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벌레 날다 / 진해자

 

잎이 무성한 나무 사이로 한 줄기 빛이 내린다. 빛은 찰나에 숲으로 번져 음과 양의 조화를 이룬다. 점들이 이어져 하나의 선을 이루듯 작은 씨앗들이 자라 숲을 이뤘다. 청량한 숲 향기를 들숨으로 마시고, 자로 잰 듯 돌아가는 하루의 무게를 날숨에 덜어낸다. 숲은 끊임없이 약동하며 편히 쉴 수 있는 둥지를 내준다. 새들도 저들의 둥지에서 사랑을 나누며 지저귄다. 새소리를 벗 삼아 한참 걷다가 커다란 나무 밑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른다.

나무를 타고 무언가가 꿈틀거리며 기어간다. 자벌레다. 나뭇가지에 달라붙었던 자벌레가 조금씩 움직인다. 고개를 들어 이리저리 주억거리다 목표가 정해지면 꽁무니 쪽을 머리 쪽으로 힘껏 오므렸다 펴기를 반복한다. 급한 것이 없다는 듯 제 몸의 길이만큼 천천히 나아간다.

자벌레가 몸을 타원형처럼 구부리는 건 다시 펴기 위해서다. 구부리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현재에 만족해 나아가기를 포기한다면 내일이라는 아름다운 시간을 만나지 못한다. 목표를 향해 웅크렸던 마음을 활짝 펼 때 세상과 미련 없이 작별할 수 있다. 사람도 태어날 때는 두 손을 꼭 쥐지만, 떠날 때는 모든 걸 놓아 버리듯 손을 편다. 자벌레는 구부러진 마음을 펴라고 온몸으로 말한다. 움직임이 느려 답답해 보여도 원하는 곳을 가기 위해서는 참고 견뎌야 한다. 흐트러짐 없이 정확히 거리를 재는 자벌레의 삶이 얼마나 힘겨울까.

자기의 속도를 무시하고 더 빨리 더 쉽게 가기 위해 욕심을 부리면 오히려 뒤 쳐질 수 있다. 저마다 살아가는 방법과 나아가는 속도가 다르다. 모든 일에는 적당한 때가 있다. 자벌레도 성장하는 과정을 거치며 때를 기다려야 우아한 나비가 된다. 남과 비교하며 조급해하고 빨리 자라기를 재촉하면 아주 잠시는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결국은 원하는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주저앉고 만다.

알에서 깨어난 자벌레는 크고 넓은 이상을 찾아 길을 떠난다. 가야 할 길은 멀고 험하다. 세찬 비를 만나기도 하고, 강한 바람도 이겨내야 한다. 때론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메마른 길 위를 묵묵히 걸어간다.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는 누구도 가늠할 수 없다. 그저 참고 견디며 버텨 낸다.

천천히 나아가던 자벌레가 한순간 멈춘다. 길이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는지 더는 움직이지 않고 머뭇거린다. 자벌레 앞에 커다란 옹이가 버티고 있다. 고개를 들어 몇 번을 휘젓더니 옹이진 구멍으로 기어든다. 한 가닥 내리던 빛이 길을 잃어 또 다른 여백을 만든다. 안과 밖의 교차점에서 자벌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자벌레는 스스로 옹이 속으로 들어갔다. 한순간의 선택으로 인해 힘들고 괴로운 시간을 보낼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걸어가는 길 위에 잠시 거쳐 가는 간이역이라 여겼다. 하지만 옹이 속은 깊고 험난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곳,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아득한 어둠의 공간이었다. 보이지 않는 벽을 더듬으며 걸음을 옮겨보지만, 다시 제자리다. 옹이를 벗어나려 발버둥 칠수록 실낱같은 희망조차 어둠이 삼켜버린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서 긴 시간을 헤매었다. 철저히 혼자라는 생각에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벌레의 몸은 야위어 갔다. 더는 일어설 용기조차 없다. 철저히 갇혀버린 마음은 보이지 않는 감옥 같았다. 자로 잰 듯 반듯하던 걸음걸이는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그 기억이 아스라하다.

긴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가야 할 길이 힘들고 위험하다고 주저앉으면 어디에도 닿지 못한다. 물이 흘러가다 웅덩이를 만나면 더는 흐르지 못하고 그 안에 고인다. 하지만 갇혀있다고 흐르기를 포기해 버리면 물은 곧 썩고 만다. 어쩌다 이런 난관에 빠졌는지 고민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 생각하며 길을 찾아야 한다. 묵묵히 감내하며 어떤 방법이든 웅덩이에 물이 가득 채워져 넘치길 기다려야 한다. 어두운 새벽이 지나야 찬란한 태양이 떠오르고 태양이 서서히 기울 때 눈부신 노을을 볼 수 있다.

어둠 속에 갇힌 자벌레는 깊이 팬 옹이가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옹이가 없었다면 힘들이지 않고 목표에 도달했을 것이다. 하지만 옹이가 그 자리에 있는 것도, 자벌레가 옹이 속으로 들어간 것도, 운명처럼 정해진 삶의 일부분이었는지 모른다. 어떤 어려움도 의미 없는 어려움은 없다. 맑은 하늘에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를 피해 갈 수 없듯,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나무인들 옹이를 만들고 싶었을까. 바람에 채이고 비에 젖으며 잎을 키워내느라 속으로만 앓았다. 세상과 부대끼며 마주하는 상처 앞에서 힘들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긴 세월을 묵묵히 버틴 흔적이 옹이로 남았다. 옹이가 없는 매끈한 나무보다 옹이진 나무에 애틋한 눈길이 머문다. 삶을 잘 견딘 흔적에 가만히 손을 대본다. 잘 견뎠다고, 잘 살아 내었다고 옹이진 마음을 어루만진다. 속살처럼 박여있던 얼룩진 말들이 손길을 따라 안개처럼 피어오른다.

살다 보면 가끔 혼자 가야 할 때가 있다. 두 손 꼭 잡고 걷던 길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끝까지 잡아주지 못했다. 놓친 손을 잡으려 허우적댔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한 번 놓친 인연은 급물살을 타고 흘러가 버렸다. 옹이 속 자벌레의 처절한 외침이 들리는 듯하다. 빛이 들지 않는 컴컴한 구렁 속은 언제나 밤이었다. 제자리를 벗어나지 않는 북극성처럼 나 또한 그 자리에 붙박였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영원한 이별은 커다란 나무에 생긴 옹이처럼 가슴에 박혔다. 빛이 들지 않는 동굴에 스스로 갇혔다. 계절이 몇 번 바뀌었지만, 기다리는 계절은 오지 않았다.

나란히 걷던 길에서 한 사람을 잃어버리고 헤매던 시간, 그런 시간이 있기에 조금 더 단단해지고 자신을 알아갈 힘을 얻는다. 혼자 열심히 걸어가던 자벌레가 꿈을 저버리지 않고 옹이 속에서 견디는 시간은 아름답고 숭고하다. 매 순간 거창한 꿈을 꾸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꿈을 포기하지 않고 걸어가는 용기와 믿음을 놓지 않으면 된다.

어둠에 갇힌 마음이 다 타들 즈음 희미한 빛이 스몄다. 단비 같았다. 메말라 흐를 것 같지 않던 눈물샘에도 물이 고였다. 조금씩 스며든 물은 다시 발붙일 뿌리를 만들어 주었다. 앙상하게 드러나 있는 뿌리에 흙이 덮이고 살며시 기댈 수 있는 조그만 돌멩이 하나 얹어졌다. 컴컴한 구덩이에서 한 발짝만 움직이면 밝은 빛을 볼 수 있다. 옹이 밖 세상을 포기하면 안 된다. 순탄하지는 않겠지만, 가보고 싶은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야 한다.

한참을 지켜봐도 움직임이 없던 자벌레가 꼬물거리기 시작한다. 자벌레가 어렵사리 옹이에서 기어 나온다. 터널이 길수록 마주하는 빛은 밝다. 깊은 어둠에서 빠져나와 고개를 들어 내젓더니 안도의 숨을 쉬듯 온몸을 구부렸다 편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제 갈 길을 묵묵히 간다. 몸의 움직임이 자를 댄 것처럼 한 치 흐트러짐이 없지만, 그 무엇도 정확해지길 바라진않는다. 다만 세상으로부터 입은 허물과 상처를 벗기 위해 한발 한발 나아갈 뿐이다. 구부리고 펴며 가고 싶은 곳을 향해 걸어간다. 옹이를 탈출하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기다린 시간이 있기에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자벌레가 컴컴한 옹이 속을 빠져나올 수 있었던 건 가야 할 목표와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벌레의 외침에 아무도 귀 기울여 주지 않았지만,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가는 꿈을 저버리지 않았다. 여기서 주저앉으면 어디에도 갈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빠져나오려 몸부림칠수록 살이 터지고 온몸에 상처가 났다. 빛을 찾아 찬란히 날 수 있는 날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기다림에는 인내의 고통이 뒤따른다. 상대를 믿고 묵묵히 기다려 준다는 것은 어떤 말보다 힘이 되고 위로가 된다. 처한 상황을 비관하여 포기해 버리거나 한쪽이 덜 가고 다른 쪽이 더 가면 관계에 금이 가기도 한다. 조급한 마음에 틀어져 버린 관계는 되돌리기 힘들다. 기다리면서 한 번 더 자신을 돌아보고 상대에 대해 생각해 볼 일이다. 믿고 기다려 주는 누군가가 있기에 다시 일어설 힘이 생긴다. 자벌레가 옹이 속을 나와 다시 걸어갈 수 있게 기다려 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한 치의 오차 없이 걸어가는 자벌레의 걸음이 안쓰럽다. 매일 걷는 걸음이지만, 어느 날은 비틀거리기도 하고 힘들면 주저앉아 쉬기도 한다. 반듯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벌레처럼 걸어가야 한다. 하지만 매사에 흐트러짐이 없으면 사람 사는 정이 없다. 사람이 자를 대고 재면서 산다면 얼마나 삭막할까.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재고, 가르고, 심지어 급을 나누어 편애한다. 돈이 많은 사람인지, 권력이 있는지를 판단하며 나에게 도움이 될 사람인지, 아니면 손해가 될지를 계산한다. 어느 시인은 “무엇이든 재 볼 수 있는 마음은 아무것도 재지 못할 마음”이라고 했다. 적어도 사람의 진심에 닿으려면 자벌레의 조건 없는 움직임처럼 묵묵히 다가가야 하지 않을까.

때로는 간단하게, 때로는 되는 대로 살고 싶은 게 인간의 마음이다. 사람이 사는 데는 잴 수 없는 것도 있고, 가를 수 없는 것도 있다. 마음속에는 정확함을 요구하는 ‘자’ 너머에 따뜻한 ‘정’이 있다. 부모가 자식을 키우면서 자를 대고 잰 적이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아기가 밤에 응가하고 배고파 울면 불편하지 않게 뒤처리해주고 젖을 물린다. 오히려 잘 보살펴주지 못함을 걱정한다. 진정한 친구나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대가를 바라지 않고 마음을 베푼다.

사는 동안 우리는 많은 문제에 부딪힌다. 문제를 풀다 보면 정답만 있는 건 아니다. 자벌레가 뜻하지 않게 옹이 속에 빠졌지만,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용기만 있으면 된다.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이 늘 그 자리에 있다면 아무리 아름답다 해도 지겨울 때가 있을 것이다. 구름은 머물지 않고 흘러가기에 아름답다.

나무 위를 기어가던 자벌레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걸어가던 자벌레는 이제 번데기가 될 준비를 한다. 살이 터지고 허물을 벗으며 우화(羽化)하기 위한 시간을 견뎌야 한다. 부드러운 봄바람이 불어오는 날, 접었던 날개를 활짝 펴고 숲 사이를 자유롭게 날 수 있길 기다린다.

마음속에 갇혀있던 한 마리의 나비가 잎이 무성한 나무 사이로 나풀나풀 날아간다. 나비가 날아간 곳으로 한 줄기 빛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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