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러코스터 같이 타요
박진희
무엇보다 서른 살 넘길 준비가 절실하신 분 환영합니다. 십 대에서 이십 대는 보고 들어서 기대했던 대로 그럭저럭 지나갔지만 삼십
대 그 이상은 그다지 상상해 본 적이 없었던 분들에게 권합니다. 나이 드는 것에 무척 예민해서 3자를 코앞에 두고 한숨과 잠 못이루는 날이 부쩍 늘었나요? 자신에게 확신이 안 서고 무엇을 하며 어떻게든 살아가야 하는 강박감으로 절벽에 서 있는 느낌, 이해합니다. Been there done that.
생체 리듬은 십 년 단위로 대체로 달라지는데요. 사십 대는 정신없이 바쁘고, 오십 즈음이 가장 힘들며, 육십부터는 마음을 비움으로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을 믿었어요. 오십 대가 왜 어렵냐면 갱년기에 접어들면서 여자라는 성(sexism)을 넘어 자기 정체성에 만족하는 일이 하루이틀에 걸쳐 되는 게 아니라 연륜이 필요하기 때문이랍니다. 그리고 나이를 극복하는 방법에는 별 특별한 것이 없고 그저 감사하며 사는 거라는 어르신들 말씀이었지요. 그럼 오십 대를 맞는 것이 삼십 대를 맞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결론이 서던 거에요. 그러니 더 어려운 오십을 맞기 위해 삼십 넘기길 돌처럼 보면 안된다는 사실을 알아챘죠.
제가 아주 힘들었던 스물아홉에서야 롤러코스터를 생전 처음 타본 후 서른을 무난히 넘겼거든요. 궁금하다면 그 방법을 전수해 줄 테니 저와 함께 타보실래요? 이거 어지럼증이 심하거나 심장병이나 고소공포증이 있는 분들께 권하지 않아요. 하지만 참관하셔도 괜찮고, 원하신다면 멀리서 격려의 손을 흔들어주셔도 좋습니다.
큰 도시에 있는 놀이공원에서 일단 어른이 탈 수 있는 작은 규모의 롤러코스터에서 자신을 시험해 보세요. 비명이 자신도 모르게 새어나오지 않거나 속도가 약해서 별 재미가 없다고 느끼면 저와 함께 타실 준비가 된 거에요. 사실 롤러코스터는 찾아보면 정말 많죠. 드높고 좁거나 긴 원형의 꼬임새 모양으로 생긴 실외에서 타는 것들과 실내의 캄캄한 곳에서 시각적 감각을 사용할 수 없게 한 곳에서 타는 등 다양한 기구가 있어요. 앉아서 타는 것은 이제 구식이고 오토바이처럼 생긴 것에 가슴과 허벅다리를 바짝 대고 몸을 숙여 타는 것도 몇 년 전에 생겼답니다. 이거 뒤끝이 깨끗해서 강력 추천합니다. 하여튼 2차원으로 보이는 공간을 3차원에서 마치 4차원 세계로 이끌 듯 심하게 빠르게와 숨도 못 쉴 정도로 빠르게를 반복하며 정신 못 차리게 합니다. 어릴 때부터 타기 시작한 이들은 여유있고 신나게 즐기지만요.
저와 타실 것은 세계에서 한때 가장 빠르다고 자랑하는 강철 유령(Steel Phantom)이라는 이름을 가진 시속 129킬로미터 빠르기와 68,6미터 높이의 절벽에서 떨어지는 듯한 라이드에요. 제가 예전에 그랬듯이 '삼십이 되기 전에 저걸 타서 내 인생에 도전해 보자!'는 분 계신가요? 아무리 오르락내리락을 쥐락펴락하는 롤러코스터도 아주 잠시면 끝납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후유증 있다는 사람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어요.
일단 강철 유령을 타고 최고 정상까지 50초, 땅 속으로 곤두박질치는 듯 하다가 다시 치솟아 몸이 거꾸로 매달리며 휘달리기를 반복하는 시간은 겨우 1분 30초. 복잡한 신호등에서 다음 초록불을 기다리는 시간에 불과합니다.
만일을 위해 음식은 가능한 조금만 먹어 소화시킨 후 화장실도 미리 다녀오시구요. 참, 이 롤러코스터는 인기가 많아 한 시간 넘게 기다릴 수도 있다는 경고를 해야겠네요. 줄서서 앞, 옆, 별별사람들과 본의 아니게 가까이 있는 시간이지만 견딜 만해요. 그들을 보며 요즘 유행하는 패션감각을 느끼죠. 친구나 가족과 온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인데 웬만한 애정행각은 물론이고 프렌치키스를 주고받는 커플이 있어도 신경 쓰지 말자구요. 그들의 이런 시절도 잠깐이겠지만 바로 눈 앞에서 벌어지는 저 키스를 도대체 얼마간 하는지 한번 재볼까 어쩔까 하는 동안 시간은 후딱 가버릴 거예요.
경험담인데 무엇보다 타는 동안 머리 위치와 목의 중심이 중요해요. 아주 오래 전에 만든 라이드에는 머리 대는 곳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런 거 타면 회전하는 반대방향으로 목이 나중에 쏠리더라구요. 긴장해서 너무 꼿꼿하게 머리를 세우고 있으면 후에 목 디스크에 부담을 주고 메쓰껍고 속이 불편해져요. 차라리 흐름을 타면서 머리는 뒤에 대다가 옆으로 쏠리면 그런대로 옆으로 살짝 기대면 돼요.
아, 벌써 다음이 우리가 탈 차례인가요? 소지품은 정해진 곳에 두고 타기로 해요. 모자는 물론이고 선글라스나 끈 없는 신은 벗어두고요. 발판없이 발이 둥둥 떠다니는 거라서 그거 공중 어디에선가 떨어지면 찾기 난감합니다. 라이드를 마치고 막 내리는 사람들의 표정을 봤나요. 머리카락이 얼굴을 뒤덥고 여전히 경직된 얼굴 근육에서 힐끗 보이는 그들의 안도감이 값져 보이죠? 그거 우리고 곧 갖게 될 거에요. 그나저나 심장이 쿵쾅거리는 건 물론이고 겁이 덜컥나서 엉덩이가 가슴에 착 매달린 기분, 처음은 아니죠? 안전벨트나 가슴과 배 사이에 내려오는 안전장치가 확인될 때까지 기다리고 손은 기구 안에 있어야 하는 규칙은 말해주지 않아도 아실 것 같아요. 손을 치켜세우고 환한 미소로 타는 사람들 이외로 많더라구요.
기계소리가 딸그락 거리고 하늘 향해 급경사를 오를 때는 침이 바싹바싹 말라갈 거예요. 맨 꼭대기에 올랐을 때 가능한 숨을 크게 들이마셔요. "으아아, 내가 미쳤지. 미쳐 써~어~." 내리칠 때와 거꾸로 매달릴 때는 공포와 맞서기 위해 다른 사람들처럼 소리를 냅다 질러버려요. 어디에서 실컷 소리칠 수 있던 공간이 허용됐던가요. 그저 조용히 사는 게 미덕이라고 은연중 배워오지 않았던가요. 지금 미덕이고 뭐고 아무짝에도 소용없답니다. 바락바락 소리 지른대도 아무도 쳐다보지 않고 관심도 없어요. 마음 구석구석에 쌓였던 쓰잘 데 없는 욕구 불만들이 자신도 모르게 튕겨나와 토해질 거예요. '곧 끝나니까' 생각할 틈 없이 머릿속 가득했던 잡념들도 공기 속에 쏟아져 산산이 부서져 흩어지고 사라져요. 빠른 속도로 인해 자신의 손등살이 물결에 출렁이듯 켜켜이 서 있는 걸 처음 보면서도 놀라지 않게 될 거에요. 뒤돌아볼 겨를이 없으니 앞만 보면 돼요. 그렇게 몸을 맡기고 숨을 쉬어요... 이제 됐어요. 다 끝났어요.
이렇게 두 번 세 번 타다 보면 눈까지 뜨고 발 밑을 둘러보며 소리 없이 공중에서 내 몸을 감싸는 바람과 하나가 돼요. 게다가 우리가 지나온 저 절벽이 너무 작게 보이죠. 혹시 자신의 나이가 저 수목 사이로 초연히 지나가는 것도요?
앞으로 살아가면서 뒤틀리고 사정없이 추락하는 순간 다시 바람을 타고 공중에 솟아오르는 리듬을 기억하게 되길 바랍니다. 맘껏 소리치는 것 또한 삶의 재충전이구요. 저는 롤러코스터를 탈 때마다 매번 서른을 앞둔 여인이 된답니다. 이미 세상을 떠나신 옛 어르신들이 알려주었듯이 사십 대는 그냥 바쁘게, 힘들다는 오십 대를 나름 준비해도 기대 이상으로 어렵게 보내는 게 사실이더군요. 마음을 비워서 행복하다는 육십 대에 접어들면서도 그것을 타는 이유는 주어진 순간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타도 그만, 안 타도 그만이지만요. 기회가 올 적마다 공중에 거꾸로 매달려 세상을 잠시나마 내려다볼 수 있는 순간 또한 지나가겠죠. 무엇보다 어느 순간에도 숨을 고를 수 있는 걸 서른 전에 터득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함께 해서 즐거웠어요. 다음엔 직접 현장에서 탈 수 있을 거예요. Happy riding! Enjoy!
반드시 롤러코스터가 아니어도 더 높이 날아오르는 삼십 대 그리고 그 이후가 계속되길 소망합니다.
<한국산문 2024년 9월호>
인생을 순식간에 경험할 수 있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은 멋진 일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