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화가, 반 고흐의 그림 전시회(Van Gogh LA Exhibit: The immersive Experience)에 왔다.
길가의 돌배 꽃잎이 바람에 눈처럼 하얗게 흩날리는 화창한 봄날, 몬테벨로 시에 있는 고흐 그림 전시장이다. 전시장 건물 밖은 멋진 박물관 건물과는 거리가 먼 직사각형 단층 베이지색의 평범한 공장이나 사무실용 건물 같다. 건물 안, 오른쪽으로 들어서니 한 벽면이 파란 바다 물결 바탕에 해바라기 그림과‘VAN GOGH The immersive experience’라고 하얀색으로 쓰여 있다.
회색 천을 걷고 전시실에 들어섰다. 그의 35개 자화상 작품 중의 하나인 회색 모자를 쓴 자화상과 함께 그의 생애, 가족사진과 여러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자화상에서 그의 윤기 없이 깡마른 얼굴은 빈궁했던 그의 삶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깊게 들어간 파란 눈은 열정과 고뇌, 사랑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이 들어있어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한다. 꽉 다문 입술은 이루지 못한 사랑, 번민, 갈등, 분노를 안으로만 삭이고 삭이느라 애쓰는 것 같다. 풋풋했던 그의 19살 때의 흑백사진에 비해 수염이 자란 30대 자화상은 너무 늙고 우울해 보인다.
검정 커튼을 열고 다음 방에 들어섰다. 말 그대로 몰입‘Immersive experience’ 이 되는 곳이다. 큰 홀에 천장과 네 벽면과 바닥까지 한 작품씩 살아서 움직인다. 작품 안으로 내가 끌려들어 가는 것 같고, 작품이 내게로 빨려 들어온다. 과학이 발달하여 벌투얼 아트(Virtual Art)로 예술을 가깝게 온몸으로 역동적인 음악과 함께 감상할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각기 다른 모양으로 그려진 해바라기(The Sunflowers) 그림들이 방을 가득 채워 내게 다가온다. 반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은 아름다울 때만 그린 여느 꽃 그림과는 다르게 한 꽃병에 꽃이 피기 시작한 것부터 활짝 핀 것, 지기 시작한 것, 완전히 지고 흑갈색 씨만 있는 꽃이 어우러져 그려 있기 때문이다.
이 그림들은 모든 자연과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자연적인 사이클을 말해준다. 맞다, 어느 인생이나 자연이 활짝 핀 아름다울 때만 있겠는가? 사계절을 살아가는 자연처럼 인생에도 기쁨과 슬픔이 있고 시작과 끝이 있다. 그의 실제 삶은 아주 힘들었지만, 충성심, 헌신을 상징하는 노란색과 해바라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아몬드꽃 (Almond Blossom) 그림은 내가 마치 벚꽃이 활짝 핀 거리를 걷는 것 같다. 파란 하늘 바탕에 오래된 나무의 작은 가지마다 핀 연분홍색 아몬드꽃이 바람에 흩날리는 그림이다. 1890년 동생 테오가 아들을 낳고 그 아들 이름을 형의 이름 따라 빈센트 반 고흐라고 짓고 조카의 대부(God Father)가 되어 달라고 했다. 그때 그는 자기의 삶이 건강, 경제적인 것, 사랑, 명예 어느 하나 이루어진 것 없는 초라한 자기 이름을 조카에게 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동생의 마음이 정말 고맙고 태어난 조카가 사랑스러워 조카에게 생명, 부활, 희망의 상징인 아몬드꽃을, 심혈을 기울여 그려서 선물했다. 고흐 형제간의 깊은 우애와 신뢰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어 내 가슴이 뭉클해진다. 이 그림은 팔지 않고 그의 조카가 네덜란드, 반 고흐 미술관에 기증하여 그곳에 소장 되어있다.
1888년, 그가 프랑스(Arles, France), 노란색 이층집 모텔에 살면서 그린 침실(The Bedroom) 과 노란 집(The House) 그림에서 그의 빈곤하게 살아온 삶을 볼 수 있다. 춥고 을씨년스러운 오래된 나무 바닥과 나무 침대 위의 빨간 이불, 파란색 벽에 걸린 3개의 허름한 겉옷과 몇 점의 그림 액자, 작은 탁자에 물병, 컵과 두 개의 낡은 나무 의자가 그려져 있다. 그 빛 바래고 부석거리는 방석 의자에 앉아서 술 마시며 턱을 괴고 고뇌하는 그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다른 의자에는 동생 테오가, 아니면 잠깐 서로 사랑했던 친구가 와서 마주 보고 앉아 서로 위로하며 격려했을지도 모르겠다.
Vincent Van Gogh는 1853년 3월 30일 네덜란드에서 목사인 아버지와 높은 지성을 갖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청년 때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사가 되기 위해 공부했고 성경을 가르치며 가난하게 살았다. 파리에서 삼촌이 일하는 그림 판매하는 회사에서 점원으로 일하며 그림 공부를 했다. 1888년에 프랑스, 노란 집, 모텔에서 친구 Paul Gauguin과 함께 그림을 그리며 지내다 오른쪽 귀를 잘랐다.
그 후 정신병원과 노란 집을 오가며 동생 테오의 도움을 받아 그림을 그리며 살다 1890, 37세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는 ‘The Starry Night’ 그림 속의 달과 별들이 춤을 추듯 황홀한 우주 안에서 편안히 쉬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27세 때부터 10년 동안 900여 작품을 남겼다. 그 중에서 그의 생애에는 ‘The Red Vine(1888)’ 한 작품밖에 팔지 못했다.
그가 살아 있을 때, 무명의 반 고흐는 그를 사랑하고 화가가 되도록 도와준 동생 테오와 어머니에게 그림을 보낼 때 편지도 함께 보냈다. 그가 죽은 6개월 후 심한 가슴앓이를 한 동생이 병으로 죽었다. 테오의 아내 조(Jo Van Gogh–Bonger)가 반 고흐의 그림과 편지를 모아 세상에 알리면서 그림이 팔리고 유명해졌다. 그의 조카가 삼촌의 그림들을 네덜란드 박물관에 기증하였다.
자연, 사람, 하나님을 사랑한 반 고흐의 37년 삶이 그의 작품 속에 스며 있다. 그가 죽기 전날 아침, 그는 태양과 생명으로 가득한 숲의 풍경을 그렸다고 한다. 그 그림 중의 하나가 ‘나무뿌리들’로 고흐의 마지막 그림, 미완의 작품이다. 풍파에 파여 흙 밖에서 뜨거운 햇볕을 받으며 뒤얽혀 사투하는 검게 탄 뿌리들…
그는 이 그림에서 무엇을 말해주고 싶었을까? 우리의 삶에 풍파가 닥쳐올 때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나무들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그 뿌리에서 나온 환한 초록색 나뭇잎이 그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기도였을까? 그는 비록 그의 삶이 무단히 고단하였고 간질, 조울증, 조현병으로 고통스럽고, 사랑도 이루지 못했지만, 마지막까지 열정을 다해 그림을 그렸다. 그가 남긴 작품은 후대의 많은 사람에게 깊은 영감을 주고 있다. 뿌리들이 열악한 환경에서도 파랗고 튼튼한 나무가 되고 자 최선을 다하는 ‘나무뿌리들’ 그림처럼, 전쟁이나 자연재해로 어려움에 부닥친 모든 사람도 희망을 품고 잘 견뎌 주기를 바란다.
고호 전시회 다녀 오셨군요.
그곳은 전에 코스트코 건물이 었습니다.
미루다 폐장하기 하루전에 턱걸이로 저도 갔었습니다.
너무 감동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