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피들의 본향 샌프란시스코
‘샌프란시스코’하면 떠오르는 것은 국사 시간에 배운 전명운. 장인환 의사가 일본 앞잡이 스티븐스를 암살한 곳. 어릴 적 달력에서 보았던 신기한 금문교(Golden Gate Bridge) 사진. 추억의 팝송 스콧 맥켄지가 부른 “샌프란시스코”, 동성애자들의 천국, 등등 분방함과 낭만이 넘실거릴 것 같은 항구 도시다.
정오경 도착, 점심을 간단히 먹고 금문교부터 찾아갔다. 날씨는 기막히게 좋다.
아내와 함께 금문교를 도보로 건너가 보려 했으나 세찬 바닷바람과 쌩쌩 달리는 자동차들의 소음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 결국 다리 중간에서 되돌아온 우리는 금문교를 보며 감탄과 탄식을 했다.
이 다리가 완공된 1937년, 나의 조국은 조선이었다. 일제의 수탈이 가장 극에 달하던 시기며 대다수 백성은 문맹에 자동차, 전기도 모르던 때 아니던가. 가마 타고 마차 끌던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에 태평양 건너 미국이란 나라는, 징검다리도 아닌 차들이 건너다니는 팔 차선 다리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지구란 같은 행성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미국에 비판적인 내가 금문교를 보며 미국의 위대함에 완전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면, 친구들은 뭐라 말할까. 압도당한다는 게 무언지 절절하게 실감하면서 고국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씁쓸하기만 했다.
러시안 힐에서 관광명소인 롬바르드 스트리트(Lombard Street)는 5m 간격으로 굽이굽이 급경사진 길이다. 세계에서 가장 꼬불꼬불한 길(The Crookedest street in the world)이라고 부르는데 급경사를 커버하기 위해 1920년에 설계된 자동차 길이다. 언덕을 다 내려가 거리 끝에서 다시 내려온 높다란 언덕길을 올려다보면 화단의 꽃과 하늘이 그림 같다. 고대 유적 바빌론의 ‘공중정원’이 떠올랐다. 언덕 아래 항구에 정박 중인 배들은 또 다른 설렘을 준다.
샌프란시스코는 언덕의 도시다. 언덕이 45개나 된다는데 그게 장난이 아니다. 체감으론 각도가 45도는 넘을 것 같은 급경사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바다는 언제나 눈에 들어온다. 그럼에도 힘겹게 언덕을 오르내리는 자동차와 케이블카와 사람들을 보며 상념에 잠기게 했다.
깐소네 ‘언덕 위의 하얀 집’이란 노래도 있지만, ‘언덕 위의 하얀 집’으로 대변되는 인간의 꿈과 낙망.
미국에 와보니 부자들은 높은 언덕이나 산허리에 대저택을 짓고 사는 게 특징이었다. 굳이 아파트 펜트하우스(Pent house)를 말하지 않아도 부자들은 높은 곳에서 살고 가난한 자들은 낮은 곳에서 산다. 인간의 잠재의식 속엔 아래를 내려다보고 살고 싶은 욕망이 숨어있는 것 같다. 이 ‘내려다보고 살고 싶은 욕망’이 세상에 나오면 사람을 한 수 내려다보며 가르치고 명령하고 싶은 지배욕 같은 것으로 작동하리라. 아니면 위에서 군림하고 추앙받고 싶은 권력욕 같은 것으로 작용하리라.
언덕은 우리에게 오르막과 내리막이란 인생의 굴곡을 동시에 안겨주는 자연환경이다. 그래서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에 하얀 집을 짓고 살고 싶은 욕망과 현실적 좌절감은 더욱 대별될 수밖에 없다. 샌프란시스코가 미국에서 자살률이 제일 높은 도시라는 점은 아름다운 언덕과 무관하진 않으리라.
언덕은 수직이고 평지는 수평이다. 수직은 상승과 하강의 움직임 동(動)이라면 수평은 안정적으로 머무르는 정(停)이다. 동은 활기차지만, 안정감이 없고 정은 안정적이지만 활력이 없고 지루하다. 인간은 안정을 꿈꾸지만, 안정을 이루면 금세 지루해 한다. 그래서 인간은 수직과 수평을 동시에 갖거나 이룰 수 없다.
월요일 출근 때문에 이른 귀가를 위해 고속도로로 접어들자 한 무리의 라이더(rider)들이 요란하게 지나간다. 투둥 거리는 오토바이 소음도 브랜드라는 할리 데이비드슨 라이더들이다. 고스족을 연상케 하는 파격적인 스팽글 해골 장식 티셔츠, 굵은 체인 목걸이, 알록달록한 바지, 라이더 재킷, 워커 부츠, 선글라스, 문신 등으로 각자의 개성을 뽐내며 ‘히피들의 본향’ 샌프란시스코를 질주하는 것이다. 반항과 자유(自由)를 소리치던 히피(Hippie)들의 모습을 본다. 부럽기도 하면서 나는 절대로 따라 할 수 없다는 자괴감이 든다.
히피는 1960년대 샌프란시스코에서 청년층을 중심으로 일어난 반체제, 자연 찬미를 외치던 사람들이다. 물론 히피즘은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성소수자 옹호, 반전 반핵, 페미니즘 운동 등 수많은 해방의 아이디어가 히피들로부터 나왔다는 점은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탈사회적 행동을 하며 기성의 사회통념, 제도, 가치관을 부정하고 인간성 회복, 자연으로의 귀의(歸依), 평화주의를 주창한 히피 정신은 아직도 유효한 게 아닐까?
비틀즈를 좋아하는 이유도 그들이 음악을 통해 히피 정신을 잘 구현했기 때문이다.
Let it be(내버려 두어라).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LA에서 샌프란시스코 올라갈 때는 5번 도로를 타고 내려올 때는 101번 도로를 탔다. 도로 양 옆으로 펼쳐진 아몬드나무, 체리나무, 오렌지나무, 포도나무 밭은 그 규모가 얼마나 큰지 상상을 절(切)했다. 한국에서 보던 큰 농장이나 과수원이 아닌 우리 상상력으로는 도저히 가름할 수 없는 크기의 규모였다. 이 황당무계한 비자연적인 풍경을 보며,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는 크기나 규모는 꿈조차 꿀 수 없구나, 란 생각을 했다. 꿈도 환경에 의해 귀결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일박이일 주마간산 격으로 둘러 본 샌프란시스코, 문명이 아무리 위대해도 자연만큼 위대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여기 짧은 여행 소감을 간단히 적어본다.
히피들의 본향 샌프란시스코, 탈사회적 행동을 하며 기성의 사회통념, 제도, 가치관을 부정하고 인간성 회복, 자연으로의 귀의(歸依), 평화주의를 주창한 히피 정신은 아직도 유효한 게 아닐까? - 예리한 통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