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전문가 

 

                                                 헬레나 배

 

 그를 생각하면 아이처럼 밝고 순수한 미소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의 이미지는 항상 맑고 따스한 영혼의 소유자로 나에게 다가온다. 그에게는 인생의 모든 물음의 해답이 간단명료하였으며 확실하였다.  사랑, 언제나 그것이 그의 답이었고 불변의 진리였다. 

 

 참으로 아름다웠고 고결하였던 한 인간, 그에 대한 감동과 찬사는 무한하기만 할 것 같다.  ‘한다면 하는’ 강한 신념과 투지의 눈빛과  겸손하고 소박한 태도, 그는 실로 이 혼잡한 현대를 살아가며 방황하고 있는 군중에게 정말 아름다운 삶이 어떠한 건지 자기 한 몸 던져 아주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나는 살아가며 지극히 사소하고 이기적인 문제들을 안고 부대끼며 괴로워하다가도, 이태석 신부님을 생각하면 그런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초라하게 느껴지곤 한다. 내 제한된 사고가 지극히 자기중심적이었다는 잘못을 매번 깨닫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시간’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예수님은 30년 동안 평범한 사람으로 사시다가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삼 년 정도 복음을 전하는 영적 지도자로서의 삶을 사신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신부님 또한,  젊음의 시간을 여러 가지 공부를 하며 보냈고 마침내 신부가 되어 아프리카로 떠날 무렵에는 그의 나이 사십을 바라볼 때였던 것 같다.  하느님의 온전한 일꾼으로 쓰이기 위한 불림을 받기까지는 어떠한 ‘시간’이 걸려야 하는 것이 아닌지? 그가 그렇게 아프리카 오지, 톤즈로 떠나기까지에는 이 신부님 자신의 많은 기도와 묵상의 시간들이 있었으리라.  우리 각자에게도 적당한 고유의 ‘불림의 시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한 사람의 부재가 어쩌면 그렇게 많은 사람 가슴에 그리움의 바람을 몰아오고, 그와의 추억들이 그렇게 많은 가슴을 훈훈하게 덥혀주고, 그의 순수한 영혼이 그렇게 많은 사람에게 감동의  교감을 불러올 수 있었는지? 예수님을 많이 닮은, 어린 아이처럼 밝고 맑은 심성의 소유자였던 그는 실로 거인이었으며 성스러운 사람이었다. 

 

"멋진 말은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는 있어도 영혼을 감동시키거나 변화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영혼을 감동시키거나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두 영혼의 진실한 만남을 통해서만이 가능합니다.

우리의 진실한 눈빛과 작은 희생, 봉사를 통하여 이들은 예수를 느끼거나 예수님의 모습을 보게 되고  그것으로 인해 그들의 영혼에 작은 변화의 물결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영혼의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이태석 신부 저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 

 

 그는 실로 영혼의 마술사였다. 우리 안에 하느님, 혹은 사랑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이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사랑의 심안으로 우리가 신과 함께 존재할 때 우리에겐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부드러움이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준 사람이었다. 그리고  또한, 사랑은 가족이나 국가 혹은 종교조차 초월하여 우리가 함께 사는 지구 전체로 확산해야 함을 그의 한 몸 바쳐 아낌없이 보여주지 않았던가!

 

  음악을 사랑하였던 사람, 어린 시절, 텅 빈 성당에서 혼자 풍금을 연주하며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과 사랑을 나누었다. 아마도 그 어린 소년은 그의 매번 풍금 연습을 예수님을 위하여 바쳤으리라. 적막한 공간을 헤치듯 퍼져 나가던 풍금의 음파는 예수님과 어린 소년의 영혼을 교감케 하지 않았을까? 오후의 햇살과 함께 춤추던 아름다운 그 선율,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지켜보시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사랑 가득한 시선 속에서 소년 태석은 무엇을 느끼게 되었으며 어떠한 결심을 하게 되었을까?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다. 그리고 예수님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분을 닮고 싶어 했고, 그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온전히 그분께 바쳤다. “예수님이라면 여기에 학교를 먼저 지으셨을까, 병원을 먼저 지으셨을까? 아무래도 학교를 먼저 지으셨을 것 같다” - 그리고 그는 손수 건물을 스케치하고 노란 벽과 초록빛 지붕의 학교를, 자신이 종이에 색칠한 그대로 지어 완공하였다. 강에서 모래를 실어와 벽돌을 직접 찍어내고, 태양열을 이용하여 전깃불도 밝혀서 톤즈의 아이들에게 공부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는 그곳 아이들의 아버지와 같았다. 그들과 함께 조로 쑨 묽은 죽으로 매일 연명하며, 때로는 함께 굶어가며, 생사를 다투며 고통으로 신음하는 수백 명을 밤새워 치료해 주었다. 그러나 또한 그가 결성한 브래스 밴드가 ‘천상의 양식’을 연주하는 것을 들었을 때, '법열'을 맛보았다고 술회하기도 하였다. 

 

 그가 자신의 생이 다 해감을 감지하였을 때, 우물을 파다 두고 온 톤즈에 돌아가  아직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은데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음을 깨달았을 때, 그는 하느님을 잠시 원망하였을 수도 있었으리라.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그러나 그는 곧 하느님의 가없는 평화와 위로의 대답을 들으셨으리라 나 이제 감히 짐작할 뿐이다. 

 

 이태석 신부님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카리스마는 그와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주위 사람들과 함께 참으로 아름다운 원을 만들어가고 있음을 본다. 가장 작은이에게 베푸는 선행이 바로 신을 모시는 행위라고 생각하신 분,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사랑의 하느님을 닮고자 하였던 사나이, 그는 바로 사랑 자체였다. 그는 모든 것을 믿었고 모든 것을 바랐고 모든 것을 견디어내었다.

 

 그분이 이제는 영원한 안식과 천상의 평화를 누리시길 바라며, 우리의 사랑을 다시 한 번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우리의 사랑을 좀 더 키우고 거기서 한 걸음씩 더 나아가, 이 신부님께서 어린 시절 손수 지어 부르던 노래 가사처럼, ‘세계 평화’에로의 배턴을 이어 받아 실현할 때가 온 것 같다. 

 

 우리는 모두 하나라는 것, 우리는 모두 ‘사랑’의 별에서 왔다가 ‘사랑’의 별로 돌아가는 ‘사랑’의 숨결이라는, 그러한 전설을 기억하는 ‘영혼의 전문가’가 되고 싶지 않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