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 모니카 우체국에서
산타 모니카 우체국에 갔다 뜻밖에 마주한 아름다움과 슬픔.
가수 안치환이 부르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좋아하지만, 진짜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있나? 의심을 품곤 했다. 휴머니즘의 당위성을 노래하는 것이라 받아들였지만 완전 공감할 순 없었다. 여태껏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소포를 부치는 이십 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서양 여자.
흰 블라우스에 짙은 감청색 재킷과 바지, 세미 정장 차림이랄까. 약간 큰 키에 조금 마른 듯한 몸피, 지나칠 정도로 맑고 깨끗한 피부, 찰랑거리는 단발머리는 머릿결 하나 흩어짐이 없다. 목소리는 조용하고 공손하다. 종교적 분위기가 느껴질 정도로 단정한 자태가 아름답다.
갑자기 아름다움과 직면한 나는 웬일인지 슬픔이 농무처럼 밀려왔다. 그녀가 발산하는 아름다움은 분명 탁한 게 아니라 투명한 것이었는데 말이다. 아름답다는 ‘즐거움과 기쁨을 줄 만큼 예쁘고 곱다’는 뜻임으로 당연히 즐겁고 기뻐야 할 텐데 슬프다니... 그 슬픔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그녀를 보며 뜻밖에도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는 조지훈 시 “승무”가 떠올랐다. 관념으로만 알았던 시인데 구체적 대상물과 맞닥뜨린 상황이랄까. 산사도 아니고 한국 사람도 아닌 미국에서.
서러움을 느낄 정도로 곱다는 것은 무엇일까. 아름다운데 왜 서럽다는 것 인가. 아름다움에 깃든 슬픔의 정체를 알고 싶다.
아름다움과 마주쳤을 때 사람들은 보통 가까이 가고 싶어 하고, 자세히 보고 싶어 하고, 만져보고 싶어 한다. 이는 그것을 내 것으로 취하고 싶어 하는 무의식의 발로인지 모른다. 그러나 대부분 그 아름다움을 취할 순 없다.
하와이 주 오아후 섬 카네오헤에서 라이에 가는 83번 해변 도로는 얼마나 아름답던지 내내 슬픔이 물안개처럼 피어올랐다. 나중에, 나중에, 이 한적한 길을 걸어가다 어디쯤에서 쓰러져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시신은 깨끗한 바닷바람이 씻고 맑은 햇살이 말리거나, 혹은 날짐승이나 들짐승이 먹어도 좋으리라. 오히려 이런 곳에서의 풍장(風葬)은 지나치게 호사스런 작별일 거란 미안함이 들 정도였다. 경치나 전경이 너무 아름다워 슬펐던 적이 그때가 처음이다.
풍경이 아름답든, 꽃이 아름답든, 사람이 아름답든, 누구나 동의하는 아름다움이란 우리가 꿈꾸는 이상적 실재다. 이것을 플라톤은 미의 본질은 주체나 대상을 초월한 이데아라 말했다. 이상은 도달할 수 없는 경지다. 하여 이상의 속성엔 이미 슬픔이 내재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정신의 세계나 물질의 세계나 현실에 가까워질수록 불완전해지고, 그만큼 절대적인 것으로부터 멀어진다. 일상적일수록 특별할 수 없고 어떤 감탄이나 감복을 줄 수 없다.
아름다움에 눈길이 가고 손길이 가고 발길이 가는 것은 모두 마음이 가는 것이다. 그러나 아름다움이란 앞에 말했듯 이상적 실체, 절대(絕對)다. 아무리 아름다움에 마음이 향하여도 다다를 수 없기에 슬픔이 밀려드는 것인지 모른다. 달리 말하면 불완전체인 나와 아름다움이란 완전체의 조우는 합일(合一), 그 일치할 수 없으므로 태생적 슬픔을 잉태한 건지도 모른다. 이는, 아름다움을 열렬히 좋아하는 게 아니라 내가 곧 아름다움이고자 하는 열망이 어쩔 수 없는 슬픔으로 자리 잡는 것이리라. 그리하여 내가 아름다움에 감정이입이 강렬할수록 슬픔의 깊이는 더욱 뜨거우리라. 그러나 그 슬픔은 아픔이 아니라 자기정화 즉, 카타르시스(catharsis)라는 점이다. 결국, 아름다움이 주는 슬픔은 감동에서 비롯되므로 울어도 좋고 아파도 좋다는 뜻이다.
아름다움의 대명사는 꽃이다. 그래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을 수긍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아름다운 꽃, 경치, 예술품 일지라도 직접 교감이나 소통을 할 수 없다. 인간만 가능하다. 그래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건가?
서양 여자에게서 동양란 향기가 났다. 그리고 한지에 먹물이 스미듯 슬픔이 스며들었다.
그녀의 젊음과 나의 늙음, 그녀의 눈부심과 나의 초라함. 이 극명한 비교가 내 슬픔의 정체는 아니다. 그보다는 그녀가 발산하는 청초하고 순결한 ‘아름다움’에 속되고 속된 나는 돌이킬 수 없는 절망감을 느꼈기에 슬펐을 것이다. 아니면 젖은 듯한 그녀의 긴 속눈썹 때문에 슬펐는지도 모른다.
이쁘다는 것은 단순한 외모의 매력이고 아름답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풍겨 나오는 인격적 매력 같은 것이리라. 아름다운 사람은 영혼을 정화시켜준다.
지금까지 꽃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경탄만 할 뿐 그 이상은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에야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사실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우체국을 나오자 한 무리의 바닷바람이 재잘거리며 지나가고 있었다.
아름다움에 관한 깊은 관조의 글 입니다.
아름다움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본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잃어버린 것에 대한 그리움, 다시 찾고 싶은 우리의 원형.
우리의 무의식이 알아보는 완전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