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의 저녁 초대 / 이정호

 

  누나가 나를 초대했다. 미국에서 오래 만에 나온다고 나를 비롯해서 가족이 함께 식사할 있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역삼동의 고급 한식당 갈비 사랑이었다.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고 빌딩 전체가 식당으로 꾸며졌다. 모두 방으로 꾸며져 있다.

 

  식구와 어머니가 함께 먼저 도착하였다.  그리고 자형과 누나가 들어왔다. 먼저 한국에 들어 둘째 아들 준모가 거의 동시에 들어왔다. 이제 누나도 나이가 들어간다. 70세가 넘었다. 고왔던 누나의 자태가 서서히 세월의 구름을 타고 있다. 모두들 늙어 가는 것이다. 어머니가 93세이시니 우리들도 세월의 파도는 막지 못하리라. 최소한 어머니께서 거동은 하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일까. 아는 지인들 중에는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거나 치매에 걸리셨거나 거동을 못하고 누워 계시거나 요양원에 계시는 경우가 많다. 나는 어머니가 살아 계시고 만나 있고 같이 식사를 하러 나갈 있으니 얼마나 복을 받은 일인가.

 

  어머니는 옆에 앉으셨다. 작년에는 느끼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때때로 숨을 크게 쉬셔 숨소리가 나에게 들린다. 치매는 없으시지만 말해서 대답한 것을 물어보시는 경우가 있다. 어머니 앞에 손주 준모가 앉아 있다. 어머니가 예전에 점을 보러 적이 있으신 보다. 준모가 아주 것이라고 했단다. 나는 점을 적도 없고 믿지도 않지만 지금까지는 어느정도는 맞는 같다. 미국에 있을 준모가 할머니와 통화할 항상 말하셨다. “ 생겼어. 아주 생겼어. 우리 준모 그렇게 생겼니?” 하면서 자랑스러워 하셨다. 손자가 오늘 할머니를 보러 것이다.  준모는 10년을 넘어 한국을 다시 방문 것이다. 이제는 어엿한 청년으로 성장하여 혼자 고국을 밟은 것이다.

 

  조금 있으니 조카가 들어왔다. 누나의 둘째 아들이다. 카이스트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하고 있는데 이번 주가 마지막으로 논문을 제출하는 날이어서 시간을 내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잠시 들린 것이다. 아들과 조카도 오래간 만에 만났고 둘은 영어가 한지 영어로 말하였다. 준모도 한국말을 알고 읽고 알지만 유창하게 하지는 못한다. 미국에서 한국말을 열심히 가르치려고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큼은 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술을 못하기 때문에 맥주를 조금 마셨고 형과 자형이 소주를 마셨다. 소주를 마시고 병을 주문했다. 형이 소주뚜껑을 열려고 하니 소주병 윗부분이 녹이 슬은 것처럼 뭔가 묻어 있었다. 형이 소주병을 조심스럽게 열라고 했을 그것은 녹이 아니었고 초고추장이 묻어 있었다. 형이 소리로 종업원에게 화를 내었다.  나는 그렇게 까지 해도 텐데 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형이 술기운이 있는지 계속 화를 내었다. 누나가 한마디 했다. “그만하라고. 아버지가 그러셨을 들었어. 그만해.”

 

  예전에 아버지가 살아 계셔 같이 식사를 했을 음식이 늦게 나오거나 서빙하는 것이 거슬렸을 아버지는 화를 내시곤 했었고 우리들은 아버지 성격을 알기에 조용히 죽은 있은 적들이 있었다. 그래서 누나는 그런 분위기가 싫어 형한테 그렇게 말한 것이다.

 

  약간 어두웠던 분위기는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자형도 분위기를 즐겁게 이끌어 갔다. 나는 자형과 같은 남자를 적이 없다. 누나와 대학교 커플로 만나 모범적으로 생활하시고 분다 대학교 교직을 은퇴하셨다.  원만한 성격을 가진 자형이 나는 좋다.

 

  식사를 마치고 가는데 식당에서 호박으로 만든 음료수를 2병을 선물했다. 그것은 후식으로 나왔었는데 맛이 괜찮았다. 내가 한국에 왔다고 모두 가족들이 모여 나와 준모를 초대해서 같이 식사를 있어서 좋았다. 가족 간의 유대, , 사랑이 나에게 흘러 들어왔다. 흐름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