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인생
유숙자
미국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밴 클라이번(Van Cliburn)이 희귀 암인 골육종으로 세상을 떠났다. (2013년 2월 27일 78세) 미국 루이지애나주 슈리브포트에서 태어난 그는 3세 때 피아노를 시작해 17세 때 줄리아드 음악원에 입학했다. 클라이번은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절정기였던 1958년, 23세의 나이로 옛 소련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 1회 차이콥스키 국제음악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 대회는 소련이 자국문화의 우월함을 내세우려 마련한 것인데 클라이번의 뛰어난 연주에 우승을 빼앗겼다.
그가 귀국했을 때 10만여 명이 뉴욕 맨해튼에 모여 환영 퍼레이드를 벌였다. 빌딩 옥상마다 티커 테이프(Ticker-Tape)를 날리며 그의 성공을 축하했다. 시가행진 퍼레이드를 갖기는 클라이번의 귀국 환영행사뿐, 미국의 영웅으로 클래식 음악계의 자존심을 지켜 주었다. 그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 시대에 유화적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가 연주한 콩쿠르 우승곡, 차이콥스키 피아노협주곡 1번은 클래식 음반으로는 최초로 100만 장의 판매 기록을 세웠으며 지금까지 300만 장 이상이 팔렸다. 실황 연주를 감상하며 그의 예술혼 속으로 깊이 빠져들었던 나는 새 음반이 나올 때마다 사서 듣는 열성 팬이었다. 100세 시대라 일컫는 요즈음, 세기의 피아니스트 클라이번의 죽음은 음악계의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클라이번의 타계 기사를 읽으며 한세월이 참으로 찰나에 불과하며 덧없음을 실감한다. 비슷한 여건 속에 살았어도 다른 한길을 택하여 모든 것이 달라진 친구가 떠올랐던 탓이다. 밴 클라이번을 멘토로 삼았던 그녀였기에 남다른 감회에 젖어 있을 것 같다.
친구는 성악가이신 어머니에게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어머니는 남다른 소질이 엿보이는 딸을 열심히 지도했고 그녀도 잘 따라 주었다. 어머니는 딸에게 특기 하나쯤 갖게 해주려는 배려에서이었다. 피아노를 취미로 하던 그녀의 꿈에 불을 댕긴 것은 밴 클라이번이었다. 클라이번의 뛰어난 연주와 수상 소식이 그녀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학부 4년 동안 피아노에 열정을 쏟았고 음악 이외의 어느 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졸업 후, 서둘러 유학을 준비했다. 분신처럼 곁에서 도와주시는 어머니가 계셨기에 별 어려움 없었다.
미국 유수의 음악 대학에서 입학 허가서가 왔다. 우리는 성대하게 축하연을 베풀어 주었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출국을 기다리던 그녀 앞에 한 남자가 다가왔다. 처음으로 가족과 떨어져야 하는 불안, 미지의 세계를 향한 설렘과 두려움의 돌파구를 뜻밖의 남자에서 찾으려 했다. 차츰 가까이 지내던 친구들에게마저 거리를 두고 떠날 날이 임박했음에도 무엇에 홀린 듯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흔들렸다. 까닭 없이 행보가 느려졌다.
드디어 어느 날, ‘오늘은 내 일생 중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며 모든 날을 결정해 주는 날이다.’ 몽테뉴의 말을 빌려 선전포고라도 하듯 유학을 포기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인생을 진지하게 살아가는 한 남자를 만났고 음악 이상으로 한 생을 연주하기에 충분한 대상이라 했다. 그즈음 어머니가 충격으로 쓰러지셨음에도 미련 없이 한 남자의 삶으로 들어갔다.
좋은 쪽으로 본다면 흔히 세상에서 말하는 결혼 조건이 아예 배제된 순수하기 이를 데 없는 결혼이다. 근본도 모르고 혈혈단신인 남자를 사랑 하나로 인연 맺지 않았는가. 마치 사이비 종교에 빠져들 듯 헤어나지 못하는 친구에게 눈물 어린 충고를 거듭했으나 소용없었다.
삶은 자신이 택하고 결정해야 하기에 주변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다만, 힘차게 대양을 나를 수 있는 새가 날갯짓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둥지를 튼 것이 안타까웠다.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생명같이 여기던 예술과 인생을 바꾸게 했는지 알 수 없는 수수께끼다.
인생에서 행복한 만남처럼 중요한 것은 없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결정된다. 모든 세상살이가 그렇듯이 사리나 사물에 대한 인식이 어떤 기본적인 틀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잖은가.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의 잣대로 그를 잰 것이다. 학벌이 인격과 같은 줄 알았다. 세상을 냉소적으로 보는 시각마저 우수한 두뇌의 소유자가 갖는 개성이라 확신했다. 정작 알아야 할 남편 될 사람의 성격이나 깊이에 내재해 있는 사상, 그가 살아온 삶의 과정을 알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갖지 않고 서두른 결혼답게, 서서히 회의에 빠지기 시작했다. 인간성의 문제가 가정의 문제와 직결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목숨 걸고 반대하시던 어머니의 절절한 음성이 귓가에서 맴돌았다. 부모를 잘 만나고 스승을 잘 만나는 복도 중요하지만, 자신에게 선택할 권리가 있는 배우자를 잘 만나야 삶이 평탄하다 하셨던 말씀이.
영 안이 열리고 나니 그녀가 삶의 진로를 바꿀 만큼 황홀이 바라보던 애초에 그 사람이 아니었다. 사회생활에서도 타협보다 비판이 앞섰다. 상대를 신뢰하고 배려하는데 인색했다. 열등의식에 피해 의식이 겹쳐 감정의 기복이 심했다. 결혼 후, 몇 년이 지나지 않아 국제무대를 꿈꾸며 두드리던 건반을 생계 수단의 도구로 삼게 되었다. 그것이 견딜 수 없는 자기 모멸이기는 해도 정작 참기 어려운 것은 성격 차이였다.
부모님도 가시고 자식들도 모두 일가를 이루었기에 자신의 삶을 놓고 더는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과감하게 생의 전반을 접기로 했다. 맑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가슴 펴고 활짝 웃을 수 있는 마음에 여유가 왔다. 해갈될 수 없는 갈증에 침묵하며 보낸 세월 30여 년에 종지부를 찍기로 했다. 불같은 열정이었던 상대를 관찰하는 안목이 없었든 간에 신중하지 못했던 선택에 충분한 대가를 치렀다고 생각했다. 망설일 때와 달리 결정하고 나니 온몸이 깃털처럼 가벼웠다. 세월의 이끼를 덧입어 다소 무거워진 몸일지라도 그녀는 다시 날갯짓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인생의 황혼에서 깨닫게 된 진리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명언을 붙들기 위해 그렇게 먼 길을 돌아 이제 다시 시발점에 서 있다. 잃어버린 꿈을 찾기 위해 밤낮없이 피아노에 열중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거룩해 보이기까지 했다. 긴 예술을 위해 얼마 남지 않은 짧은 인생을 아낌없이 던지리라는 그녀의 말에 확고한 의지가 보인다.
한 시대를 풍미하던 클라이번은 갔다. 젊은 날 그의 음악을 들으며 꿈을 키워가던 친구는 황혼이 깊숙이 내린 지금, 잠자고 있던 예술혼에 불을 댕겼다. 한올 한올 음악의 시정을 엮어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음절로 생의 마지막 협주곡을 멋지게 연주할 것이다.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 그녀의 연주회 타이틀 곡이다. 그 음악이 못다 한 효를 대신하여 하늘까지 울려 퍼지기를 친구도 나도 간절히 소망한다.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