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첫 여행, 텍사스에서 캘리포니아까지

 

 

 

 

 낯선 고장, 낯선 사람들, 여행이란 익숙한 것을 떠나 낯설음을 맞보는 시간이리라. “낯설게 하기란 문학 용어가 있다. 친숙한 사물이나 인습화된 관념을 특수화하고 낯설게 함으로써 새로운 느낌이 들도록 표현하는 방법을 말한다. 답습하지 않으려는 일종의 파괴 미학이라 할까. 이런 면에서 예술가들은 끝없는 변화를 모색하기에 진보적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낯설게 하기가 능동적이라면 낯설음은 수동적이다. 여행은 희한하게 이 두 가지를 다 아우른다. ‘낯설게 하기위해 자발적으로 친숙한 공간을 떠나지만, 타지에서 맞보는 낯설음은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 새로운 느낌과 경험을 위해 편안함을 유보하고 불편함을 감수하는 게 여행이리라.

 여행이 주는 낯설음의 의미는 두려움과 신비로움을 함께 지닌다. 미지 세계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보다 낯설음이 주는 설렘과 기대가 더 크기에 우리는 여행을 떠나는 것이리라.

 근래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일상생활 중 가장 큰 행복감을 느끼는 것은 여행이라 한다. 여행에서 맞보는 해방감과 새로운 체험 때문이란다. 물론, 돈과 시간의 제약이 있어 여행은 모든 사람의 로망이다.

 여행에는 단체 관광도 있을 것이고, 가족 여행도 있을 것이고, 친구나 연인과 떠나는 여행도 있을 것이고, 혼자 떠나는 여행도 있을 것이다. 각기 의미가 다르겠지만 여기서는 젊은 날, 혼자 떠나는 여행에 대한 탐색이다. 존재론적이고 철학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스물한 살 먹은 대학생 아들 녀석이 혼자서 텍사스에서 캘리포니아까지 보름간 운전하며 오고 있다. 겨울방학이고 크리스마스라 집에 오는 길이지만 이번만은 비행기가 아닌 직접 운전해서 오고 싶다는 거였다. 이곳저곳을 들려 하이킹도 하고 트레킹도 하고 등산도 하며 온다는 것이었다. 일종의 도전이다. 대담함과 사내로서 배짱(호연지기) 같은 것을 엿볼 수 있어서 흐뭇했지만, 몹시 걱정스럽다. 이 녀석이 태어나 생전 처음 하는 여행인데 너무 스케일이 크고 무모한 게 아닌가 싶어 말리고도 싶었지만 눈 딱 감고 허락했다. 그것은 혁명가 체 게바라(1928-1967.아르헨티나)가 생각나서다. 그는 의대를 다니다 방학 때 오토바이를 타고 남미 대륙을 여행했다고 한다. 이때 인디오들의 비참한 삶을 보고 현실에 눈을 떴다고 한다. 물론 아들의 여행이 그의 여행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그가 한 말이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버리지 말자”. 아직도 설레는 말이다. 나는 지금도 체 게바라를 비롯해, 구조주의 철학자 미셜 푸코(1926~1984.프랑스), 독립운동가 신채호(1880~1936), 같은 아나키스트(Anarchist)들을 사랑한다.

 겨울이라 안전을 염려하자 인터넷으로 모든 정보를 수집해 공부하고 꼼꼼하게 준비했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나를 설득했다. 그러나 괜히 승낙했다는 후회를 하고 밤잠을 설치며 아들의 무사 도착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이제 아들 녀석이 정신적으로 완전히 내게서 독립한 성인이란 걸 기꺼이 인정한다. 정서적으로 자립한다는 것은 아비와 아들의 수직적 관계를 넘어, 인간 대 인간의 수평적 관계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오클라호마주, 뉴멕시코주, 콜로라도주, 유타주, 네바다주를 경유해서 오는 길이다. 에어비앤비를 이용해 구한 이삼십 불짜리 숙소에서 자고, 마지막 밤 네바다주에서는, 야간에 트럭과 여행 차량을 위해 개방한다는 월마트 주차장에서 자고 온단다. 혼자 운전하고 혼자 자는 게 무서울 텐데 시도해 보겠다는 것이었다. 오늘 아들 녀석이 네바다주에 도착했다. 유타주의 눈길을 올 때는 무신론자인 내가 근심과 초조함에 신께 기도를 다 했다.

 하이킹, 트레킹, 등산을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힐 수도 있다. 무엇 때문에 인간들은 때때로 안락한 일상을 뒤로하고 스스로를 불편함과 위험함에 노출시키는가. 먼먼 조상들이 먹이를 찾아 산과 들을 헤매고, 맹수들에게 쫓기던 생존방식과 문화가 우리 DNA 깊은 곳에 남아있어 일어나는, 집단 무의식의 발로 아닐까.

 아무도 모르는 낯선 도시에서,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생경한 거리에서, 혼자 잠자고, 혼자 밥 먹고, 혼자 거닐면서 아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느낄까?

 나를 반겨줄 이도 나를 반겨줄 곳도 없는데, 낯선 바람과 낯선 햇빛과 낯선 공기와 낯선 냄새 속에서, 철저하게 혼자가 되어 보는 것도 좋으리라. 이 절대고독의 순간은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기엔 더없이 좋은 환경인지도 모른다. 나는 평생 이런 여행을 해본 적이 없다. 소심하고 모험심이 없는 새가슴이었기 때문이다.

 낯설기에 우선은 조심스럽고 겁도 나리라. 반대로 낯설기에 홀가분하고 자유롭고 끝없는 해방감을 만끽하리라. 이 모든 것들은 오롯이 자신이 감내하고 극복하고 책임지는 것이기에 성숙해 가는 인간으로서 유익한 경험이 될 것이다.

 이번 여행을 통해 아들 녀석이 안주하지 않고 늘 새로움을 향해 가는 대범하면서도 섬세한 사람,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인간이 되길 바란다.

 

 

 늘 자신감이 충만한 아들아,

 겸손하여라. 허약해서 겸손하면 비굴해 보이지만 강건해도 겸손하면 칭송받는다. 우리가 겸손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인생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불행에 빠졌을 때 오만하게 살았다면 누구도 도움을 주지 않을 것이다. 이웃을 섬기지 못할망정 얕보지 마라.

 인생의 본질은 변한다는 것이다. 영원불변이나 무궁한 건 없다. 그러니 변화에 두려워 말고, 적극적이어라.

 네가 바꿀 수 없는 건 받아들이는 온유함과 네가 바꿀 수 있는 건 바꿀 용기, 그 차이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독서와 사색을 통해 배워라.

 

 

 불경 잡보장경중 삶에 지혜를 주는 경구와 맥아더의 자녀를 위한 기도를 떠올리며 오지 않는 잠을 청하고 청해 본다.

 

 

유리하다고 교만하지 말고 불리하다고 비굴하지 말라.

자기가 아는 대로 진실만을 말하고 주고받는 말마다 악을 멀리해

듣는 이에게 편안함과 기쁨을 주어라.

 

무엇을 들었다고 쉽게 행동하지 말고 그것이 사실인지 깊이 생각하여

이치가 명확할 때 과감히 행동하라.

 

벙어리처럼 침묵하고 임금처럼 말하며 눈처럼 냉정하고 불처럼 뜨거워라.

지나치게 인색하지 말고 성내거나 미워하지 말라.

 

이기심을 채우고자 정의를 등지지 말고 원망을 원망으로 갚지 말라.

위험에 직면하여 두려워 말고 이익을 위해 남을 모함하지 말라.

 

객기를 부려 만용하지 말고 마음이 허약하여 비겁하지 말라.

사나우면 남들이 꺼려하고 나약하면 남이 업신여기나니

사나움과 나약함을 모두 버려 지혜롭게 중도를 지켜라.

 

태산 같은 자부심을 갖고 누운 풀처럼 자기를 낮추어라.

역경을 참아 이겨내고 형편이 잘 풀릴 때를 조심하라.

재물을 오물처럼 보고 터지는 분노를 잘 다스려라.

 

때로는 마음껏 여유를 즐기며 사슴처럼 민첩하고 조심할 줄 알고

호랑이처럼 용기 있고 당당 하라.

 

때와 처지를 살필 줄 알고 부귀와 쇠망이 교차함을 알라.

이것이 지혜로운 자의 삶이다.” (잡보장경 중에서)

 

 

 

 

       내 아이를 이런 사람이 되게 하소서

 

 

약할 때 자신을 분별할 수 있는 힘과/ 두려울 때 자신을 잃지 않는 용기를 주시고

정직한 패배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며/ 승리에 겸손하고 온유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그를 요행과 안락의 길로 인도하지 마시고/ 곤란과 고통의 길에서 항거할 줄 알게 하시고

폭풍우 속에서도 일어설 줄 알며/ 패한 자를 불쌍히 여길 줄 알게 하소서

 

그의 마음을 깨끗이 하고 높은 이상을 갖게 하시어/ 남을 다스리기 전에 자신을 먼저 다스리게 하시며

내일을 내다보는 동시에 과거를 잊지 않게 하소서

 

또한 생활의 여유를 갖게 하시어/ 인생을 엄숙히 살아가면서도

삶을 즐길 줄 아는 마음과 교만하지 않은 겸손한 마음을 갖게 하소서

 

그리고 참으로 위대한 것은/ 소박한 데 있다는 것과

참된 힘은 너그러움에/ 있다는 것을 새기도록 하소서

 

그리하여 그의 아비 된 저도 헛된 인생을/ 살지 않았는가 나직이 속삭이게 하소서 (맥아더의 자녀를 위한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