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과 분별/김영화

 

언덕 위에 하얀 집, Corvallis, Oregon(오리건주 코발리스)에 하나 밖에 없는 최첨단 시설을 갖춘 아름다운 병원이다. 유일한 아시안 직원인 나는 여느 때처럼 15분 전에 병실에 도착했다. 수간호사로서 8시간 함께 일 할 스탭들에게 일을 정하고 있는데 루시가 아기가 아파서 1시간 늦겠다고 전화했다. 루시는 좀 늦게 대답하는 나를 일초 멈춤(one second paused speaker)이라고 흉내 내며 놀리던 고약한 간호사다. 루시가 일 나올 때까지 내가 그 자리(staff RN)를 메꾸기로 했다. 밤에 일한 간호사로부터 환자들에 대한 보고를 받으며 일을 시작했다.

 

굿 모닝!” 루시를 대신하여 전날 저녁에 입원한 칠십 대 중반의 백인 S 환자의 병실에 들어서니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일어나 앉는다. “어디가 아프 세요? 밤에 잠은 잘 잤나요?” 묻고는 약 컵에 준비한 약을 주었다. 그는 천천히 약 컵을 받아 들더니 내 얼굴에 확 던졌다. 그의 돌발적인 행동에 내 얼굴은 금세 화끈거리고 가슴은 마구 뛰었다. “난 더러운 유색인종이 주는 약은 안 먹어! 수간호사 오라고 해!” 신경질적으로 버럭 소리까지 질렀다. “내가 이 병실의 수간호사예요! 약을 먹고 당신의 병을 치료받는 것이 중요하지, 약을 어떤 인종의 간호사가 주는 가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런데 내가 유색인인가요?” 팔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는 화를 애써 누르며 또박또박 침착하게 말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내 뒤에 서 있던 백인 간호보조원에게 수간호사를 불러 달라고 부탁했다. 마침 그때 이 환자의 주치의가 회진하러 들어와서 이 상황을 봤다. 그의 주치의는 그에게 단호한 어조로 당신은 해서는 안 되는 실수를 했습니다. 수간호사 미시즈 킴에 사과하시고 약을 드세요.” 병실을 나온 그의 주치의는 미안하다며 내 등을 다독여 주고 곧바로 환자를 다른 병동으로 옮겼다. 놀라움과 함께 깨달은 것은 그가너는 백인이 아니야!” 하고 말 할 때까지 나는 흑인만 유색인종인 줄 알았다. 전에 시카고에서 일할 때는 필리핀, 한국, 중국, 인도, 그리고 흑인 간호사들이 많아서 영어 발음이 그리 좋지 않아도 잘 알아듣고 유색인종이라 차별을 받은 적은 없었다.

 

미국에서 5년간의 Staff RN 경력으로 유색인 간호사가 나 혼자인 이 병원에서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는 은퇴한 독일계 수간호사의 강력한 추천으로 이루어졌다. 그녀는 자기가 하던 대로만 하면 잘 할 수 있을 거라며 주저하는 내게 용기를 주고 경영적인 일을 자세하게 가르쳐 주었다. 독일에 계신 어머니가 위독하여 병간호를 위해 은퇴한 그녀는 이 병원에서 인정받는 유능한 수간호사로 병원 직원들과 환자들로부터 존경받았다.

25년 전에는 자기도 독일식 영어 발음으로 수없이 수모를 겪었다며 내 발음을 친절히 교정해주었다. 그녀는 내게 실력도 있고 환자에게 신실하며 일을 잘하니 간혹 직원이나 환자들이 인종차별, 영어발음을 들어 불쾌하게 하더라도 잘 참으면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고 격려해 주었다.

유능한 간호사의 자질에는 원활한 의사소통, 고도로 긴장된 환경에서도 정서적 안정을 유지하는 능력, 생사가 관련된 간호 현장에서 작은 실수나 오류를 빚지 않는 세심한 주의력, 대인 관계 기술, 건강한 체력, 응급 상황에서 유연하고 빠르게 대처하는 능력이다. 여기에 수간호사는 한 병동을 운영해 나갈 수 있는 지도력이 필요하다.

이 중에서 의사소통 능력과 대인 관계 기술에 자신이 없었다. 40여명의 직원 중에서 나이도 젊고 체구는 제일 작은 백인이 아닌 내 말을 잘 따라 줄지 밤잠을 못 이루며 망설였다. 병원의 주임 호흡기 내과와 소화기 내과 의사가 격려 카드와 꽃바구니를 보내주며 나를 돕겠다고 했다.

 

70년대 중반 시카고에서 살 때였다. 어느 한국 분이 흑인 버스 운전사 뒤에 앉아서연탄 아저씨다!” 그러자, 연탄 운전사입니다. 연탄 태우는 곳에서 오셨습니까?” 유창한 한국말로 말대꾸해서 기겁하고 버스에서 내렸다고 한다. 영어 발음조차 시원치 않은 동양 사람이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을 흑인이라 하여 비하한 적은 없는가? 한국에 살면서 나와 다른 피부색, 아니면 다른 나라 사람이라고 차별 대우하지 않았는지 자성해 본다.

아시안 증오 범죄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일어난다. 코비드로 인해 한층 심해졌다.  텍사스주 댈러스에서도 한인이 운영하는헤어 월드 미용실의 총격사건, 뉴욕 지하철, 아파트에서의 사건들을 뉴스에서 보았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에서는 백인 총격 범 딜란 루프는 흑인 교회에 총격을 가했다. 이렇게 편견과 증오 범죄의 희생자가 많이 나오다 보니 요즘은 밖에 혼자 나가기가 두려워진다.

 

지난 주말에 MT. Baden Powell에 다녀왔다. 상수리나무, 소나무, 향나무와 온갖 색깔의 야생화들이 한데 어우러져 아름다웠다. 그 중에는 나이가 2,000년이 넘었다는 위풍당당한 Limber Pine 나무와 어린 나무가 함께 자라고 있고 키가 큰 나무가 있는가 하면 작은 나무도 있다, 곧게 자란 나무도 있고 구부러진 나무도 있어 제각각 다른 모습이나 함께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숲속의 새 들도 제각기 다른 목소리로 사랑의 노래를 부른다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이민자의 나라, 미국에 산지도 어언 반세기가 되어간다. 서로 다른 피부색, 언어, 문화를 존중하며 숲속의 나무들처럼 조화를 이루며 살 수는 없을까? 숲속의 새 들처럼 다른 목소리로도 서로 사랑의 노래를 부르며 살 수 있으면 좋겠다. 백인이든, 흑인이든, 아시안이든 나와 다르다며 차별하고 증오하는 고정관념의 색안경을 벗어버려야 한다. 무엇이 진리인지 분별하기 어려운 캄캄한 세상이 되어간다. 넘어지지 않도록 지혜와 분별력을 발등에 달고 우리 앞에 비치는 사랑의 빛을 따라 걸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귀중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