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아름다운 세상/김영화
어제까지 내리던 비가 그치고 햇볕이 따스한 봄날이다. 우리 부부는 두 문우와 함께 2박3일의 신나는 여행을 떠난다. 흰 구름이 파란 하늘에서 여유롭다. 길가에 핀 노랑, 빨강 들꽃들이 차가운 바람에 한들거린다. 비바람 견뎌낸 들꽃은 어떤 역경 속에서도 달콤하고 부드러운 선율로 세상을 가득 채우고 싶어하는 봄을 보며 희망을 잃지 말라고 한다.
번잡한 고속도로405N와 14N을 지나 178도로 가까이에 있는 Fish Rock에 들렸다. 큰 물고기 모양의 돌에 누군가는 흰색 페인트로 눈과 이빨을 그려 놓았다. 창조자와 사람의 마음이 합하여 만들어진 작품들이다.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와 산 능선마다 무리를 지어 피어 있는 들국화 모양의 노란 꽃과 작은 보라색 꽃은‘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노래가 절로 나오게 한다.
엘에이에서 북쪽으로 4시간 거리에 있는 국립 자연기념물인 트로나 피너클스(Trona Pinnacles)에 왔다. 178번 고속도로를 타고 트로나 피너클스로 가는 길 저편에 기찻길이 보인다. 짐칸이 길게 늘어선 기차가 미네랄을 실어 나르고 있다. 트로나 피너클 국립공원은 군인 기지가 있는 릿지크레스트시(Ridge Crest City)에서 16마일 거리에 있다. 이곳에서 스타트랙, 혹성탈출’ 등 많은 영화를 촬영했다. 약 1-10만 년 전 호수 바닥(bed of the Searles Lake basin)에서 끓어오른 마그마가 바닷물과 만나면서 그대로 굳어 라임스톤이 되었다. 칼슘카보네이트로 구성된 이 기암들, 투파(tufa)는 여러 가지 모양과 높게는 140피트 크기에서 작은 것까지 500여 개가 모여 있다. 큰 사자가 앉아있는 모습, 독수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주를 보고 있는 모습, 미륵불, 수녀들이 서 있는 모습, 등 상상의 날개를 넓힌 만큼 보인다. 외계의 어느 행성에 앉아있는 우리를 상상하며 준비해 온 샌드위치로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트로나 피너클 구경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밴이 모래흙에 빠져 들어 갔다. 다른 차들이 지나간 바퀴 자국이 있는 평탄한 모랫길이다. 빠져나오려고 애를 쓸수록 더 깊이 빠져 차 앞바퀴가 완전히 묻혔다. 삽으로 모래를 파내고 나뭇가지와 돌을 차 바퀴 앞에 놓아도 소용이 없다. 나는 저 멀리 지나가는 차를 향해 두 손을 흔들었다. 젊고 예쁜 아가씨, 모니카가 우리를 도와주려고 사륜차를 몰고 왔다. 그녀는 땀을 뻘뻘 흘리며 차 밑에 들어가 모래를 파내고, 이런저런 궁리를 다 하는 동안에 밴의 뒷유리창이 박살 났다. 밴의 오른쪽 앞바퀴를 움직이는 축이 부러져서 차가 모래 속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문제는 더 커지고, 시간은 오후 4시, 사막의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모니카는 자기 차로 큰길에 나가서 지나가는 차들을 다 세워서 물어 도움을 청했다. 피너클로 들어오는 입구에 세워진 모토 홈에 가서 젊은 청년, 코리와 우리를 도울 수 있는 기계가 있다는 가족이 함께 여행 온 퀙을 데리고 왔다. 퀙은 우리 밴에 모터를 걸어 끌고, 코리와 모니카는 삽으로 모래를 파내고 보드를 바퀴 뒤에 옮기며 3시간 동안 애를 써서 차를 모래 속에서 꺼내 놓았다.
인터넷이 안 되고 전화도 안 되는 곳이다. 우리 밴은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날은 캄캄해졌다. 밤하늘엔 크고 작은 별들이 우리 머리로 쏟아진다. 별나라에 유배해 온 기분이다. 인터넷이 있는 코리의 모토 홈에 왔다. 그는 차를 견인할 수 있는 곳과 호텔을 찾아서 전화해 주었다. 퀙은 그의 아내, 어린 딸과 함께 우리 차에 있는 문우들 옆에서 견인차를 기다려 주었다. 모니카는 나와 문우들을 16마일을 운전하여 릿지크레스트 시에 있는 호텔에 데려다 주고 늦은 밤길을 운전하여 쿠카몽가 그녀의 집으로 갔다. 밤 10시 넘어서 온 견인차를 안내해서 한시간동안 그곳을 빠져나올 때까지 도와준 코리 그리고 퀙, 모니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보내준 천사들이다. 이들의 헌신적인 도움이 없었더라면 그날 밤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겠다.
폴란드에서 8년 전에 이민 온 44살의 모니카는 한 달 전에 그녀의 사륜차가 론 파인에서 눈 속에 빠졌다고 한다. 날은 캄캄해지고 날씨는 40도까지 내려가 춥고, 도움을 청할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다. 할 수 없이 견인차 회사에 전화했더니 $2500내라고 해서, 6시간 동안 혼자서 눈을 치우고 빠져나왔다고 한다. 그녀 자신이 겪었던 고생을 생각하며 우리가 당한 어려움을 자기 일처럼 도운 모니카다. 인디애나에서 온 33살의 청년, 코리는 대학에서 전기공학과 컴퓨터 사이언스를 공부하고 그 계통의 일을 모터 홈에서 할 수 있어서 자유롭게 여행하며 모험을 즐기며 산다고 한다. 그도 이 주 전에 산길을 넘다가 그의 사륜차가 눈 속에 빠졌을 때 마침 지나가는 사람들이 도와서 4시간 만에 빠져나왔다고 한다. 자신이 받은 도움의 빚을 이렇게 갚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한다. 자기 부모를 대하듯 우리를 성심성의껏 돕는 코리를 보며 요즘 젊은 세대들에 대한 내 생각이 훨씬 더 긍정적으로 바뀌게 되었다. 싱가포르에서 왔다는 40대 초의 퀙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아내와 함께 5살 된 딸과 고양이를 데리고 캠핑으로 여행 중이었다. 국적, 인종, 나이, 성, 상황을 떠나서 어려움 당한 우리를 자기 일처럼 힘을 다해 도와준 이들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세상은 점점 험악해지고 사악해져서 사람을 믿을 수 없다. 때 도둑들과 갱단들의 광란을 뉴스 때마다 본다. 힘 있는 사람이나 나라는 약한 사람과 나라를 공격한다. 선한 사마리안은 찾아볼 수 없다. 세상의 종말이 가까이 왔다.’고 한탄하며 두려워했던 우리에게 ‘아직도 세상은 아름다운 사람이 많다.’고 알게 해준 세 젊은 친구에게 얼마나 고마운지… 이들에게 정말 고맙고 미안해서 얼마의 성의를 표했지만, 그들은 그들의 선한 마음으로 한 수고를 망치지 말아 달라며 사양했다. 오지라서 차를 16마일 시내로 견인하고, 고치는데 값을 톡톡히 치른 여행이다. 그리고 계획했던 여행의 반 정도 밖에 못했지만, 우리는 돈과 시간, 그 어떤 것 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천사 같은 사람을 얻었다. 세상은 아직도 선한 사람이 많이 있고, 살아 숨 쉬는 것이 우연이 아니고 돕는 자의 은혜로 산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은 어려운 일을 함께 겪을 때 그 사람을 안다고 했다. 함께한 두 문우도 한마음이 되어 긍정적인 말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기쁜 마음으로 끝까지 여행을 마칠 수 있어서 감사하다.
고장이 나고 깨진 유리창을 고치는 동안 작은 차를 빌려서 계획했던 여행을 반쯤 마쳤다. 빌린 차를 돌려주고 완전하게 고쳐진 우리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세상이 점점 살기 무섭고 세대가 악하게 변한다고 불평하거나 절망하지 않겠다.
도종환 시인은 그의 시 ‘폐허 이후’에서
“내가 나를 먼저 포기하지 않으면
어느 곳에서나 함께 있는 것들이 있다
돌무더기에 덮여 메말라 버린 골짜기에
다시 물이 고이고 물줄기를 만들어 흘러간다
내가 나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니 아직도 세상은 희망이 있다. 아직도 아름다운 세상이다.
네. 멋진 곳을 가서 힘든 상황에 처하셨었네요. 그러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천사같은 사람들이 아직도 이 세상에 있어 그 어려움에서 빠져 나오셨네요. 그곳을 저도 가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