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춧가루가 뭐길래

 

 

신순희

 

 

고춧가루를 사먹은 적이 한번도 없다. 미국에 살면서 해마다 한국에서 어머니가 부쳐주는 걸 먹었다. 당연히 냉동실에 있는 줄 알았는데 없다. 진짜 고춧가루가 떨어졌다. 어머니 말고 누가 내게 무조건 고춧가루를 보내줄까? 아무리 생각해도 없다. 어머니는 얼마 전에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했다. 노환에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고생하신다. 한국에 있는 형제들도 같이 고생이다.

 

지난 번 어머니 소식을 동생으로부터 들었다. 입원해 계신 동안 자식들 뿐 아니라 손주들도 병실에 와서 허룻밤씩 자고 갔다. 막내딸이 아기를 낳는게 신기했다는 어머니 말씀이 생각난다. 그 막내딸의 자식인 어머니의 손주가 어머니 병 시중을 들었다. 어머니는 그게 고맙고 미안하다고 하신다.

 

멀리 있다고 돕지도 못하면서, 고춧가루 보내달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하지 못했다. 양심도 없는 자식이다, 나는. 어머니 안부를 묻다 차마 그 말은 하지 못했다. 전화를 끊자 아쉬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평행선을 그었다. 딸은 도둑이라더니 옛말 틀린거 하나도 없다.

 

한인 마켓에서 처음으로 고춧가루를 샀다. 내키진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원산지가 어딘지 잘 모르겠다. 검붉은 색에 입자가 굵다. 김치를 담구니 도무지 고춧가루가 풀리지 않고 따로 걷돈다. 맵지도 않고 색이 잘 물들지도 않고…..한국에서 보내준 걸 좀 더 아껴 먹을 걸.

 

가끔 김치를 사서 먹는다. 담구기 귀찮을 때, 아파서 일 못할 때,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김치를 한 병 사서 먹으면 어떤 건 이상하게 막 뚜껑을 따고 하루만 맛있고 그 다음부턴 맛이 없다. 아무래도 집집마다 입맛이 다르니 그런가 보다. 먹다보면 김치찌개를 끓이게 된다. 무슨 고춧가루를 사용하는 걸까?

 

어머닌 보청기 끼고도 잘 알아듣지 못하신다. 통화 하려면 큰소리를 질러야 한다. 사실 내가 안 들린다고 소리 지르는거지 목소리 크다고 잘 들리는 건 아니다. 어머니 말씀에 주로 네 네, 대답만 한다. 이번엔 얘기할테다. 시침 뚝 떼고 말할거다.

“어머니, 고춧가루 좀 보내 주세요.”

몇 번을 말해야 알아 들으실텐데, 소리를 높여 천천히 또박또박 말해야지.

“고춧가루가 떨어졌다구요.”

이거 비밀인데, 행여 어머니와 같이 사는 동생이 들을까봐 걱정이 되지만 할 수 없다.결국 나는 큰소리로 어머니와 통화했다.

 

일주일도 안돼서 등기속달로 ‘서대문 우체국’이라고 한글이 인쇄된 박스가 배달되었다. 그 보따리의 내용물은 이렇다. 우선 애타게 바라던 고춧가루.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는 평소 알고 지내던 농협 아주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맵지 않은 고춧가루를 주문해 어머니 집으로 배달받았다. 꼬들꼬들한 무말랭이. 어머니가 직접 무를 잘라 실에 꿰어 방에 널어 말렸다. 이건 어느 무말랭이와 비교할 수 없이 쫄깃하고 오돌거려 씹는 맛이 그만이다.

 

그리고 어머니가 잘 하시는 찹쌀가루. 찹쌀을 불려 방앗간에서 빻아와서(아마 누구를 시켰겠지) 안방 아랫목에서 말렸을 것이다. 이것으로 찹쌀전병을 부쳐 설탕을 조금 뿌려 먹으면 입안에 착착 감긴다. 한 번 이 맛을 알면 시판하는 찹쌀가루는 먹지 못한다. 언젠가는 덜 마른 찹쌀가루가 태평양을 건너오는 동안 상해서 버린 적이 있지만 어머니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파란 봉투도 나왔다. 어머니 편지다. 장장 네 장의 파란 편지지에 쓰셨다. 옛날 맞춤법대로 쓴 한글에 간간히 한문을 섞은 편지는 갑자기 쓰다 말고 끊기는 부분도 있어 읽기 쉽지 않았다.

 

어머니의 마음은 쓸쓸한 겨울이다. 편지를 읽는 내 마음에도 찬바람이 분다. <2013년도 가을 계절하에 온 가족 네 식구 다 무고한지. 어떻게 세월이 흘러 소용도 없이 구십이라는 나이 먹어 무정 세월. 오늘도 누가 나이 물어보면 부끄럽다. 내가 자식들 한테 짐이 되니 살고는 있지만 때로는 한심하지. 그러나 덕분에 나날이 잘 먹고 잘 산다……아프면 사람이 필요해. 참 사람이 필요해. 일상생활이 쉬운것 같아도 병나면 그걸 알 수 있어. 너무 무리한 생활 하면 곤란해. 너도 아직은 체력이 있겠지만 세월따라 몸조심하기 바란다.>

 

소포 잘 받았다는 전화를 드린다며 미적거리다 궁금한 어머니가 먼저 전화했다.

“받았니?”

“아이쿠, 죄송해요, 어머니. 잘 받았어요. 근데, 엄마가 직접 부쳤수?”

“아냐, 네 동생하고 같이 택시 타고 가서 부쳤어.”

탄로났네. 동생이 날 얼마나 한심하게 생각할까.

 

어머니 없으면 나는 친정을 잃는다. 고춧가루도 없다. 아무리 연로하고 병환 중이어도 내가 마음 놓고 부탁할 곳은 어머니 밖에 없다. 고춧가루 때문이라도 어머니가 오래 사셔야 하는데, 참 못된 딸이다, 나는.

 

 

 

[2014년]

 

--뿌리문학 창간호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