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설콘 파인(Bristlecone pine) / 김영화   09/05/2024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살아온 브리설콘 소나무들 앞에 서 있다해발 만 피트 높이의 고대 브리설콘 소 나무 숲(Ancient Bristlecone Pine Forest)에서 수 천 년 살아온 나무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방문자센터에서 레인저의 설명을 듣고 그 안에 전시된 여러 가지 모양의 크고 작은 솔방울석양빛에 선 브리설콘 소나무 그림그곳에 사는 동식물 사진 등을 돌아보았다이 높고 척박한 땅에서 잣을 따서 살아온 파이우디 원주민과 70년 전에 이곳에 와서 브리설콘 소나무의 나이테를 연구한 슐만 박사를 사진으로 만나본다.

  오른편에 5천 년 가까이 된 무드셀라 나무가 있는 무드셀라 트레일이 있다므드셀라는 성경에서 969년을 산 가장 장수한 인물이다에녹의 아들이자 노아의 할아버지다아마도 가장 장수한 나무에게 성경에서 가장 오래 살았다는 므드셀라라는 이름을 붙인 것 같다이번에는 레인저가 추천해 준 대로 왼편의 1마일 정도의 많은 고대 소나무들이 있는 디스커버리 트레일을 걷기로 했다경사진 산길을 헉헉거리며 약 한 시간 정도 오르고 내렸다.

  기기묘묘한 모양의 사 천년 넘은 나무들은 세상 역사의 산증인이라도 되는듯 자부심이 대단해 보인다호수나 강이 없고 토양도 척박하다산맥의 오른쪽 자락은 나무가 전혀 자라지 못하는 돌만 있는 민둥산이다굽이굽이 돌아가는 돌너덜길을 한참을 운전하여 올라왔다파란 하늘의 흰 구름도 화이트 마운틴(14,252피트캘리포니아에서 세번 째로 높은 산)에 머물러 쉬어 가는 모양이다어른 손만한 다람쥐와 아주 작은 아기 다람쥐들이 할아버지 품에서 노는 아기들처럼 나무 사이를 바쁘게 오르내린다독수리 한 마리가 이 산의 수호자처럼 구름을 가르며 위엄스럽게 비행한다.

  나뭇잎 하나 없이 하얗게 말라 뒤틀려진 몸통과 가지에 흙이 쓸려내려 뿌리까지 휑한 나무가 아직도 살아 있오.하고 곧은 자세로 서 있다어떤 나무는 다 죽어 보이는데 텅 빈 몸통에서 한 줄기의 가지가 나와서 파란 바늘잎에 솔방울을 달고 스스로 건재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 나무들이 최소한의 물과 척박한 토양에서 이토록 오래 살아 남기 위해서는 스스로 욕심을 버리고 성장을 억제하고 자신의 몸을 단단하게 극 단련하여 병충해에도 강하게 한 것이다속이 갈라지고 몸통을 텅 비워 강한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게 했다이런 열악한 환경은 오래 살 수 있는 조건이 되었다파란 솔방울에 씨앗이 익어가면 그것을 송진으로 완전히 덮어 새나 다른 침략자들로부터 씨앗을 보호하는 모성애를 가졌다.

  이런 나무를 존경하고 싶어진다면 어떠할지 모르지만 내 마음이 그렇다인생살이 오래 살면 백 년 사는 동안에도 나무처럼 일기를 써 놓지는 않았지만 얼마나 크고 작은 풍파를 견뎌내던가하물며 아무도 돌보지 않는 곳에서 오직 하늘의 뜻만 바라며 온갖 시련을 감내했을그리고 생명을 잉태하고 보존한 이 나무가 한없이 커 보인다.

  온실에서 자란 식물이나 사람은 자연에서 사계절을 맞으며 자라는 식물이나 사람보다 병충해나 어떤 어려움에 대처하는 힘과 면역력이 약하다꽃도 온실이나 화원에서 키운 꽃보다 야생에서 피는 꽃이 더 강하고 향기롭다요즘 세대에는 많은 부모들이 자녀를 하나나 둘만 낳아서 행여 다칠까아플까노심초사하며 과잉(?)보호하며 양육한다물론 부모의 마음은 자기 자식에게 최상의 환경과 기회를 주고 싶어한다식물이나 동물이 사람의 완전 보호가운데 키워질 때 작은 기후변화나 유행하는 병충해에 이겨내지 못하듯이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다요즘 소아청소년 우울증 등 사회성이 약한 어린이나 어른들을 보면서 브리설콘 소나무에게서 얻은 것이 많다.

  비록 갈라지고 말라 비틀어져 모양이 볼품없다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이 나무들은 만 피트 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경험한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언제 자연재해와 병마와 전쟁이 있었는지를 전해준 바람의 이야기를 남기고 싶었으리라유명세를 타고 모여든 여행객들은 이곳에 와서 어떤 대화를 나누었을까혹자는 수천 년 살아서 온갖 경험을 다 해 본 나무들에게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위로받고 싶어 하소연했을지도 모르겠다.

   어렸을 적 나의 증조할머니는 긴 겨울밤마다 증손주들에게 옛날이야기와 어렸을 때부터 그때까지 살아온 자신과 동네 사람들나라의 크고 작은 재난과 전쟁 이야기까지 재미나게 해주시곤 했다이야기를 다 해주고 난 후에는 이야기 안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이 있는지 말해보라고 하셨다백세 가까이 살아온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린 우리들은 느끼고 생각하고 배운 것이 많았다분명 사 천년 넘게 살아온 이 나무들도 우리 증조할머니처럼 그들이 살아온 수없이 많은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그리고 우리에게 알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을 그의 몸통 밑자락에 기록했을 것이다.   

   창조주에게는 하루가 천 년 같고천 년이 하루 같다고 했는데 수천 년을 살아온 브리설콘 소나무에게서 오래 참고절제하는 아름다운 삶을 배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