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은 어디에 있을까

                                                          신순희

 

 

그곳에 우물이 있었다. 우리 집 골목길을 나와 큰길을 조금 걸어 올라가 고개를 넘으면 쌍우물이 있었다. 우물 위에는 ㅅ자 모양의 지붕이 있었다. 그 지붕에는 도르래가 설치되어 있었고 거기 두레박이 두 개 매달려 있었다. 친구들과 심심하면 그곳에 가서 우물물 푸는 걸 구경했다. 두레박 줄을 잡아당겨 우물에 던져 물을 푸고 다시 줄을 잡아올리면 시원한 우물물이 길어졌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두레박질하며 얘기꽃을 피우곤 했다. 엄마는 그 물을 길어가지 않았다. 우리 집은 공동수도에서 물을 샀다.

 

그때 동네에 처음으로 공동수도가 들어왔다. 엄마는 아홉 살 계집애에게 물통을 주며 어서 가서 줄을 서라고 했다. 그곳에 물통을 두고 한참 지나 다시 가보면 이상하게 물통은 아직도 그 자리에 있었다. 누군가 우리 물통을 제치고 새치기를 한 것이다. 귀찮아도 지키고 서서 기다려야 했다. 공동수도는 시간에 맞춰 물을 팔았는데 그 줄이 길었다. 양철 물통들의 행진이었다. 

 

한번은 엄마를 돕는다고 물통 하나를 집까지 날랐다. 수돗물을 통에 3분의 2 정도 담고도 무거워 왼손 오른손 번갈아 들었지만, 걸으면서 흔들려 엎질러진 물이 통에 반밖에 남지 않았다. 돈 주고 사는 물이었다. 어린 나는 최선을 다했지만 길바닥에 돈을 흘린 꼴이다. 우물물은 비누 거품이 잘 일지 않아 빨래하는데 힘들었다. 차라리 빗물이 낫다고 엄마는 말했다. 엄마는 수돗물을 아껴 빨래했다. 집에 물지게가 있었는데 누가 그걸 사용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행히 곧 집에 수도가 들어왔으니 물고생을 오래 하지는 않았다. 

 

집에 수돗물이 온종일 나오는 건 아니었다. 처음에는 시간제로 물을 공급했다. 엄마는 커다란 독을 부엌에 두고 수돗물을 받아 두었다. 그 독 말고도 몇 개의 독이 더 있었다. 그 물을 퍼서 밥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엄마는 늘 바빴다. 비 오는 날, 그 수돗물을 받다 보면 지렁이가 나오기도 했으니 얼마나 정수된 물인지 알 수 없었다. 언젠가는 수돗가에 빨래용 물을 받아 둔 독에 쥐가 빠져 죽었다. 그 뒤처리는 엄마 몫이었다. 엄마는 뭐든지 해야 했다. 

 

능안 이모네는 집안 마당에 우물이 있었다. 더운 여름 학교 갔다 돌아온 사촌오빠는 웃통을 벗고 능안 이모에게 엎드려 맨 등을 내밀며 두레박 물을 한 바가지 퍼부어달라고 했다. 우물물을 맞은 오빠의 등은 휘어 오르며 으스스 떨었다. 생각해보면 그게 바로 얼마전 유행처럼 번지던 얼음물벼락 맞기 ‘아이스 버킷 챌린지’의 원조가 아닐까.

 

사촌오빠는 그 우물에 자유자재로 드나들었다. 우물안 패여 있는 벽 틈에 발을 딛고 날렵하게 들어가 붕어를 놓아 길렀다. 찬물에 금붕어가 얼마나 견디었는지는 모르겠다. 냉장고가 귀하던 시절이라 이모는 수박을 우물물에 띄워 시원하게 식히기도 했다. 이렇게 용도가 다양한 우물이 우리 집에는 왜 없을까. 지하수가 풍부하던 서울이었다. 무공해 무방부제 인심 좋은 때였다. 

 

이모네 가면 나는 그 우물을 신기해하며 내려다보고는 했다. 우물 밑바닥 한구석에서 졸졸 물이 새어 나왔다. 맑은 물에 비치는 내 얼굴을 보고 그 속에다 대고 소리를 지르면 메아리가 울렸다. 엄지 손톱만 한 자갈을 던져 물에 파문이 일게 하기도 했다. 능안 이모네 가면 부러운 게 또 하나 있었다. 이모가 밥할 때마다 쌀을 퍼내던 뒤주였다.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숨을 거두었다는 건 나중에 좀 더 커서야 알았다. 식량을 비축해 두는 곳에서 사람이 굶어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뒤주에 정이 떨어졌다.

 

어느 날, 이모네는 우물을 없애고 대신 물을 한 바가지 붓고 펌프질을 해서 물을 길어내는 펌프를 설치했다. 우물을 들여다보고 노래 부르면 얼마나 노래가 잘 되는데 그걸 없앤 것이 서운했지만, 이모는 편하기만 하다고 좋아했다. 그 뒤로 이모네 가면 우물이 있던 자리에 긴 손잡이를 가지고 서 있는 쇳덩어리 펌프를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그 깊은 우물을 어떻게 메꾸었을까 걱정 아닌 걱정을 하고는 했다. 이모네 수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수도와 펌프가 나란히 있었다. 결국, 펌프마저 사라지고 말았지만.

 

친구 집에도 우물이 있었다. 평평한 시멘트 마당에 작은 맨홀 같은 쇠뚜껑이 있었다. 그 뚜껑을 여니 바로 아래로 어둡고 깊은 우물이 있었다. 딱 한사람이 들어갈 만한 구멍이었다. 숨겨진 그 우물에 한번 빠지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 같이 무섭고 기이했다. 마치 영화에 나오는 비밀의 장소 같다고나 할까. 그런 우물이야말로 메꿔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시대가 변하고 있었다. 집집이 수도가 다 들어섰다. 찾아오는 이 없는 동네 쌍우물도 위기를 맞았다. 매끄러운 수돗물에 맛을 들였으니 더는 찝찌름한 우물물을 길어가는 사람이 없었다. 잊혀가는 우물은 관리가 안 돼 오염된 지하수가 되어가고 우물에 침 뱉는 사람이 생길 지경이었다. 마침내 두레박은 전설이 되었고 펌프는 고물이 되었다.

 

‘돈을 물 쓰듯 한다.’ 사람들은 이제 그냥 수돗물을 먹지 않고 정수하거나 병물을 사 먹고 있다. 우리 동네 우물이 사라진 지금, 지구촌 한편에서는 목숨 같은 식수를 얻고자 우물을 파주는 선교를 하고 있다. 언제까지 물이 우리 곁에 풍족하게 있어 줄지는 미지수이다. 

 

내 마음에 우물 하나 파 두었다.

 

 

[2014년 9월]

 

--문학세계 제24호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