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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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무사하게 보낸 어느 날
최숙희
Oct 02, 2016 127
무사하게 보낸 어느 날 점심을 먹은 후 깜박 졸았나 보다. 언제 가게로 들어왔는지 모르는 건장한 체격의 여자가 마네킹 하나를 들고 계산대 옆에 서있다. 마네킹이 쓰고 있는 가발을 빨간색으로 달라고 한다. 재고가 마침 없어 주문해준다고 했으나 내일 아...  
85 뒤늦은 사과
최숙희
Oct 02, 2016 155
뒤늦은 사과 친정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막내삼촌의 외아들이 목사안수를 받고 개척교회를 시작했단다. 오랫동안 내 가슴을 누르던 묵직한 돌덩이가 치워진 느낌이다. 엄마는 신혼 초부터 여중생이던 고모를 떠맡아 약대에 보내고 결혼시킬 때까지 십 여 년 ...  
84 버리고 나니 행복감이 생겼다
최숙희
Oct 02, 2016 195
시작은 식탁이었다. 식탁이 도착할 터이니 자리 마련해놓으라는 갑작스런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팔순이 내일모레인 친정엄마가 이제 살림을 줄여야겠다고 건조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아끼려고 천으로 덮어만 두었던 것이라 운송료가 들어도 미국의 나에게 ...  
83 라이샤가 있는 풍경
최숙희
Nov 03, 2016 74
Laisha가 있는 풍경 Buzz Pet Store를 운영하며 10년 넘게 이웃해 있던 베티가 떠난 지 벌써 8개월이다. 그녀는 개훈련 학교와 애견미용센터를 같이 운영해서 가게가 꽤 분주했으나 대형 매장의 높은 임대료 감당을 힘들어했다. 이혼한 아들이 사춘기 딸을 데...  
82 운수 좋은 날
최숙희
Dec 28, 2016 71
운수 좋은 날 책 반납기일을 알리는 이메일을 받고 서둘러 동네도서관으로 가는 길이었다. 주차하고 뛰어가는 나를 뒤에서 누가 부른다. 쌍꺼풀진 동그란 큰 눈이 선량한 인상을 주는 필리핀계 남자이다. 내가 파킹할 때 그의 차를 부딪쳤다고 한다. 나는 마치...  
81 주인을 잘 만나야
최숙희
Dec 28, 2016 95
주인을 잘 만나야 화창한 토요일 오후 쇼핑을 마치고 나오니 넓은 주차장에는 클래식자동차 전시가 한창이다. 오색 풍선이 바람에 휘날리고 아마추어밴드의 경쾌한 연주에 구경 나온 이들이 몸을 들썩인다. 주최 측에서 마련한 주황색 소형차는 동그란 지붕을...  
80 다친 달팽이를 보게 되거든
최숙희
Jan 28, 2017 199
  다친 달팽이를 보게 되거든     붉으죽죽한 비로도 커튼이 에어컨 바람에 펄럭인다. 지금은 찾아보기조차 힘든 벽걸이 에어컨, 골드스타 상표이다. 금성, 메이드인 코리아를 다른 곳에서 보았으면 반가웠겠지만 딸이 두 명의 룸메이트와 함께 사는 맨해튼 변...  
79 사랑이라면
최숙희
Jan 28, 2017 89
사랑이라면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다 못해 가슴이 저린 사람과 결혼을 꿈꾸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꿈일 뿐 현실은 내게 그다지 친절하지 않았다. 주말마다 성사율이 높다는 리버사이드호텔 커피숍에 나가 맞선보기에 진력이 날 때쯤 지금의 남편을 만...  
78 레몬 디톡스
최숙희
Jan 28, 2017 438
레몬 디톡스    친정엄마가 한국서 나의 결혼사진을 들고 오셨다.  20여 년 전 것인데도 배경을 뿌옇게 처리해서 인지  인물이 뽀샤시 돋보인다.   자기 아버지를 닮아 머리가 많이 벗겨진 남편과 중년 이후 몸이 불어  두루뭉술해진 나를 사진 속 인물과 연결...  
77 반성문
최숙희
Jan 28, 2017 77
                                              비누 곽을 닦는다. 솔로 박박 문지르니 원래의 고운 분홍빛이 살아난다. 세면대위 거울 속에는 걱정을 털어내려고 손을 바삐 움직이는 낯익은 여자가 나를 바라본다. 십년 넘게 가게를 하면서 화장실 청소를 한...  
76 고마워요, 영옥씨
최숙희
Feb 05, 2017 80
고마워요, 영옥씨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 혼혈인가 했을 정도로 서구적인 인상이었다. 은빛의 매우 짧은 커트머리가 잘 어울리는 작은 얼굴이 예뻤다. 그녀가 혼자 배낭여행한 경험담을 들으며 같이 산행할 때는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등과 가슴에 배낭 하...  
75 건망증
최숙희
Feb 05, 2017 67
건망증     집을 나온 후 차고 문을 닫았나 긴가민가 하며 다시 돌아가는 일이  종종 있다. 대개의 경우 차고 문은 잘 닫혀 있으나 집에 다시 가서 확인할 때 까지는 불안하다. 가스불은 껐나, 뒷 마당으로 나가는 문은 잠갔나 집을 나선 후 걱정된다. 쇼핑몰...  
74 아버지의 약장
최숙희
Feb 05, 2017 222
  아버지의 약장    내복에 조끼만 입고 계셨다. 은행이나 동사무소 갈 때조차 정장을 챙겨 입고 모자까지 쓰시던 멋쟁이셨는데. 환자 수발에 지친 노인이 오랜만에 보는 며느리에게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침대에 누워계신 시어머니는 차라리 곱다. 큰아들을 ...  
73 남편은 갱년기
최숙희
Feb 05, 2017 188
남편은 갱년기 내가 알기로 가장 고루한 직장인 은행에 수 십 년 다니신 친정아버지는 집에 돌아오면 손 하나 까딱 안하셨다. 전화벨이 아무리 울려도 절대로 먼저 받는 법이 없어서 김치 버무리던 엄마가 손을 씻고 달려와 받을 정도였다. 물을 마시려면 안방...  
72 POSTAL SOLUTION 에서
최숙희
Feb 06, 2017 49
                                      Postal Solutions 에서      공증할 일이 있어 POSTAL SOLUTIONS에 갔다.  9시까지 운동교실에 가야 하기에 8시에 여는 가게의 첫 번째 손님이 되려고 부지런을 떨었다.  항상 나보다 발걸음이 빠른 남편이 먼저 성큼 ...  
71 조금씩 놓아주기
최숙희
Feb 06, 2017 110
                                조금씩 놓아주기    아기 때 말이 좀 느렸던 것을 빼놓곤 한번도 기대를 저버린 적 없던 아들이었다. 말문이 터지고 청산유수로 능청스레 말을 잘 하는 것을 보고, ‘아, 이 아이가 자존심 강한 완벽주의자라서 그동안 말을 아...  
70 두 갈래 길
최숙희
Feb 06, 2017 374
                                    두 갈래 길   부부만 달랑 살아 절간 같던 집이 복잡해졌다.  대학을 졸업한 딸이 부친 짐이 도착하여 현관에 쌓여있다.  부모와 떨어져 지낸 아이의 4년이 궁금하여 짐을 풀러 보았다.  독특한 취향의 옷가지와 구두, 가...  
69 또 다른 축제
최숙희
Feb 06, 2017 46
  또 다른 축제   교회의  92세 원로 장로님이 소천 하셨다.  개인적 친분은 없으나  몇 년 전 장로님의 결혼 70주년을 축하하는 기사를 우연히 한국 신문에서 읽고 그분의 이름을 기억 했기에 추모예배에 참석하고 싶었다.    그토록  오랜 시간을 해로하다니...  
68 부부라는 이유로 2
최숙희
Feb 06, 2017 92
부부라는 이유로 텔레비전을 덜 보자고 케이블을 끊었는데 더 많은 한국 채널이 24시간 내내 잡힌다. 아침 설거지를 하며 한국 텔레비전 보는 것이 어느덧 일과가 되었다. 오늘은 'TV 특종 놀라운 세상'을 보게 되었다. 루게릭병에 걸려 거동 못하는 ...  
67 춤바람
최숙희
Feb 06, 2017 188
춤바람 몸을 움직이는 운동은 보는 것도 하는 것도 싫어한다. 좁은 운동장 대신 수영장이 있는 국민학교를 다녀서 할 줄 아는 운동은 학교건물 옥상에서 하던 피구와 수영이 유일하다. 중고교 때 체육은 주로 체력장 연습과 자율학습으로 때우기 일쑤였다.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