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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6 10:30:21 (*.141.119.197)
695

찰나에서 영원으로

 

                                                                                                  배 헬레나

 

그것은 그리움이었을까, 호기심이었을까? 아니면 생명의 원동력 같은 것이었을까?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한평생 이어온 이 처절한 목마름은 나를 끊임없이 흔들어 깨웠다. 남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삶의 조건들 속에서도 늘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 앞에 서 있었다. 이 질문들은 내 인생에서 돌파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관문처럼 느껴졌다.

젊은 시절, 나는 답을 찾기 위해 닥치는 대로 섭렵했다. 구약과 신약 성경을 밤새 읽기도 하고, 여러 불교 경전의 깊은 지혜를 탐구하며, 도서관에 있는 철학과 영성에 관한 책들을 파고들었다. 선지식이나 저명한 학자들의 알 듯 말 듯한 강연을 찾아다니며, 지식을 쌓아갔으나 가슴 한구석의 갈증은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우연한 기회에 단전호흡과 요가를 시작하게 되어, 조금씩 몸의 정체성을 탐구하게 되었고, 애리조나주의 광활한 세도나 땅에서  태고의 영성을 만나 모든 생명이 빛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어렴풋이 느끼며 뜨거운 눈물을 흘린 적도 있다.

세도나에서 마주한 마야문명의 영성은 나를 더욱 겸허하게 만들었다. 대지의 여신 ‘파차마마’에게 꽃을 봉헌하고, 지나간 날의 모든 허물을 참회하며, 향유를 뿌린 모닥불 속에 그 조각들을 태워버린 후, 다음 날  아침 새로운 태양을 맞이하였다. 동지( Winter Solstice) 예식에서,  나는 시간의 층위 너머를 보았다. 눈에 보이는 신비스러운 세도나 계곡의 붉은 산도, 계절마다 색색의 옷을 갈아입는 대지의 풍경도 결국은 찰나에 머물다 사라질 허상이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오직 그 모든 생멸을 가능케 하는 근원의 빛뿐임을, 동지 새벽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며 확신했다.

이론적인 정리가 마음의 지도가 되어주었다면, 요가 수행은 그 지도가 가리키는 실제 풍경을 마주하게 해주었던 것 같다.  머리로 이해한 진리가 몸과 영혼의 체험으로 전이되던 순간들을 가끔 경험했다. 

 매일 아침 깊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나는 내가 숨을 쉬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생명의 에너지가 나라는 통로를 통해 숨 쉬고 있음을 감각했다. 육체의 한계를 마주할 때마다, 이 몸은 결국 소멸할 물질적 요소들의 임시 조합임을 깨달았다. 나의 선택이 아니었던 출생처럼, 죽음 또한 거부할 수 없는 자연의 순리임을 몸의 고요 속에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나의 구도 인생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어느 날 와선(臥禪) 후 찾아왔다. 깊은 잠에서 깨어 비몽사몽 의식이 돌아오는 찰나, 내 오른편에  마치 거대한  수정처럼 투명한 존재가 머물고 있음을 느꼈다. 시리도록 맑은 북극의 얼음처럼 푸른 빛이 감도는 니르바나의 존재였다. 그의 고요와 평화, 그리고 아름다움이 나의 온 몸으로 스며들었다.  그는 거대한 불상처럼 평온했고,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통찰의 눈으로 세상 모두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공간을 초월한  완전한 지혜는 과거와 현재의 모든 인류를 아울렀으며,  개개인의 삶에 깃든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품고 있었다. 그는 존재 자체로 모든 삶을  반영하는 거울 같았다. 

무엇보다  경이로웠던 것은 그의 몸이었다. 그는 고립된 개체가 아니라, 온 세상, 그 자체였다. 산천초목과 내가 스쳐 온  모든 인연이 그의 몸 안에서 하나로 숨 쉬며 박동하고 있었다. 그 순간 비로소  알았다.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참나'는 이 작은 육체에 갇힌 에고가 아니라, 저 맑은 존재와 본래 하나로  연결된 거대한 '전체'의 일부였음을. 

이제 나는 고백한다. 깨달음은 내 힘으로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맑은 존재가 발현되도록 나를 내어주는 '항복(Surrender)'의 여정임을. 시험 날짜를 앞둔 수험생 같은 절박함은 사실 내 작은 자아가 깨달음을 '성취'하고 '소유'하려 했기 때문에 생긴 조바심에 불과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에고의 허물을 벗고 영적인 인간으로 거듭나는 길, 그것은 이미 완벽하게 중중무진(重重無盡)연결된 이 아름다운 우주의 인드라망 위에 나를 온전히 내어 맡기는 일이며,  그것이 내 남은 생을 살아가는 방법이 될 것이다.

 
 
Comment
2026.05.18 04:45:54 (*.109.147.44)
이정호

마음속에 있지만 표현하기 어려운 철학적 사유를 잘 표현 하셨습니다. "깨달음은 내 힘으로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맑은 존재가 발현되도록 나를 내어주는 '항복 (Surrender)'의 여정임을." 라는 문구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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