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마루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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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숙아 노래 한 번 불러봐라” 웬만해선 낮에 누워계시는 적이 없으신 엄마가 햇살 좋은 어느 오후 대청마루에 깔려있는 시원한 돗자리에 슬며시 누우시며 방과 후 집에 있던 내게 노래를 청하신다. 중학교 3학년이던 내가 “뭐 부를까?” 하고 물어보면 그 당시 유행하던 박재란의 '산 넘어 남촌에는'이나 '이미자의 황포돛대를 불러봐라'라고 하셨다. 엄마 곁에 바짝 붙어 앉아 산~넘어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하고 주저하지 않고 목청을 뽑기 시작하면 눈을 스르르 감고 노래가 끝날 때까지 흐뭇한 표정으로 들으셨다. 다 부르고 나면 "노래 참 잘한다”라고 칭찬하시며, 예의 순서대로 이미자의 황포돛대를 앙콜 송으로 청하셨다.
엄마는 흔히 말하는 음치에 가까웠다. 어떤 노래를 불러도 음정의 높낮이가 비슷했다. 가사 내용을 자세히 듣고서야 어느 가수의 어떤 노래를 부르시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래서 그런지 유난히 내 노래 듣는 걸 좋아하셨다. 어떨 때는 눈 감으신 채로 편안하고 행복한 표정을 지으시며 나지막이 내가 부르는 노래를 따라 부르시기도 하셨다. 시름을 잊은 듯 아이같이 좋아하시는 모습에 어린 마음에도 뿌듯했던 기억이 난다.
막내아들이 대학 2학년 되던 해 느닷없이 기타를 사더니 인터넷으로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당시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연습을 얼마나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한 달에 한 번 정도 집에 올 때마다 기타를 들고 와서 연주하는 걸 들어보면 실력이 확연히 느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기타를 치며 본인이 작곡 작사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엄마인 내겐 프로가수 못지않은 수준으로 들렸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진 한 번도 노래 부르는 걸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던 터라 신기한 마음이 들었다. 어쩌다 내가 노래를 흥얼거리며 너도 한번 불러 보라고 하면 자기는 노래 못 한다고 극구 사양하던 아들이 아니었던가. 궁금한 마음에 어떻게 하여 노래를 하게 됐는지 물어보았다. 기타를 치다 보니 작곡하게 되었고, 그에 맞는 가사를 쓰고 나서 노래 부를 사람을 찾았는데 여의치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직접 부르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주위 사람들의 반응이 좋아 계속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미국에선 리빙룸이나 훼밀리룸을 한국의 대청마루에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심신이 무척 지쳐 집에 들어온 어느 날 저녁 슬며시 소파에 누우며 “엄마한테 노래 한번 불러 줄 수 있니” 하고 방 안에 있던 아들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아들은 선뜻 ”오케이” 하더니 리빙룸으로 나와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편안히 누운 상태로 눈을 감고 가슴 깊이 스며드는 노랫소리에 온몸을 맡겼다. 한 곡을 더 청하며 다음 곡을 기다리는 내 얼굴 위로, 어느샌가 40여 년 전 대청마루에 누우셔서 내가 부르는 노래를 들으시며 온갖 시름을 잊으신 듯 편안하고 흐뭇해하시던 엄마의 얼굴이 오버랩되고 있었다.
12/14/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