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 친구야!
최숙희
딸이 이사한 집을 보러 남편과 뉴욕에 갔다. 아이의 좁은 아파트가 갑갑하여 우리는 매일 맨해튼에 억지로 나가곤 했다. 뉴욕에서 더 볼 것도 없던 차에 버지니아에 사는 친구가 우리를 초대했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같은 교정에서 지내며 추억을 공유한 친구이다. 미국 온 후 소식이 끊겼다가 페이스북으로 기적처럼 연결됐다. 몇 달 전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친구 딸 결혼식에 부부동반으로 동행했다. 우연히 남편끼리 초등학교 동창임을 알게 되고 서로 사는 곳을 방문하자고 했는데, 기회가 빨리 왔다. 뉴욕 펜스테이션에서 워싱턴 D.C.의 유니언 스테이션까지 4시간 걸리는 버스를 탔다.
직장인에게 휴가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귀한 것인데 친구 부부는 나란히 휴가를 내서 우리를 맞아주었다. 신방을 꾸미듯 새 이부자리까지 준비한 친구의 마음 씀에 감동했다. 아늑함과 편안함이 마치 내 집에 있는 기분이 든다. ‘Life is better with friends’라는 글귀가 생각나며 5박 6일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났다. 집에 도착한 첫날은 ‘우리 먹는 식탁에 숟가락만 더 올릴 거야.’ 하더니 온갖 솜씨를 다 부려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음식을 준비해 두었다.
현지인만 알 수 있는 맛집과 장소를 골라 특급 안내를 받았다. 친구는 우리가 안 가본 곳, 가보았어도 나이 탓인지 기억이 가물거리는 곳으로 여정을 짰다. 여행사 관광처럼 꼭두새벽에 일어나 비몽사몽 하지 않아도 되니 아침잠 많은 나에게 안성맞춤이다. 늦은 나이에 타국에서 자리 잡기까지 고생한 공통점이 많아서일까, 우리 넷은 얘기도 잘 통했다.
하루도 허비하지 않는 알찬 시간이다. 권사인 친구가 추천한 성서박물관은 나일론신자인 내게도 깊은 감흥을 준다. 성경이 역사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내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유럽의 화려한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연상시키는 의사당 도서실도 인상적이었다. 영어가 편하다면 이런 분위기에서 몇 시간씩 책을 읽으면서 머물수 있을 텐데.
식민시대 버지니아주의 주도였다는 윌리엄스버그는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에도 흥미진진했다. 그 시대의 복장을 한 직원들이 18세기 미국의 모습을 꼼꼼하게 재현해서 시간여행을 시켜준다. 마을 전체가 민속촌이자 역사박물관이다. 돌아오는 길에 셰리프한테 과속티켓을 받은 것이 ‘옥에 티’지만, 이제는 그것도 추억이 되었다.
셰넌도어 캠핑장에서 바비큐를 하고 고즈넉한 숲속을 산책했다. 내가 사는 남가주 사막에서는 보기 힘든 푸르름이 멋졌다. 내가 아는 유일한 인디언 처녀 포카혼타스가 셰넌도어강 저편에서 카약을 저어 올 듯싶었다.
화려하고 경이로운 석회암 동굴인 룰레이 동굴 구경을 끝으로 아쉬운 관광을 마쳤다. 포토맥 강변에 벚꽃이 만발할 때 또 오라는 친구의 말이 고맙다. 남가주를 아직 안 와봤다니 조만간 얼른 집을 청소해 두고 불러야겠다. 이번 여행으로 더 깊고 단단해진 우정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하다. 고맙다, 친구야!!
미주 중앙일보 [열린 광장] 11/11/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