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생일이라 하루 휴가를 내었다. 아침에 일어나 한 시간 요가를 하였더니 온몸의 신경과 근육이 기쁜 신호를 보내왔다. 매일 장시간의 근무 일정으로 요가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터라 오랜만의 스트레칭이 이리도 개운할 수가 없다.
따뜻한 꿀물 한 잔을 마시며 이층 내 방의 탁 트인 창 앞, 나지막한 안락의자에 앉았다. 새소리가 즐겁게 들려오고 햇빛은 찬란하고 보랏빛 자카란다 꽃잎은 미풍에 소리 없이 흔들리고 있다. 정말 아름다운 봄날이다.
파란 하늘에 흰 뭉게구름 하나 나뭇가지에 걸려있다. 어쩌면 난 이렇게 아름다운 계절에 태어났을까? 너무 춥지도, 덥지도 않고 만물이 소생하고 꽃들이 화창하게 피어나는 가장 화려한 때가 아닌가? '계절의 여왕'이라는 사람들의 말을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어제 가족 단위로 벌써 생일잔치를 마친 터라 오늘은 남편과 단둘이 한식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그는 물냉면에 돼지불고기 캄보, 난 알탕을 시켰는데 웬일인지 아귀탕이 나와버렸다. 난색의 젊은 웨이트리스에게 괜찮다고 하며 그것을 그냥 받아서 남편과 나눠 먹었다. 피로해 보이는 그녀에게 더 이상의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았다. 콩나물이 듬뿍 들어간 국물이 매콤하면서 시원하여 나쁘지 않았다.
식당에서 나온 후 한국 마켓에서 이것저것 사 가지고 돌아왔다. 해물파전 재료와 국산 사이다와 박카스도 챙겼다. 밸리의 한인 타운이라고도 할 수 있는 편리한 지역에 살고 있는 장점 중 하나이다.
오랜만의 나들이였다. 남편이 운전해 주고 쇼핑 카트도 밀어주고 구입한 물건을 차 트렁크에 실어주고 내려주니 이리 편할 수가 없다. 새삼 그림으로 보던 정다운 노부부의 모습과 닮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집에 돌아와 편한 실내복에 딸이 선물한 비둘기 빛 벨벳 로브를 걸쳐 입고 내 왕좌(?)에 다시 앉는다. 하늘과 나무, 그리고 거기 걸린 흰 구름 바라보기를 계속한다. 이것이 나의 일이니까.
여기 이렇게 앉아 있노라면 내 여고 시절, 독일에서 유학을 마치고 막 돌아온 삼촌과 함께 흥미롭게 읽었던 책, 미하엘 엔데의 ‘모모 - 시간 도둑과 사람들에게 빼앗긴 시간을 다시 돌려준 한 아이의 이상한 이야기’가 떠오르며 내가 마치 원형극장의 계단에 앉아있는 모모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슬프게도 그 삼촌은 이제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동안 기다리는 거야, 싹이 돋아나기까지 땅속에 묻혀 잠자는 씨앗처럼 말이 야. 네 안에서 말이 자라나게 되기까지는 그만큼 오래 걸린단다. 그렇게 기다릴 수 있겠니?"
- 미하엘 엔데 <모모>
나는 여기 앉아 주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세계에 몸을 맡긴 채 그저 존재할 뿐이다.
혹은 음악을 들으며 명상하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고 일기를 쓰기도 한다. 한 잔의 따뜻한 보이차를 마시기도 하고 때에 따라 시원한 콤부차를 마시기도 한다.
재택근무 중 쉬는 시간에 여기 올라와 유튜브로 오락 프로그램을 보며 머리를 식히기도 한다. 커다란 유리창 너머 있는 하늘과 먼 산을 바라볼 때 나는 평화롭고 행복하다. 내가 일 주일에 한 번씩 걷는 정든 산책로를 품고 있는 산이다. 통유리에 걸린 일출과 일몰의 황홀한 순간을 목격할 때면 무아의 경지에 한없이 빠져들기도 한다.
아마 앞으로 무수한 날 난 여기 이렇게 앉아있을 것이며 그것은 나를 여전히 설레게 할 것이다. 이 작은 크림색의 이층집 나의 왕좌에서 저 아래 왕국을 바라보며, 언제까지나.
5월에 태어나셨군요.
축하드립니다.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누리시는 모습이 너무
행복하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