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9일 월요일. 드디어 봄학기 개강이다. 가을 학기가 끝나고 겨울 방학에 접어들었을 때는 두 달간 컴퓨터에 집중하겠다는 알찬 각오를 했다. 그런데 웬걸? 이런 저런 연말 행사에 쫓아다니다 보니 정작 하고 싶은 일은 하나도 하지 못했다. 이루었던 성과라면 난생 처음 하프 마라톤에 도전했다는 것 뿐이다. 시간은 늘 보내놓고 나면 아쉽기 마련인가 보다.
어느 새 꽃망울이 터지고 성급한 꽃들은 계절을 앞당겨 피어났다. 나도 봄의 기운을 받아 내 남은 시간들에 힘찬 훈기를 불어넣어야 할까 보다. 일과 병행해야 하는 공부라 시간 조절을 하다보니, 이번 학기도 이브닝 클래스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월, 화, 수, 목으로 나누어 야간 클래스에 등록을 했다.
English Writing과 Grammar 합해서 12학점이다. 한 학점에 평균 두 시간씩 여분의 공부를 해야 따라간다니 보통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라에서 돈을 다 대준다고. 그러나 일을 안 하면 모를까. 받아서 쓰는 돈보다 벌어 쓰면서 낼 거 내는 게 더 마음 편하다. 학점당 $46이면 공짜나 마찬 가지가 아닌가.
정말 미국이 좋긴 좋다. 배우는 데 연령 제한을 두기를 하나, 경제적 부담을 주기를 하나. 아니, 12학점 이상 풀타임 학생에게는 한 달 $500 상당의 생활비 보조에 책값 무료, 공공비까지 거의 반값이다. 그야말로 공부할 때는 공부에만 집중하라는 배려다. 단, 성적이 C 학점 이상(70%) 되지 않으면 상급 클래스에 올라갈 수도 없고 학비 보조도 끊긴다. 권리와 의무의 적절한 배합이며 거래다. 살아갈수록 미국의 '친절'이 감사하다.
이번에는 교수 복까지 터졌다. 여교수는 천천히 또박또박, 남교수는 속사포를 쏘아대듯 열정적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여교수 시간에는 마음이 편안하고, 남교수 시간에는 바짝 긴장을 해야 한다. 언제 어느 때 질문이 날아올 지 모르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남교수 Ryan은 최고 인기 교수란다. 주간 클래스에서 제일 먼저 클래스 마감이 된 교수를 찍은 내 작전이 적중했다. 첫 시간부터 Ryan 교수는 친화력 있게 다가왔다. 활기찬 목소리는 잠을 쫓고, 중간 중간 양념으로 넣는 농담은 우리의 웃음을 자아낸다. 영화 배우도 조금 했었고 각본도 좀 썼다더니 수업 분위기도 드라마틱하게 이끌어 간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건 그가 가르치는 것을 즐기고, 학생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에게 있어 가르친다는 것은 노동이 아니라, 놀이로 보인다.
그가 제일 먼저 한 것은, 우리 35명의 이메일 주소 제출과 조그만 메모지에 이름을 써서 각자 책상 위에 놓아 달라는 부탁이었다. 2주 안에(그래 봐야, 네 번의 수업이다.) 우리 이름을 다 외울 거란다. 이름을 불러줄 뿐만 아니라, 이름을 아예 외워버리겠다는 그 각오를 통해 그의 진심을 읽을 수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이미 그의 꽃이 되었고 의미가 되어 초등학교 일학년 생도처럼 완전히 그를 의탁할 수 있었다. 그는 이메일을 통하여 전적으로 우리와 소통한다. 그가 우리를 알고자 자기 소개 에세이 홈웤을 내줄 때, 그 역시 우리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에세이를 보내왔다. 기실, 소통이란 오고 가는 양방 통행이지, 일방 통행이 아니다. 그는 그것을 알고 실천하는 사람이다.
홈웤을 보내올 때도 꼭 한 두 마디 인간적인 멘트를 붙인다. 그는 이미 우리의 꿈을 알고 그 꿈을 향해 달려가는 선상에서 함께 달려주는 페이스 메이크다. 나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그를 위해서도 열심히 공부하리란 다짐을 해 본다. "교사란 학생들을 위한 영혼의 정원사다!" 이는 내 교사 시절의 모토였다. 내가 맡은 아이들의 영혼을 하나하나 귀히 여기며 각별한 애정을 쏟았던 기억이 새롭다.
인생의 긴 여정에서 극히 짧은 순간이지만, 나는 나의 아이들이 내가 가꾸어주는 사랑의 정원에서 찬란한 햇빛과 맑은 공기를 담뿍 마시고 자라길 염원했다. 나에게 그런 은사님이 계시듯, 나도 그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선생이 되고 싶었다.
4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지적인 갈증에 목말라 단비를 기다리는 학생의 입장으로 바뀌었다. 앞으로 4개월간 내 영혼의 뜨락을 알뜰히 가꾸어 줄 정원사를 위해 마음으로부터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