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 말한다
한영
새벽에 잠이 깼다. 시차 적응이 예전같이 수월하지 않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여행하는 것이, 그 반대 보다는 비교적 쉽지만, 요즈음에는 모든 게 전과 같지 않다.
매우 피곤했는데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 뒤척거리다 겨우 얻은 얕은 잠에 꿈이 분주하게 떠다녔다. 어수선한 꿈을 꾸고 나면 현실감을 잃는다. 새우처럼 구부리고 누운 채로 나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 건가? 생각을 집중해 본 다. 아, 지금 나는 한국에 와 있는 거지.
동쪽으로 난 창에 뿌옇게 아침의 기운이 퍼져온다. 다시 잠들기를 포기하고, 일어나서 창문을 연다. 밤새 여러 불빛을 받아 삼키던 철교는 이제는 회색빛 낡고 피곤한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혼자 아파트를 나선다. 새벽 공기가 부드럽게 온몸을 감싼다. 길을 하나 건너면 풀밭이 나오고, 조금 걸으면 강기슭에 닿는다. 한국에 사는 언니가 이 강가로 이사 온 후, 나는 한국에 머무는 동안에는 자주 이곳을 찾는다. 물안개 아래서 강은 그저 잠잠하다. 긴장이 풀리고 안온해진다. 따뜻함과 평안함, 강이 내게 주는 오늘의 선물이다.
탄금대에 도달할 수 있을까 하여 발걸음을 옮긴다. 우륵이 그 옛날 가야금을 탄 곳이라는데 지나간 세월은 까마득하고 천천히 걷는 나의 걸음은 언제 어디에 머물지 모르겠다.
공원처럼, 그냥 내 버려둔 땅처럼, 자연스럽게 정돈된 수풀이 펼쳐져 있고 지루하지 않게 곡선을 이룬 작은 길이 나 있다. 지난 장마에 손상된 나무다리는 어느새 보수가 끝나서 길을 연결해 주고 있다.
오늘도 여전히 나의 발길은 멀리 닿지 못한다. 길을 벗어나 강가의 벤치에 앉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이다. 아, 좋다. 이 느낌은 마음뿐만 아니라 몸의 긴장감도 풀어준다.
남한강 줄기의 강가에 앉아서 강물과 그 너머의 풀 언덕을 바라본다. 지난주에는 서울에 사는 친구가 찾아왔다. 우리가 가는 길을 모르고 겨우 눈앞의 길만 보이던 십 대에 만난 친구이다. 서로 말이 없어도 어색하지 않으니, 편안한 친구이다. 나란히 앉아서 강물을 바라보며 생각나는 게 있으면 가끔 말을 했다. 그렇게 바쁜 것도 없고 중요한 일도 없어진 우리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했다. 때로는 천천히 머물 듯하다가, 또다시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며 한나절을 그렇게 지냈다. 강물도 표정이 있으며 또한 말도 한다. 그 자신 몸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강물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었고, 우리는 그것을 들은 듯하다.
어느새 안개는 걷히고 검은 듯 푸른색의 강물이 몸을 드러냈다. 흩어진 작은 나뭇잎을 안고 흔들고 있다. 마치 아기를 재우는 엄마처럼 느껴진다. 강물은 이렇게 편안하고 잔잔한 얼굴을 보이기도 하지만, 분노를 품고 달리기도 한다. 여름날에는 며칠 동안 쏟아진 폭우를 그대로 받아들이더니, 많은 것을 품고 달렸다. 황토색으로 변한 무서운 얼굴이었다. 쓰레기 같은 것들이 같이 쓸려 내려갔다. 두려우면서도 시원한 기분으로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 끝은 알 수 없으나 어딘가에 다 토해내는 것 같았다. 나의 소심한 마음으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시원함이 그곳에 있었다. 그러고는 어느새 다시 정화되어 맑은 모습으로 잔잔히 흘렀다.
90세가 넘은 친정 고모님은 흐르는 강을 자꾸 보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했다. 왜냐고 묻지는 않았다. 나의 시선과 마음은 고모의 연륜을 따라갈 수는 없고, 다만 강이 내게 하는 말을 들어 보려 한다.
오늘도 강가에 서서 물 아래의 물을 느낀다. 머무는 듯하여도 움직이며, 급하게 달려가는 듯하여도 스스로 정화하며 버티는 힘이 전해져 온다. 강물이 흐르는 것을 그저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품고 싶다. 살아가는 든든한 힘과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충주에 있는 절경의 탄금대에서 글을 쓰셨군요.
저는 어릴 적 글짓기 대회에 참석하는라 딱 한번 갔었는데 정말 멋진 곳이어서 기억하거든요.
가슴에 강을 품고 사는 작가는 뭔가 다르지요.
아름다운 추억 많이 담고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