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이웃
최숙희
미국에 살면서 ‘이웃’이라는 말은 조금 낯선 단어였다. 한국에서는 같은 아파트, 같은 골목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얼굴을 익히고 인사를 나누는 일이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서로의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미덕이었다. 내가 사는 남가주의 게이티드 커뮤니티(Gated Community)도 마찬가지였다. 커다란 게이트만큼이나 주민들 사이에 가로놓인 마음의 거리 또한 단단하고 견고했다.
나에게는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 바로 언어의 장벽이다. 미국에서 오래 살았어도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다 보니, 먼저 말을 거는 일이 여전히 쉽지 않다. 간단한 인사는 주고받아도 깊은 대화는 부담스럽다.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면 어쩌나, 내가 상대의 말을 잘못 알아들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슬그머니 한 걸음 물러서곤 한다. 얼굴은 익숙한데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런 이웃 중 한 사람이 뒷집의 미스터왕이다. 그의 뒷마당에는 25년 넘게 자란 큰 나무가 있는데, 가지가 우리 집 창문까지 뻗어왔다. 나무 그늘 때문에 우리 자두나무가 죽었고, 무성한 낙엽을 치우는 일도 큰 스트레스였다. 다람쥐는 그 나무를 타고 우리 집 창가까지 와서 땅콩을 까먹기까지 했다. 참다못해 가지를 쳐 달라고 부탁했지만, 미스터왕은 프라이버시를 이유로 거절했다. 결국 HOA(주택소유자협회)에 중재를 요청했고 HOA는 나무 정리를 지시했다. 그런데 나무를 자르던 중 그 안에서 너구리 가족 다섯 마리가 발견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동물 관리 당국에 신고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어이없어 웃고 말았다. 다람쥐에 이어 너구리까지, 그 나무는 야생동물의 아파트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에 몇 건의 도난 사건이 발생했다. 오랫동안 안전하다고 믿어온 곳이라 주민들의 불안은 더 컸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위기는 우리 사이의 거리를 좁혀놓았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단체 대화방을 만든 것이다. 수상한 차량이나 낯선 움직임이 포착되면 실시간으로 소식이 올라왔다. 처음에는 요긴한 정보였으나, 어느 순간부터 알림이 너무 자주 울리는 바람에 나는 결국 무음으로 바꿔둘 수밖에 없었다.
여행으로 집을 오래 비울 때는 서로 일정을 알려주고 집 주변을 살펴봐 달라고 부탁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누군가는 경비업체를 고용하고, 움직임이 감지되면 자동으로 불이 켜지는 센서를 다는 집도 있었다. 서로의 눈이 되어주면서 우리는 조금씩 ‘얼굴만 익숙한 사람’에서 ‘서로를 살피는 사람’으로 조금씩 변해 갔다.
내게도 작은 변화가 찾아왔다. 언어 핑계로 다가서기 어려웠던 이웃들과 조금씩 문자를 주고받으며 말을 나누게 된 것이다. 완벽한 영어가 아니면 어떤가, 중요한 것은 문법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같은 마음으로 동네를 지키고 있다는 연대감이 아닐까. 게다가 요즘은 전화기 속에 번역기라는 훌륭한 도구까지 있으니, 더 이상 영어를 핑계 삼아 숨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 무렵 동네 사람들을 한바탕 웃게 만든 작은 해프닝이 있었다. 미스터왕이 단체 대화방에 다급한 SOS를 쳤다. 도둑을 막겠다며 뒷문에 야심 차게 새 자물쇠를 달았는데, 그만 본인이 설정한 암호를 잊어버린 것이다. 쇠줄을 끊을 강력한 가위를 가진 사람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 즉시 대화방에는 ‘우리 집에는 가위가 인치 별로 있다.’ ‘당장 들고 가겠다.’는 답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온 동네의 장비 자랑과 응원 릴레이가 이어졌다. 나이가 들수록 깜빡하는 건망증은 인종을 초월한 만국 공통의 친근함이라서 나도 웃음이 났다. 한때 나무 때문에 불편했던 이웃을 모두가 나서서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소하고 인간적인 실수야말로 사람 사이의 거리를 가장 빠르게 좁혀주는 촉매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처음 대화방에 모인 이유는 도둑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그러나 그 두려움은 아이러니하게도 서로를 알아갈 기회를 주었다. 누군가는 안심하고 여행을 떠나며 집을 부탁하고, 누군가는 도움을 청하는 이웃에게 먼저 달려간다. 우리는 ‘옆집 사는 이방인’에서 조금씩 ‘진짜 이웃’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번 일을 겪으며 나는 사생활 존중이라는 문화와 이웃에 대한 무관심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고 마음의 거리까지 멀어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유창한 말 한마디보다 작은 도움 하나가 더 따뜻한 언어가 된다.
나는 이제 게이트나 첨단 보안장치가 진정한 안전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고 믿는다.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고, 곤란한 일이 생겼을 때 기꺼이 손을 내밀어 줄 이웃이 있을 때, 비로소 내가 사는 곳은 안전한 울타리가 된다.
도난 사건은 우리에게 불안을 가져왔지만, 그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얻었다. 언어 핑계를 대던 나도 이제는 먼저 인사를 건넨다. 어쩌면 이웃은 단순히 가까이 사는 사람이 아니라, 곤경에 처했을 때 주저 없이 살피러 와줄 파수꾼들이 아닐까. 나의 다정한 파수꾼들을 향해, 오늘도 나는 서툴러도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인사를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