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리 티스데일의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읽고 / 이정호

 

  인터넷에서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책들이 소개되었는데 그중에 샐리 티스데일이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눈에 띄었다. 간호사로 일하면서 얻은 경험과 지식으로 내려갔다.

 

  그녀는 사기그릇은 언젠가 깨지기 때문에 아름답다. 사기그릇의 생명력은 위험한 상황에 놓여있다. 우리는 사라지기 때문에 아름답고 영원할 없어 고귀하다고 말한다.

 

  나도 죽는 것에 대해 생각해봤다. 아이가 어른이 되듯이 늙어 죽는 것을 부정한다면 아이가 영원히 아이로 머무를 것이다. 아이가 어른 되어가는 커가는 아름다운 과정이 있는 것은 우리가 언젠가 죽을 밖에 없는 현실을 받아 들이는 것이다. 죽음이 없다면 아이가 없는 것이다.

 

  그녀는 자기 친구 Carol 대해 이야기 한다. Carol 유방암에 걸렸지만 수술을 받고 건강을 회복했다. 판사로 취임해서 업무를 열정적으로 수행했다. 화학요법 치료에 차도가 있어 뒤로 수년을 살았다. Carol 죽지 않으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했지만 내내 죽어갔다. 그점은 Carol 알았고 나도 알았다. 다만 오늘이 그날이 아니길 하루하루 빌었다.

 

  저자는 한때는 죽는게 무척 두려웠다고 한다. 끔찍하리 만치 두려웠다고,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오랜 시간에 걸쳐서 죽음을 똑바로 바라보고, 만져보고, 죽음에 대해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또한 죽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가 존재할 때는 죽음이 오지 않았고 죽음이 왔을 때는 우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육체의 죽음은 분리된 자아의 고통 없는 소멸에 지나지 않으며, 우리의 본질은 우주공간처럼 무한히 펼쳐져 있다.

 

  아픈 사람의 식사를 도와 경우, 무엇을 얼마나 먹을지 결정할 사람은 환자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진짜로 털고 일어나고 싶다면, 뭐라도 드셔야 하는 아니에요?” 라고 따지듯 말하지 마라. 한번은 의사가 오밤중에 별실을 나서며 환자에게 말하라 한다. 오늘 밤에 산소호흡기를 달지 아니면 그대로 눈을 감을 선택하라고. 당신은 의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해고하고 다른 병원으로 옮겨도 무방하다.

 

  임종을 앞둔 시점엔 몸이 몹시 피로해진다. 생명의 기운이 없어지는 , 그게 바로 죽음이다. 환자는 눈을 감기 전에 자질구레한 일을 마무리 짓고 싶어한다. 그런데 마음은 굴뚝같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남은 시간도 얼마 없다. 그러니 죽어가는 사람을 돕고 싶다면, 당사자가 처리하기 어려운 자잘한 일을 도와주라. 편지를 쓰거나 선물을 포장하는 것을 도와주라.

 

  환자가 때로는 갈증을 느끼지만, 물이나 음료가 그들의 갈증을 해소해 주지 못한다. 임종환자가 일주일 이상 전혀 먹거나 마시지 않아도 갈증이나 통증을 호소하지 않고 오히려 평온하게 죽음을 맞는 모습을 간호사와 의사는 수도 없이 목격한다. 임상적으로 탈수증세를 보이는 사람이 때로는 정맥주사제를 맞은 사람보다 오래 산다. 탈수상태가 도움이 될까. 환자를 억지로 먹이려 할때 마다 구역질이 나거나 통증을 느끼거나 호흡이 어려워 있다.  

 

  환자는 흔히 식음료를 끊은 뒤에 몸과 마음이 편해지고, 죽을 때도 평온하다. 버지니아 모리스는 용어부터 바꾸라고 호소한다. 불치병에 걸린 환자에게서 생명유지장치를 떼어낼 , 우리는 플러그를 뽑는 것이 아니라 환자에게 좋은 자유를 주는 것입니다. 과도한 기술과 침습적 치료에서 환자를 해방시켜주는 것입니다. 죽을 자유를 주는 것은 죽이는게 아닙니다. 오히려 돌보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임종을 코앞에 시점에선 이렇게 말하라. “사랑해요. 좋은 곳으로 가실 거예요. 우리 걱정은 하지 말고 편안히 가세요.”

  

  어떠한 설명도 애통을 고쳐주지 못한다. 조언이나 공유도 마찬가지이다. 크나큰 도움은 줄지언정 온전히 고쳐주진 못한다. 애통은 치료해야 질병이 아니기 때문이다. 애통은 칼이나 몽둥이에 의한 상처와 같다.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아물지만 흉터가 남는다. 부위는 결코 예전과 같이 똑같지 않다. 사람도 앞으로 나아가긴 하지만 예전과 같은 사람이 아니다.

 

  애도 카운셀러 제임스와 러셀 프리드먼은 사람들이 애통한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이렇게 진단했다. “이미 벌어진 일이 다르게, 나은 방식으로 벌어지길 염원하고 미래의 실현되지 않을 희망과 꿈과 기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는 불건전한 관계나 갑작스러운 죽음에서는 물론이요, 건전한 관계나 예견된 죽음에서도 적용될 있다. 관계가 완전히 마무리 되지 못하고 중간에 정리 됐기 때문이다. 애통에서 벗어나려면 다른 혹은 나은 어제 내려놔야 한다고 말한다.

 

  가족이 미래에 겪을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나 유언을 미리 작성해 두는 것이 필요하다. 원한다면 장기와 조직기증을 미리 작성할 있다.

 

  사람이 죽어갈 유언이나 마지막 말을 남기며 죽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의식이 없는 상태나, 의식이 혼미한 상태로 죽어간다. 그래서 미리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