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에서 얻은 행복
이현인
이른 아침부터 출근을 서두르는 남편을 본다. 코비드 19가 시작된 후 유튜브와 한국 정치 뉴스에만 빠져있더니 다행히도 식물원에서 일하게 되었다. 임금은 둘째치고 그저 일자리가 생긴 것만으로도 신이 났다. 오전 10시가 출근 시간인 데도 7시에 집을 나서서 주위가 거무스름한 주황빛으로 물든 오후 6시가 되어야 돌아온다. 몸은 지쳐 보이지만 표정은 밝다.
남편과 저녁 식사를 마주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는다. 사장 아들이 다운 증후군 환자인 모양이다. 고집이 세어서 가끔 힘든 일이 생긴다고 한다. 아들은 비위가 상하면 나무를 사러 오는 고객에게 심한 욕을 하고, 그것으로도 화가 풀리지 않으면 집으로 간다고 자동차에 올라타 버리기도 한다. 마치 어린아이 같아서 남편이 가지 말라고 다독거리곤 한다고 했다. 동정심과 연민의 정이 많은 남편은 그 아들과 함께 있노라면 비 오는 그믐밤처럼 마음이 어두운가 보다. 남편은 그 청년을 도우며 돌보고 싶단다. 식물원에서 또 한 가지 일거리가 더해진 듯하다.
남편의 하루 일정은 챙이 넓은 카우보이 밀짚모자를 쓰고 무릎까지 오는 긴 고무장화를 신고 흙과 사귀는 일이다. 말라가는 화초에 시원한 물을 공급하고 퇴비와 공기가 잘 통하는 화학 알갱이를 5:1로 섞어 거름을 만들어 새 주인을 기다리는 나무 화분 속에 넣는다. 또한 손님을 맞이하여 모종과 씨앗과 나무를 판다. 손님이 원하는 나무를 자동차에 실어 줄 때도 있어서 항상 허리에 보조 띠를 차고 있다. 손님 중에는 영어를 전혀 모르는 중국 사람도 있다.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아 남편이 땅바닥에 한자로 가격을 써 주기도 한다. 그제야 가격을 알아챈 중국인은 남편에게 고마워하며 후에 다시 이곳을 찾는다.
고향이 그리워 심심풀이로 시작한 일을 활기차게 해 나가는 남편의 모습은 교사직에서 물러나 무역회사로 처음 출근하던 때만큼이나 의욕이 넘쳐 보인다. 막상 교사직을 떠나서는 세상 물정에 어두워 일반 회사 업무를 감당해 내지 못할 것 같았는데. 무역회사 대표로 오래 근무하다가 은퇴했다. 나름대로 적응하여 맡겨진 삶을 일구어내는 성실성에 나는 언제나 박수를 보낸다.
남편의 과거 시절로 돌아가 본다. 그는 충청도 입장에서 태어나서 초등학교 3학년부터 풀을 뽑고 모를 줄지어 심고 중고등학교 시절엔 논에 물 대기, 소먹이 주기, 콩밭 매기 등 벼농사와 복숭아도 재배하는 부모님을 도왔다. 드넓은 과수원 원두막에서 복숭아밭을 지켜내어야 할 때는 깜깜한 여름밤이 무서워 숨조차 쉴 수 없어 검둥이 개를 데리고 잤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에는 공부하지 말고 아버지 일을 도우라는 어머니 말씀에 쌓였던 화가 치밀어 나무판자 책상을 마당에 내동댕이쳤다. 농사일이 지긋지긋하다며 악을 쓰는 그에게 화가 난 어머니는 부지깽이로 종아리를 피멍이 들도록 때리셨다.
그렇게 그는 부모님을 도우면서 농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대학에 가고 싶어 손때가 묻어 거무스름하게 변하고 찝찔한 냄새나는 헌 책을 구입하여 낮에는 뜨거운 논밭에서 일하고 밤에는 등잔불 아래서 영어 정해와 수학 완성을 공부했다. 등잔불 밑이 어두컴컴한 것도 모르고 지내다가 서울 누나가 가져다준 촛불로 공부하니 세상이 훨씬 밝아졌다고도 했다.
1968년에 형님이 사는 서울로 가서 대학 입학시험을 준비했다. 교육대학 시험에 합격하고 드디어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5년 동안 어린이를 가르치면서 야간 대학에 편입하여 힘겹게 무역학과를 졸업했다. 드디어 무역회사에 입사하게 된 그는 발바닥에 날개바퀴를 달고 다니듯 온 세계를 드나들었다. 남편의 회사는 자수를 놓은 직물 무역회사였고 그의 업무는 유럽, 중동, 남아메리카 등 일 년의 반은 외국으로 나가 주문받아 온 자수 섬유를 생산하여 내보내는 일이었다. 흔들리지 않는 신념으로 근면하고 정직하게 일한 그가 벌어들인 외화는 나라의 경제 발전에 큰 도움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나이 칠십이 되어 사십여 년간 다니던 무역회사에서 은퇴했다. 가장으로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일했던 시간을 추억 속에 곱게 접고 노년의 날개를 펴서 유유하게 비상할 때가 은퇴의 시작이 아닌가. 남편은 언제부터인가 친구들과 골프도 치고 교회 내의 사역도 잘 맡아 하더니 모든 것에 의욕을 잃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십여 년 전의 갑상샘 절제 수술로 인해 생겼던 우울증이 재발하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신문에서 구인 광고를 본 남편은 눈을 번쩍 떴다. 어렸을 때의 기억이 정겨운 추억으로 떠올라 식물원을 찾은 것이다. 그는 학창 시절에 부모님을 제대로 돕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는 고백을 한 적이 있다. 가난했던 시기에 부모님께 한 실수를 어떤 방법으로라도 기회가 생기면 만회하고 싶어 했다. 그는 마음의 고향을 만났다.
남편은 어린 시절을 그리며 나무를 한그루씩 정성 들여 가꾸노라면 엔도르핀이 솟아난다고 말한다. 그곳에서 키우고 있는 산양도 남편이 챙겨주는 묵은쌀을 맛있게 먹고 쫄쫄 따라다닌다. 교사 시절의 경험을 되살려 다운 증후군 환자인 사장님 아들도 보살핀다. 두고 온 고향의 그리움을 불러내어 식물원에 있는 나무와 이야기하며 온실에서 모종을 심어 가꾸고 가축을 돌본다.
노년의 행복을 찾고 있는 남편을 바라보니 나도 마음이 편하다. 아름다운 수목과 연약한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 남편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나도 행복하다.
선생님
서재실 개설을 축하합니다!
좋은 글 많이 쓰셔서 선한 영향력을 선사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