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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古典)의 반열에 오른 문학작품은 팔색조(八色鳥) 같습니다. 시대 상황과 장소에 따라 여러 갈래로 해석되기 때문입니다. 같은 작품을 젊을 때와 나이 들어 읽는 맛이 다른 것도 고전 만의 매력(魅力)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헤밍웨이의 단면은 원고를 87차례나 수정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태어난 소설이 [노인과 바다]입니다. 이 작품으로 1953년엔 퓰리처상을, 그리고 그 이듬해에는 노벨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원고를 87차례나 수정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라는 질문을 수 없이 던져보았습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 1899~1961)가 1952년에 낸 소설 [노인과 바다(The Old Man and the Sea)는 2만6571개 단어로 구성된 책입니다.

헤밍웨이는 고교 졸업 직후 [캔사스 시티 스타](Kansas City Star)에 취직해 수습기자로 일했고 1921년 프랑스 파리에서 작가 수업을 할 때는 캐나다의 [토론토 스타](The Toronto Star) 특파원이었습니다.

 

그래선지 [노인과 바다]는 군더더기나 수식어 없는 하드 보일드(hard-boiled) 문체(文體)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소설 안의 문장은 간결하고 힘찬 단문(短文) 또는 중문(重文)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학창 시절 이 책을 접했을 때는 망망대해에서 노인의 물고기 잡기 실패담을 지루하게 다뤘다는 인상이 강했습니다.

 

소설의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주인공 산티아고(Santiago) 라는 노인은 매일 바다로 나갔지만 84일동안 물고기를 한 마리도 못잡았습니다. 마을에서 조롱의 대상이 되었던 그가 85일째 되는 수요일 아침 큰 고기를 한번 잡아보려고 먼 바다로 나갑니다.

산티아고는 3일 동안 목숨 건 싸움 끝에 무게 1500파운드(약 675kg) 넘는 19피트(약 580cm)짜리 대형 청새치(marlin)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항구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청새치를 뜯어먹으려 덤비는 상어 떼를 만납니다.

 

그는 최선을 다했으나 상어와의 싸움에서 패해 뼈만 남은 청새치를 배 옆에 묶어가지고 항구로 돌아옵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사자(獅子) 꿈을 꾸면서 잠을 잠니다. 그리고 소설은 끝납니다.

 

이 스토리만 보면 언뜻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시지포스(Sisyphus)가 떠오릅니다. 시지포스는 산꼭대기를 향해 커다란 바윗덩이를 쉴 새 없이 밀어 올리는 고역(苦役)을 반복합니다. 그런데 소설을 차분하게 읽을수록 71년 전 활자화된 헤밍웨이의 언어가 새롭게 살아나 다가옵니다. 산티아고 노인은 몇가지의 인생훈(訓)을 건네주는 듯 합니다.

 

①이글거리는 눈동자...용기와 기백

소설 앞부분에 있는 “노인은 모든 게 늙었으나 눈은 예외였다. 그의 눈은 바다 색깔처럼 푸르고 원기왕성하고 패배를 몰랐다.. (Everything about him was old except his eyes and they were the same color as the sea and were cheerful and undefeated)”는 구절부터 그러합니다.

 

한 마리의 고기도 낚지 못해 운(運)이 가장 나쁜 사람이라는 ‘살라오(salao)’로 불린 산티아고는 조금도 위축되거나 좌절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헤밍웨이는 이어 “산티아고는 소년 마놀린(Manolin)과 함께 바다에 나갔다가 87일동안 한 마리도 잡지 못했지만 이후 3주일 연속으로 큰 물고기들을 잡았다”고 썼습니다.

이 말은 인생살이에서 성공·실패는 늘상 있는 일이므로, 설령 고난이 생각보다 오래 가더라도 낙심(落心)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용기(勇氣)와 기백(氣魄)을 가져야 한다는 메시지입니다.

 

②희망과 낙관

바다로 나가면서 “85는 행운의 숫자지(Eighty-five is a lucky number)”라고 외친 산티아고가 먼 바다에서 혼자 한 말도 인상적입니다.

“나는 그것들을 정확하게 지켜. 나에게는 더 이상 행운이 없을 수도 있어. 그러나 누가 알겠어? 아마도 오늘 행운이 생길지. 매일매일은 새로운 날이지. 운(運)이 따른다면 더 좋겠지만 나는 오히려 정확하게 할 거야. 운이 다가올 때, 준비돼 있도록. (I keep them with precision. Only I have no luck any more. But who knows? Maybe today. Every day is a new day. It is better to be lucky. But I would rather be exact. Then when luck comes you are ready).”

언젠가 다가올 기회를 잡으려면 하루하루를 새로운 마음으로 정확하게 준비하며 집중하겠다는 산티아고의 다짐입니다. 헤밍웨이는 “나는 운(運)이 없어”라며 한탄하는 사람을 위해 이 문장들을 쓴 것 같습니다.

 

③생계형 아닌 ‘사명(使命)의 삶’

망망대해에서 처음엔 청새치 나중엔 상어 떼와 목숨 건 싸움을 한 산티아고의 내면(內面)은 어떨까? 바닷 어부 일은 알아주는 사람 없고 거칠고 위험하지만, 산티아고는 자신의 일에 대한 경외(敬畏)감과 몰입, 자부심으로 충만합니다. 다음 구절들이 이를 웅변합니다.

“물고기야 나는 너를 사랑하고 아주 많이 존경해. 그러나 오늘이 다 가기 전에 너를 잡을 거야.. (Fish, I love you and respect you very much. But I will kill you dead before this day ends).”

 

“나는 그를 잡을 것이다. ‘모든 위대함과 영광 속에서’. 나는 물고기에게 사람이 할 수 있는 것과 인내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줄 거야.  (I’ll kill him though, ‘In all his greatness and his glory.’ I will show him what a man can do and what a man endures).”

“물고기도 내 친구다. 하지만 나는 그를 잡아야 해. 별[星]들을 잡으려 애쓸 필요없는 게 나는 기뻐.  (The fish is my friend too. But I must kill him. I am glad we do not have to try to kill the stars).”

 

산타아고는 청새치를 ‘친구’라 부르며 하나가 되는 합일(合一)경지에 도달합니다. 그는 ‘별을 잡는 것’(kill the stars) 같은, 화려하지만 분수 넘치는 일에는 관심조차 보이지 않고 자기 생업(生業)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을 고마워합니다. 산티아고는 생계가 아니라 자부심을 위해 일한다고 단언합니다.

“너는 살기 위해, 일용할 양식을 구하기 위해 물고기를 잡지 않았지. 너는 어부이기 때문에 그리고 자부심을 위해 물고기를 잡았어. 너는 물고기가 살아있을 때나 죽었을 때 모두 물고기를 사랑했어. 그를 사랑했다면 잡은 건 죄가 아니야.. (You did not kill the fish only to keep alive and to sell for food. You killed him for pride and because you are a fisherman. You loved him when he was alive and you loved him after. If you love him, it is not a sin to kill him).”

“나는 너(청새치) 보다 더 위대하고 아름답고 침착하고 고귀한 존재를 본 적이 없다. 이리 와 나를 죽여 다오. 누가 누구를 죽이는지는 중요치 않아.. (Never have I seen a greater, or more beautiful, or a calmer or more noble thing than you, brother. Come on kill me. I do not care who kills who).”

 

력(全力)투구하는 프로 정신

산티아고는 절대자(絕對者)에게 간절하게 매달리는 절실한 모습도 내보입니다.

“나는 신앙심이 없어요. 그러나 물고기를 잡을 수 있다면 주기도문(主祈禱文) 열 번을 외겠습니다. (I am mot religious, but I will say ten Our Fathers and ten Hail Marys that I should catch this fish, and I promise to make a pilgrimage to the Virgin of Cobre if I catch him).”

고기 잡는 일을 자기의 존재 이유이자 자부심으로 생각하는 산티아고는 ‘사명(使命)의 사람’입니다. 그는 동시에 단 한 마리를 잡기위해 모든 힘과 정성을 쏟아붓는 프로 직업인(professional)입니다.

 

⑤불평 대신 ‘사자 꿈’

산티아고는 일하는 방식도 다릅니다. 헤밍웨이는 이렇게 묘사합니다. “두려워 말고 너 자신을 믿어라(You better be fearless and confident yourself).”

“나는 그(물고기)에게 가까이, 가까이, 가까이 가야 해. 머리가 아닌 가슴을 잡아야만 해. ‘침착하고 강하게..’ (I must get him close, close, close. I mustn’t try for the head. I must get the heart. ‘Be calm and strong, old man’).”

 

소설 속 산티아고는 “셔츠는 수없이 꿰매 닻처럼 헤져 있었고, 머리는 많이 늙었고, 눈을 감으면 얼굴에 생기라곤 없는(His shirt had been patched so many times that it was like the sail. The old man’s head was very old though and with his eyes closed there was no life in his face)” 홀로 사는 가난한 노인입니다.

산티아고는 그러나 소설에서 단 한 번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불평하지 않습니다. 거대한 청새치를 잡았다가 상어 떼와의 싸움에서 뺏기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섯 번이나 쉬어야 할만큼 지쳤지만 어떠한 불만족, 서운함도 없습니다.

 

“길 위쪽 그의 오두막 안에서 노인은 다시 잠들어 있었다. 그는 여전히 얼굴을 대고 자고 있었고, 소년은 옆에서 그를 지켜보며 앉아 있었다. 노인은 사자 꿈을 꾸고 있었다(The old man was dreaming about the lions).”

 

소설의 맨 마지막 이 문장에 등장하는 사자(獅子)는 자신의 고유함과 독립성을 잃지 않겠다는 불굴(不屈)의 의지(意志)를 상징합니다.

평론가들은 [노인과 바다]에서 최고의 명문장(名文章)으로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다. 인간은 파괴당할 수는 있어도 패배할 수는 없다... (Man is not made for defeat. 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를 예외없이 꼽습니다.

현실이 아무리 가혹하거나 불공정해도 징징거리거나 불평하지 않고 당당한 산티아고의 ‘삶에 태도(態度)’가 핵심이라는 얘기입니다. 소설속 산티아고는 오히려 고통과 고난을 사랑하며 “얼마든 다시 와라”고 일갈하는 인간, 즉 초인(超人)입니다.

 

헤밍웨이의 대표작은 [노인과 바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무기여 안녕]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입니다. 이 4권을 한데 묶어 미국 사이먼 앤 슈스터 출판사(Simon & Schuster)가 출판했습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1899년 7월 미국 일리노이주 오크 파크(Oak Park)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1961년 7월 미국 아이다호주 케첨 자택에서 엽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노인과 바다]라는 소설의 내용과는 달리 허무하게 그의 생을 마감했습니다.

결국 좋은 책을 썼지만 한가지 놓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믿고 천국가는 일]을 놓쳤습니다.

그는 멋지게 산 인본주의자였습니다. 그러나 영생의 확신이 없었습니다. 결국 그의 생애는 인본주의는 승리하는 것 같으나 패배자가 된다는 교훈을 남겼습니다.1.g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