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세미티 하프 돔 

 

 

 

 

  이박삼일 휴식을 위해, 암벽 등반가들의 성지라는 요세미티를 찾아갔다요세미티 국립공원은 미국 캘리포니아 중부에 있는 산악지대다수천 년 된 나무가 우거진 넓은 세쿼이아 숲거대한 암벽 하프 돔폭포세계에서 가장 높은 화강암 절벽 엘 캐피탄이 유명하다.

 

 요세미티 숲속으로 들어가는 길은 험하고 멀었다활엽수가 드문드문 나있는 구릉지대를 지나 고도가 높아질수록 나무는 촘촘히 들어서고더 올라가면 여기저기 침엽수가 나타나기 시작한다숲이 깊어질수록 침엽수는 밀도가 높아지고 나중엔 틈이 없을 정도로 빽빽하게 들어선 침엽수림을 만나게 된다.

  산 초입엔 활엽수들이 띄엄띄엄 헐렁하게 서 있다 정상에 다다를수록 곧게 뻗은 침엽수들이 빈틈이 없을 정도로 들어찬 숲의 모습은원숙한 인간의 영혼과 닮았다.

  인간은 영혼이 고양될수록 깊은 숲속의 침엽수림처럼 꽉 차고 비어있지 않으며올곧고 그 바늘잎처럼 자기 경계에 날카롭다그래서 유혹에 쉬 흔들리지 않고일희일비하지 않기에 늘 조용하다.

  공자님은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인자한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지혜로운 사람은 움직이고인자한 사람은 고요하다.”고 하셨다강물이나 파도는 끝없이 흐르고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미동도 안 하고 서 있다그러나 동적인 것만 힘이 있는 게 아니고 정적이어도 힘이 있다바로 산의 정기다이 신비한 힘은 침묵의 힘 아닐까?

  인자한 사람이 고요할 수 있는 것은 어진 품성으로 산처럼 많은 것을 품어 앉을 수 있기에 잠잠한 것이다육체적 힘보다 정신적 힘을 갈구하는 사람이라면 바다나 강보다 산을 찾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하늘에 닿을 듯 뻗어있는 아름드리 침엽수는 지상에선 천상에 가장 가까이 다다른 영매체리라별이 되진 못했지만지척인 별과 밤마다 수많은 대화를 나눠 실제로 영성이 높은 거목이 되었는지 모른다정신적 구도자들도 대개는 산을 찾는다산속에서 옛날 말로 도를 닦는다고 하고 현대적 표현으론 명상을 한다고적한 숲과 심오한 영성(靈性)은 어색함이 없고 잘 어울리리라진리나 종교적 깨달음을 구한다는 것은 작게는 자기성찰을 의미한다철저하게 자신에서부터 출발해야 삼라만상의 이치를 깨우치는 게 아닐까.

  

  바닥으로부터 높이 1,100m로 솟아 있는 화강암 절벽 엘 캐피탄(El Capitan) 위용은 너무 압도적이어서 현실감이 없다어찌나 까마득한지 하늘에 떠 있는 듯하다어이 암벽 등반가들만의 로망일 수 있겠는가...

 

  아침햇살과 아침안개가 뒤엉킨 요세미티란 공간과 시간은 오묘했다햇빛은 입자와 파동으로 이루어졌다는 아인슈타인의 광전효과를 맨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서였다. 

  햇살과 안개, 두 파동이 뒤엉켜 서로의 기세를 격하게 겨누면서 금가루. 은가루 입자 되어 계곡을 부유했다. 햇빛도 아니고, 안개도 아닌, 그 색의 질감은 고흐의 그림처럼 깊고 오묘했다. 다른 한편으론, 밤새도록 지상에서 피워올린 안개라는 욕망을 지우기 위해 천상에서 내려온 햇빛이 허둥대는 것 같기도 했다

  어느새, 육안으론 분별할 수 없던 금가루. 은가루 입자들이 알알이 반짝이는 유리구슬 되어, 골짜기를 수놓고 있었다세사의 몽롱한 꿈과 물리학이 만나는 순간을 나는 목도했던 것이다.

 

  청량한 날씨햇발은 따스했으나 바람결은 차가웠다. 한가로이 떠 있는 새털구름새 소리시냇물 소리숲속의 향기로운 바람... 침엽수림에서 나오는 피톤치드(phytoncide)가 더럽혀진 영혼을 살균해주는 것 같았다.

 

 하프 돔(Half Dome)을 보자마자 청마 유치환의 바위가 떠올랐다.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 년(億年비정(非情)의 함묵(緘默)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흐르는 구름머언 원뢰(遠雷)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두 쪽으로 깨뜨려져도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바위 전문)

 

  젊은 날 내 심혼을 일깨웠던 시다흔들리고 흔들리던 나날들흔들리고 싶지 않아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소원하던 날들이었다.

  요세미티를 걸으며 누구보다도 청마가 왔다 가야 했을 산이라 생각했다난 속으로 엘 캐피탄하프 돔이 있는 요세미티는 청마의 산이라 명명했다한 가지 더하자면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이 부르는 그리고 별이 되다를 듣기에 가장 어울리는 곳이다.

 ‘고양된 영혼이란 실체는 저 하얀 바위가 아닐까흔들리지 않고굴하지 않고그리하여 무엇과도 맞서고......

 흔들리지 않는 바위와 올곧게 뻗은 침엽수는 무생물과 생물의 이질적인 것이 아니라고양된 영혼의 심상(心像)으로 서로 소통하는 사이인지 모른다아니 오랜 친구였는지도 모른다.

 

  원형 돔을 절반으로 잘라 놓은 모양의 거대한 바윗덩어리인 하프 돔(Half Dome)은 신비로운 형상으로 인해 요세미티의 랜드마크가 되었다아웃도어 브랜드로 유명한 노스페이스 상표가 이 하프 돔이란다높이 해발 2700m인 산처럼 장대한 돌덩어리를 반으로 동강 내버린 것은 빙하다.

  빙하의 차가움은 얼마나 서슬 퍼렇기에 웅대한 바윗덩어리마저 양파 자르듯 싹둑 잘라내는 것이었을까물방울 한 방울이 천만년 안으로 안으로 쌓았던 차가움은 칼보다 예리하고 불보다 뜨거웠단 말인가순식간에 잘려 나간 바위는 울기나 했을까거암마저 무색하게 만드는 차가움불면 사라지는 차가움도 경지에 이르면 바위를 단방에 가른다.

  천지만물은 강한 것도 약한 것도 없어 우열을 가릴 수 없다고 한다모두 다 별이 만든 입자로부터 왔기 때문에원자(原子단위로 내려가면 돌 같은 무기체와 사람 같은 유기체의 경계가 사실상 없어진단다.

  현대물리학은 돌나무짐승사람등 지구의 모든 물질은 상호작용에 의해 나타나는 현상이지 결과로서의 결정체는 아니라고 말한다다시 강조하면 우주에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실체는 없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역설한다.

  자연이든 이웃이든 우리는 하나로 연결되어있음으로, 내 몸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양자역학이 일깨워주는 것이라면, 종교와 과학도 화해할 수 있는 건가?

 하프 돔은 갑자기 잃어버린 반쪽 때문에 얼마나 황망했을까흔적도 없이 사라진 반쪽을 찾아 얼마나 헤매었을까얼마나 많은 세월을 기다렸을까아마도 하프 돔(Half Dome)은 땅 위에 서 있는 가장 커다란 기다림의 상징물이리라. “깃발이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이듯 기다림의 표상으로서 말이다.

   온전한 돔(Dome)을 상상한다얼마나 장엄하고 우아했을까떨어져 나간 반쪽은 산산이 부서져 빗물에 쓸리고 쓸려서 어느 먼 바닷가 모래로 쌓이고 있으리라언젠가 다시 만날 가뭇없는 꿈을 꾸며...

   그리운 나의 나라조국(祖國)은 반쪽으로 쪼개져 있지만 흔적도 없이 사라진 건 아니니반듯이 하나가 되리라그것은 꼭 이루어져야 할 사랑의 또 다른 이름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