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거리를 사러 가는데 할머니 한 분이 벤치에 앉아 있다. 벤치 앞은 네 개의 고인돌 너럭바위가 있는 곳이다. 언뜻 보면 조경 같지만, 그것은 청동기 유물인 고인돌이다. 할머니와 고인돌 사이에는 울타리가 있다. 할머니는 생각에 잠긴 듯 하늘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백발의 커트 머리에 화려한 의상으로 깔맞춤한 할머니의 모습이 무척 세련되어 보인다.
장을 보고 올 때까지 할머니는 그 자리다. 땅을 내려다보며 발끝으로 뭔가를 그리고 있다. 짧은 바지 사이로 보이는 발목이 파리하다. 쌀쌀한 날씨에 비해 옷이 얇은 것 같아 할머니 앞으로 간다. 나이 든 사람을 보면 친정엄마 생각이 나서 오지랖이 넓어진다. 누군가도 나처럼 엄마에게 오지랖을 펼쳐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어 있다.
“할머니, 해도 지고 추운데 이제 들어가세요.”
할머니는 활짝 웃으며 새댁도 달을 봤느냐고 묻는다. 그리고는 묻지도 않은 일과를 실타래 풀 듯 늘어놓는다. 말 끊을 순간을 놓쳐버려 슬며시 주저앉고 만다.
할머니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 간단한 집안일을 하고 아침을 먹은 뒤 미사를 드리러 성당에 간다고 한다. 낮에는 복지관에서 노래를 배우고 점심도 먹는다. 할머니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프로그램인 체조를 하거나 텃밭 체험을 한단다. 노인답지 않게 할머니의 목소리가 솜사탕처럼 부드럽다. 모습 또한 곱다. 그래서 할머니의 말에 리액션까지 하며 듣는다.
“아까 달이 참 곱게 떴지요? 근데 지금은 안 보이네요.”
하늘을 두리번거리며 할머니가 묻는다. 할머니의 달타령을 나름대로 해석한다. 해를 달로 잘못 말하는 것이리라. 머리로는 해를 생각하면서 입으로 달이라는 말이 불쑥 나오는 것이리라.
오늘따라 지는 해가 고왔다. 어둠 빛에 물든 회색 구름을 배경으로 지고 있는 모습이 잘 익은 황도 같았다. 내가 화가라면 분명 그림으로 남겼을 만큼 아름다웠다.
“오늘따라 더 고왔지요? 저도 한동안 봤는걸요. 할 일을 끝낸 해는 은은한 빛이어서 편해요.”
미소를 지으며 듣던 할머니가 느닷없이 오늘이 정월대보름 인데 묵나물 볶는 것을 깜박했다며 허둥지둥 일어선다. 그때야 뭐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챈다. 혼자 가시게 해서는 안 된다는 조급함 때문이었을까? 생각지도 않은 말이 나와 버린다.
“따님이 다 해놨대요.”
“우리 딸을 알아요?”
“그럼요, 아래층에 사는걸요. 아까 엘리베이터에서 만났거든요.”
사실 할머니를 처음 본다. 생각지도 않은 일이 생겨서 난감하다. 할머니를 모시고 아파트 관리 사무실로 가야겠다고 생각하는데 멀리서 “엄마, 엄마” 소리가 들린다. 할머니를 찾는 소리인 것 같아 내심 반갑다.
힘들겠다는 내 말에 딸이 희미하게 웃는다. 예쁜 치매라서 괜찮단다. 늘 웃으며 고맙다, 예쁘다는 말을 자주 하신단다. 예쁜 치매가 있다는 말은 들었는데 실제로 만나 본 사람은 할머니가 처음이다.
사람의 뇌는 같은 생각을 반복하면 그 신경망이 생겨나고, 두꺼워진다고 들었다. 할머니는 미움보다는 행복한 일만 생각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온 것 같다.
인간에게는 해와 달의 시간이라고 하는 것이 있다. 나이가 들어서 해를 보고 달인 것처럼 착각하고, 달을 보고 해로 착각하는 시간이다. 명암의 엇갈린 리듬을 타며 죽음을 향해 걷는 삶의 길에서 느닷없이 만나게 되는 복병이다. 피하고 싶지만 피할 이가 몇이나 될까?
해와 달의 시간이 오더라도 할머니처럼 다른 사람을 덜 힘들게 하는 예쁜 치매가 되고 싶다. 그것은 축복받은 일이지만 노력도 필요한 일이리라. 이왕 사는 거 행복한 일만 생각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면 좋은 기억이 축적되어서 노을처럼 예쁘게 질지도 모르겠다.
딸의 손을 잡고 집으로 가는 할머니의 몸집이 몹시 가벼워 보인다. 바람이 불면 새처럼 날아갈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세월에 치이고 닳아서 가벼워진 몸과 마음처럼 기억도 가벼워져 비슷한 것은 하나로 인식하나 보다.
너럭바위를 바라본다. 문득 무덤 속 주인이 궁금하다. 그도 푸른 고사리처럼 생생하게 살다가 해와 달의 시간을 거쳐 쓸쓸하게 떠났을까? 존재했던 사람이 존재로 환원된 무덤 앞에서 내 모습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