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이리나

 

“Who do you think you are? (당신이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라는 TV 프로그램을 봤다.  사회 저명인사들을 초대해서 그들이 누구의 후손인가를 알아보는 프로그램이다.   미국에는 자기 조상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아마 이 나라가 이민자들의 손에 의해 세워진 때문이리라. 

 

입술 위에 점 하나가 매력적인 수퍼 모델 신디 크로포드가 초대 되었다.  그 많은 탑 모델들중에서 거의 이십 년간 패션계을 독보적으로 지배한 그녀였다.  너덜너덜한 청바지도, 다 찢어진 티셔츠도 심술날 만큼 아름다운 신디가 입으면 패션으로 거듭났다.  진올로지스트 (Genealogist, 족보 연구가)의 도움으로 조상들을 리서치했다.  한국과 달리 성씨가 아닌 혈통 중심으로 연구를 한다.  거의 대부분의 앵글로 색슨이 그렇듯이 몇 대를 조사하니 신디의 조상 역시 영국에서 왔음이 밝혀졌다.  영국의 귀족 가문 출신이었다.  신디의 마지막 조상은 샤를마뉴 대제였다.  742년에 태어난 찰스 대제라고 불리운 서유럽 최초의 황제였다.  기뻐하는 신디.  놀라워하는 나.   이제서야 왜 신디가 그처럼 고고하고 섹시하면서 또 기품이 있어보였나 알게 되었다.  역시 왕족의 후예는 달랐다.  부러웠다.

 

초대 손님을 곤란하게 한 적도 있었다.  유명한 코메디언이자 영화 배우가 출연했다.  조사를 시작하자 곧 고조 할아버지가 서부 개척 시대의 살인범으로 밝혀졌다.  어디서 구했는지 ‘Wanted’라고 쓴 현상 수배 사진까지 보여줬다.  사진을 얼굴옆에 들이대면서 자기와 닮았다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자기 조상에 대해 약간의 분노를 가진다고 했다.  은행을 턴 것은 이해할 수 있는데 왜 사람까지 죽였냐고 반문했다.  항상 웃고 있던 그의 얼굴에 실망감이 역력했다.  여기서 그만 뒀으면 하는 기색이었다.  유럽 초대 황제는 아닐지라도 평범한 가문의 후손이길 바랬다고 했다.  동감한다. 

 

천년전에 있었던 유럽의 초대 황제는 지금의 신디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특별한 혜택이야 없겠지만 지금의 신디는 그녀의 조상들에 의해 조금씩 조금씩 형상화된 것이 아니었을까.  지금 내가 무심코하는 행동은 혹시 옛날 할아버지 할머니도 했었을까.  흥미로왔다.  먼 훗날 후손들은 나를 찾으며 어떤 생각을 할까.  감춰진것은 드러나게 되어있고 숨겨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어디서 어느 날 무엇을 먹었는가까지 다 알 수 있는 컴퓨터 시대에 과거가 숨겨질 리가 없다.  그들의 평가는 무엇일까.  행여 오늘하고 있는 일이 후손들을 곤란하게 한다면 다시 생각해 봐야 되지 않을까.  자못 걱정이 된다.  오늘 하루 잘 살기도 힘이 드는데 이젠 아직 태어나지 않은 후손들까지 생각해야 되다니.  역시 산다는건 고달프다.

 

10/10/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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