.

 

  저자는 콩고르드 광장에서 에투알 개선문이 있는 드골광장까지 2킬로미터 정도 골게 뻗은 샹젤리제 거리를 걸었다고 한다. 광장에서 600미터 떨어진 로터리까지 오른 편에 펼져지는 샹젤리제 정원은 엘리제 궁전의 정원이었다.

 

  앞으로 유럽에 가면 도시의 역사성을 살펴보고 책에서 읽은 것을 기억하면서 여행을 하면 친근하게 장소들이 나에게 다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