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검다리 / 반숙자 

 

오늘도 육교 위에서 고향 냇가의 징검다리를 생각한다. 마을 모퉁이로 허리띠를 두른 듯 시냇물이 흘러간다. 어른 양팔로 쫘악 벌려 둘러야 될까 말까 한 폭의 냇물에 장마 때 말고는 늘 고만한 양의 물이 졸졸 흘러갔다. 검정 고무신을 벗어 들고 첨벙첨벙 들어서면 여남은 살 내 또래의 정갱이에 찰랑거리는 물살이었다.

그곳에는 사철 돌다리가 놓여 있었다. 댓돔한 돌 위에 쪼그리고 앉아 물속을 들여다보면 눈만 보이는 새끼 송사리가 까맣게 모여 들었고 베틀 올챙이도 더러 눈에 띄었다.

장날이면 온 마을 사람들이 나들이옷으로 치장하고 돌다리를 건너 장터로 갔다. 읍내 공마당에 들어온 서커스 이야기도 이 냇가에서 꽃 피었고 동네 처녀 선 본 소식도 이 빨래터에서 퍼졌다. 말하자면 이 냇가는 동네의 뉴스센터에 손색이 없었다.

층층시하에서 안으로만 삭히던 울혈을 빨래 함지에 담아 냇가로 나온 아낙들이 찝질한 설움을 맑은 물로 헹구며 친정을 그리는 눈망울에 징검다리는 위안이 되기도 했다.

빨래하는 어머니 곁에서 비누거품을 내다가 읍내로 뻗은 꼬불꼬불한 신작로를 바라보면 이상한 설렘으로 부풀었다. 끝없는 동경이었다. 얼른 커서 과자도 많고 인형도 많다는 읍내에 가겠다는 미지에 대한 벅찬 꿈이었다.

해방되던 그 무렵 생존일 수밖에 없는 여건 속에서 우리 어린 것들은 벌거숭이로 냇가를 누비며 즐겁기만 했다. 읍내에 있는 국민학교에 입학하고부터 추리들은 책보를 허리춤에 질끈 동이고 개궂지게 장난을 치다가도 징검다리 앞에 오면 모두 점잖아졌다. 장난을 치거나 한눈을 팔다가는 헛딛기 쉽고 욕심껏 한 칸을 건너 뛰면 못미처 빠지고 서두르거나 새치기하다가는 둘이 다 물속으로 나동그라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

그래선지 돌다리 근처에는 언제나 고즈넉했다. 객지에 가 계신 아버지를 기다리던 밤, 달빛이 물살에 비껴 출렁이는 때도 나는 달이 울고 있다고 생각했다. 언제인가 말짱하던 날씨가 갑자기 흐려지더니 장대 같은 소나기가 쏟아졌다. 그날 하굣길에 냇가에 당도하니 돌다리는 온데간데없고 흙탕물만 콸콸콸 흘러가고 있었다. 그렇게 아득하고 막막하기는 처음이었다. 빈 도시락은 달그락거리고 뱃구리는 푹 꺼지고….

때때로 불청객이듯 찾아오는 생활의 난관 앞에서 나는 그때의 절망을 생각하고 좀 여유로워 지려고 애를 쓴다. 간단없이 밀려오는 흙탕물의 급류는 그 후로도 수없이 지나갔다. 다음날 걱정하며 나선 등굣길은 놀라움과 고마움의 아침이었다. 징검다리를 건너 다니면서 잔뼈가 굵고 세월도 덧없이 기운 이제 보이지 않은 고마운 마음과 손을 생각하게 됨은 어인 일인지.

그 사람은 누군가 자기 다음에 건널 사람들을 위하여 물에 빠져 가며 그 일을 했으리라는 생각, 아무 설명 없이 돌다리를 건너며, 돌다리를 건너듯 험한 인생 고해를 차근차근 정확하게 순리대로 살라는 삶의 태도까지도 넌지시 일러둔 지혜가 뒤늦게 가슴에 닿아온다.

우리는 숱하게 많은 자기의 징검다리를 건너 가고 오며 살고 있다. 여지껏 살아오는 동안 알게 모르게 징검다리가 되어 풍랑이 심한 삶의 바다에 빠지지 않도록 해 주신 큰 섭리의 손으로부터 부모, 형제, 스승, 친구, 이웃들께 새삼스레 감사로움이 움트는 것은 마저 건너야 할 냇가의 건너편에 언덕이 희미하게 보이는 때문일까. 다 건너왔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아니면 이제 더 붙들고 도전할 고통이라는 짐이 가벼워져 간다는 허전함일까. 고통까지도 사람들은 진주를 보듬는 조가비의 아픔일진대 내 어찌 고통에게도 감사하지 않으리.

촌티 나는 도시인이 되고부터 나는 육교를 좋아한다. 돌다리를 건너던 아기자기한 추억과 함께 육교에 올라서면 좀 느긋해진다. 차량의 질주 속에서 보호돼 있다는 안도감과 시골 장날을 연상케하는 갖가지​ 좌판이 있어서이다. 사주 관상쟁이가 있고 방물장수가 있고 눈먼 소녀의 깡통에 징검다리를 놓아 주는 인정의 가화가 꽃 피기도 한다.

어제저녁에는 비가 내렸다. 거대한 과학문명 앞에 끝없이 뇌살 당하는 도시인들. 소음과 매연도 비 오는 저녁에는 조금은 차분해진다. 행인들이 뜸해진 육교 위에는 외등 불빛이 아련했다. 빗방울마다 정감의 세포를 열어 주는 이런 저녁이면 나는 일손이 잡히지 않아 애를 먹는다. 돌아올 사람 없는 밤길에 우산을 펴 들고 막연히 서 있었다. 육교 아래는 같은 방향의 무리들이 번호표를 단 버스에 동승해서 달려가고 있다.

나는 문득 나의 행선지를 생각했다. 누구나 마지막 행선지는 피안의 곳 죽음뿐, 타닥타닥 빗방울의 파열음을 가슴에 새기며 층층계를 내려서면 나는 모처럼 끝없는 자유에 도달한 가벼운 마음이 되었다. 지금까지 누군가가 놓아준 징검다리를 딛고 편안하게 살아왔으니 이제는 나도 누군가를 위하여 아주 작은 징검다리 한 짝이 되어야 하리라는 마지막 남은, 실로 엄숙하기 이를 데 없는 자각이었다.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