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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제일 싫어하시는 것이 우상숭배다.

그리고 동성애다. 안타깝게도 이태원에는 이 두 가지가 공존한다.

 

물론 이태원의 역사의 흐름 속에 담긴 슬픈 사연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지만 마귀의 축제인 할로윈에 캘트족이 인신제사를 드리던 그 때의 기억을 되살리기라도 하듯 상상하기조차 힘든 참사가 벌여졌다.

 

성령께서는 생명을... 사탄은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일을 한다. 어찌 사탄의 손아귀가 아니면 그 많은 젊은 생명을 죽음으로 내몰 수 있었겠는가?

 

제시대 때까지 남산 자락의 한남동과 보광동을 아우르는 이태원 일대는 이름 없는 민초(民草)들의 시신을 묻은(매장) 무덤이 커다란 산을 이루고 있었다.

2020년 한 재벌 3세가 소유한 이태원 저택 땅을 파던 중 관도 없는 유골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이태원에는 특히 서부이촌동 새남터에서 순교한 천주교 신자와 역모(逆謀)로 몰린 사형수 등 억울하게 생을 마감한 이들의 무덤이 많다.

 

1920년 18세의 나이로 순국한 유관순 열사도 이화학당 수위실에 안치되었다가 이태원에 묻혔다. 1936년 조선총독부가 4대문 안팎의 경성부를 확장하는 도심 개발 조치에 따라 이태원 공동묘지가 망우리로 이장되는 과정에서 열사의 묘가 유실된 뒤 아직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이태원은 유관순 열사 이전에도 민족의 자존심이 외세에 수 차례 짓밟힌 오욕(汚辱)의 땅이었다.

 

한자로 이태원은 '배나무(梨)가 많은 역(驛) 마을'을 뜻하는 梨泰院으로 쓰지만 조선 초에는 왕의 성씨(오얏나무 李)인 李泰院으로 썼다.

 

그러다 임진왜란 후 '씨가 다른(異) 아이를 임신했다(胎)'는 뜻의 異胎院으로 썼다는 기록이 역사서에 적혀있다. 왜군의 선봉장인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군대가 숭례문(남대문)으로 입성한 뒤 인근 이태원에 주둔한 것이 오명의 씨앗이 됐다.

 

가토의 일본 제2군은 이태원에 있던 비구니들의 절인 운종사를 병영으로 삼고 승려들에게 몹쓸 짓을 했다. 가토 부대는 선조를 잡으러 이태원을 떠나면서 절을 불살라버렸고, 오갈 데 없어진 여승을 비롯해 피해를 당한 많은 부녀자가 움막을 짓고 자식들과 함께 모여 살았다.

 

이태원의 명칭이 오늘날 '배나무 이태원'이 된 것은 가토의 왜군이 물러난 지 반세기가 흐른 효종 때였다. 그 뒤로도 이태원과 외세의 인연은 끈질기게 이어졌다.

 

1882년 임오년에 조선 구식 군대가 군란을 일으키자 진압을 명분으로 조선에 파병된 청나라 부대가 이태원에 주둔했고, 청나라를 꺾고 조선을 식민지로 만든 일본이 이곳에 조선군사령부를 세웠다.

 

1945년 일본 패망과 함께 우리 민족은 독립을 성취했지만 이태원만큼은 미 8군의 주둔으로 이방인의 땅으로 남았다. 용산 미군기지 밖 이태원 거리는 미군 장병과 가족들이 찾는 식당과 술집, 상점이 즐비한 거대한 유흥지대로 변모했다.

 

1973년에는 이태원 중심가에 해밀톤호텔이 문을 열었다. 이후 이태원은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의 다문화를 상징하는 곳으로 세계에 널리 알려졌고 선진국으로 도약하면서 다문화와 흥이 흘러 넘치는 지금의 거리가 됐다.

 

주한미군기지 이전과 국운 상승과 맞물려 치부의 땅에서 세계적 명소로 변신한 이태원에서 황망한 사고로 수많은 꽃다운 청춘들이 목숨을 잃어 온 나라가 충격과 슬픔에 잠겼다.

 

세계인에게 이태원의 랜드마크로 각인된 해밀톤호텔 주변에서 후진국형 참사가 벌어져 나라의 자존심이 더욱 말이 아니게 됐다.

오욕으로 점철된 이태원 애사(哀史)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또 하나의 오점이 찍힌 것이다. 

 

이같은 가슴 아픈 애사를 뒤로하고 오늘의 이태원에 무엇이 그리고 어떤 것들이 자리 잡고 있는지 사진을 보면서 영적인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1.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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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은 '서울 속의 외국' 혹은 '서울의 이방인동'이라 불리며 한국사회 안에서 가장 이색적이고 독특한 공간으로 자리매김해왔다. 이러한 서울 속의 예외적인 외국문화(?)지대로서 이태원의 공간 성격은 1990년대 이후에 더욱 다채로워지는 변화를 보였다.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용산에 들어선 미군 기지의 영향을 받으며 미국적 색채를 강하게 띠던 이태원 지역이 1990년대 미군의 지속적 감축과 함께 그 빈자리를 제3세계 이주노동자들이 매워가며 다국적, 다인종의 외래문화가 집합되는 공간으로 탈바꿈해 간 것이다.

 

여기에 한국 내 해외문화 요소를 소비하려는 한국인 수요가 늘어나면서 이태원은 외국인과 한국인 모두가 찾는 서울 중심부의 특별한 영역으로 확대되어왔다.

 

다문화? 무엇이 문제인가를 눈여겨보아야 하겠다. 차제(此際)에 종교다원주의도 다시 한번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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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동성애를 절대 금하고 있다.

 

1)동성애는 창조의 원리에 역행한다.

 

하나님은 태초에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둘이 한 몸이 되어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도록 축복하셨다(창1:27-28). 그래서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이다.

동성애를 인정하는 어떤 미국교단들은 한 여자와 한 남자와의 결혼을 두 사람 사이의 서약(commitment between two people)”으로 바꾸었다. 세속화된 것이다.

성경은 “그리스도와 밸리알(사탄)이 어찌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고후6;15)라고 말다. 소돔사람들이 롯의 집에 온 천사들과 상관(have a sex with them, 동성 성교)하려는 사람들을 비류라고 표현다. 비류는 히브리어로 “벨리알의 자손들”이라는 뜻이요 사탄의 자손들”이라는 뜻다.

 

2)동성애는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씀에 정면 위배된다.

 

하나님은 천지창조 후에 인간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문화 명령을 내리셨다(창1:28). 그러나 동성애자들은 서로 같은 동성이니 아이를 낳을 수가 없다. 동성애나 동성결혼은 가문의 혈통을 끊게 하는 가문과 사회와 국가의 반역다.

 

3)동성애의 죄는 죄 중에서도 가장 하나님이 미워하고 혐오스럽게 여기는 죄이다.

 

동성애의 죄는 성경적 표현이 “가증하다”(히: 토에바트)는 것으로 구역질나고 가장 혐오스러운 것으로 증오한다는 뜻이다. 영어로는 abomination이라고 표현다. 성경에 가증하다 라고 표현한 곳은 주로 우상숭배나 동성애의 죄를 말할 때 사용다(신12:29-31).

우상숭배의 산물인 복술, 요술, 무당, 신접자, 박수, 초혼자 등을 가증한 행위라고 하셨다. 동성애 행위는 가증한 일이고 사형을 시켜야 할 죽을 죄라고 성경은 가르다(레18:22).

 

4)동성애는 순리를 역리로 사용하는 것이다(롬1;26-27).

 

순리는 영어로 natural relation으로서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 즉 자연적 관계 곧 남자와 여자의 부부간의 성생활을 말하는 데 역리는 영어로 Unnatural relations로 부도덕한 성관계로 인간이 인간이기를 포기하여 짐승이 되는 인간성 상실의 죄다(롬1장). 사실 짐승 동성애를 하지 않다.

 

5)동성애자들은 천국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며 난잡한 성생활로 결국 천벌을 받다.

 

고린도전서 6장 9절은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헬, 말라코이-동성애에서 수동적 역할 하는 자)와 남색하는 자(헬, 아르세노코이타-동성애에서 적극적인 역할하는 자)는 하나님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말다.

 

통계에 의하면 동성애자들은 5년 이상 함께 살지 못한다고 하며 대부분이 난잡한 성생활을 다. 그래서 결국 간암, 간염, 직장암 등에 걸려 수명이 25-30년 단축된다. 구강 및 항문 성행위로 인해 7가지 비바이러스성 감염과 에이즈에 감염되어 죽게 되는 저주를 받게 다.  

이상과 같은 성경의 가르침을 마음에 두고 다음 사진을 들여다보기 바란다.

 

 

낮에는 레스토랑, 저녁에는 게이바인 EAT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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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t Me는 언뜻 보면 레스토랑으로 보인다. 낮에는 요리사복을 입은 사람들이 요리를 준비하는 곳으로 다양한 음식과 칵테일, 그리고 각종 주류들을 선보이는 곳이다.

 

주변 다른 게이바(Bar)에 비해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밤에는 바(Bar)로 바뀐다.  일반인들과 여성들도 자주 찾는 공간으로 매우 다양한 성적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이 모이는 혼종적 공간이다.

 

 

다국적 젊은 게이들의 천국 Pul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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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lse는 이태원을 찾는 젊은 게이들 사이에서 가장 유명한 공간이다. 금요일과 토요일에만 문을 여는 이 업소에는 지방에서 관광차를 타고 올라올 정도로 많은 게이들로 붐빈다.

 

외국인도 많다. 백인과 흑인을 비롯해 태국, 필리핀 등 동남아 게이들도 찾아온다. 또한 레즈비언들과 일반 여성들, 일반 남성들도 자주 찾는 Pulse는 다양한 성적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이다.

 

금요일 새벽 3~4시경 Pulse 앞은 수많은 게이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춤을 추고 맘껏 논 게이들이 Pulse 앞에서 담소를 나누는 풍경을 볼 수 있다. 그들이 게이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연예인 수십 명이 이태원에 모여 있다고 착각할 정도로 잘 가꾼 몸과 잘생긴 외모를 뽐낸다.

 

트랜스젠더바(Bar) 간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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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빠이’는 게이힐 위쪽에 위치한 트랜스젠더바(Bar)다. 아나따의 지배인이자, 간빠이의 대표인 K씨가 운영하는 업소다.

 

간빠이에서는 마담과 1~2명의 트랜스젠더들이 손님들을 접대한다. 간빠이 마담은 한국 트랜스젠더 1세대 격으로 일본에서 20년 동안 활동하다가 한국에 돌아와 간빠이에서 일하고 있다.

 

이 업소는 남성들을 주요 타깃으로 영업을 하고 있다. 이태원의 트랜스젠더 고용 업소는 트랜스젠더가 사장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로 게이 지배인을 고용하고, 트랜스젠더 종업원들이 손님 접대를 담당하는 시스템이다.

 

 

게이힐에서 가장 오래된 성적 소수자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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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힐에서 가장 오래된 성적 소수자의 공간인 TRANCE의 모습이다.

‘Trance’ , ‘Why not?’ , ‘Pulse’는 이태원에 위치한 클럽이다. 게이들이 춤을 추고 놀 수 있는 공간으로 이 업소들이 위치해 있기에 이태원에 젊은 게이들이 모여 든다.

 

종로에 모이는 게이들이 주로 30대 이상의 ‘아저씨’ 게이들이기에 단란주점 형태의 업소들이 많은 반면, 이태원에 모이는 게이들은 주로 20대 젊은 청년들이다.

 

그래서 이태원에는 클럽이나 바(Bar) 형태의 업소들이 주를 이룬다. Trance는 이태원 게이힐에 처음 입점한 업소다. 규모는 작지만 나름의 독특한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기에 일반들도 많이 찾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매주 금요일 새벽 2시에 업소를 찾는 손님을 위해 공연도 열린다. 대표와 종업원은 게이이고, 공연은 트랜스젠더가 한다.

 

 

트랜스젠더 단란주점 아나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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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따’는 이태원 소방서 골목에 위치한 트랜스젠더 가라오케다. 이태원 게이힐과 마주보고 있는 곳에 위치한 이곳은 7~8명의 트랜스젠더가 손님들 옆에 앉아 이야기를 들어주고, 같이 술도 마시고 노래도 하면서 접대하는 곳으로 ‘여보여보’나 ‘보카치오’와 같이 공연이 주가 되는 업소와 구별된다.

 

술을 마시고 손님이 원할 경우 2차를 나가는 것도 가능하다. 이 업소는 남성들을 주요 타깃으로 영업을 하고 있다. 이태원의 트랜스젠더 고용 업소는 트랜스젠더가 사장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로 게이 지배인을 고용하고, 트랜스젠더 종업원들이 손님 접대를 담당하는 시스템이다.

 

러시아 여성들을 고용하고 있는 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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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에 위치한 클럽 RIO의 간판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러시아와 필리핀 등에서 온 여성들이 예술흥행비자를 받고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이태원에 들어왔다.

그러나 이 여성들은 미군을 상대하거나 한국인들을 상대하는 매매춘 여성으로 전락하기에 이른다.

 

 

태국인들이 유흥을 즐기는 맨하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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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과이 음식전문점 꼬메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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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면 가득한 메모와 낙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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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nd Ole Opry의 벽면에는 미군들과 외국인들의 추억이 담겨 있는 메모와 낙서들로 도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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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궁당의 제물 진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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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동 부군당 안에는 용궁당이 함께 존재한다. 홍수 때 떠내려온 것을 부군당 한 켠에 모신 것이다.

용궁당 측면에 1972년 2월 28일 김기선, 이선춘, 김윤학 근입자라고 새겨놓아 이들에 의해 이쪽으로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

 

부군당의 제물 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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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동 부군당의 제물 진설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이 곳 굿상을 차린 곳이 과거에는 아궁이였다.

 

 

큰한강당 굿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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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동에는 큰한강당과 작은한강당이라고 해서 부군당이 2개가 존재한다.

 

두 곳 모두 음력 1월 1일에 당굿을 크게 하는 곳이다. 큰한강의 경우는 2010년 현재까지도 당굿의 전승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작은한강당의 경우는 비용 문제로 2010년에는 당굿을 하지 못했다.

 

큰한강당은 한남대교가 지나가는 위쪽에 슬로바키아 대사관 옆에 위치하고 있다. 부군당 안에는 용궁당이 함께 존재하는데, 홍수때 떠내려온 것을 부군당 한 켠에 모신 것이다.

당에 들어서면 좌측에 부군당이 있고, 우측에 용궁당이 있다.

 

두 당의 맞은편에는 아궁이가 있었는데 현재는 없어지고 그곳에 굿상을 차려 사진과 같이 당굿을 하도록 마련하였다.

 

 

신령들이 흠향하도록 문을 닫고 나오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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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군당 제사를 지내는 모습 중 부군당에서 제사를 지내고 귀신이 흠향하도록 문을 닫고 나오는 모습이다.

 

현재 이태원 부군당에서는 음력 4월 1일에는 당굿을, 음력 10월 1일에는 유식제사를 지낸다. 제사의 순서는 부군당에서 수화주를 중심으로 제사를 올린 후 당(堂)문을 닫고 신령님들이 흠향할 시간을 드린다.

그 후 다시 당에 들어가서 흠향하시도록 각각의 무신도에 놓인 젓가락을 세 번씩 두들긴 후 서낭나무와 비석에 가서 고사를 지낸다.

 

 

비석제를 지내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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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를 지내는 모습 중 비석제를 지내는 모습이다. 이태원 부군당에서 화주들이 서낭제를 지내는 모습이다. 현재 이태원 부군당에서는 음력 4월 1일에는 당굿을, 음력 10월 1일에는 유식제사를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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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이태원에는 이슬람 거리가 있다. 지하철 6호선 이태원 역에서 300m 정도 오르막길을 올라가면 이슬람 중앙회 이슬람 성원이 나타나고, 그 주변에 40여개의 무슬림 상가가 밀집해 타운을 형성하고 있다. 주변은 달동네다.

 

이슬람 거리의 구간은 400m 정도 남짓하다. 이슬람 율법에 맞춘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아랍어로 된 간판이 눈에 띤다. 무슬림 복장의 청년들이 많이 보인다.

 

이태원 이슬람 거리는 이슬람 성원 모스크를 중심으로 좌우로 뻗어 있다. 할랄 식당은 물론 서점, 옷가게에는 무슬림은 물론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다.

 

대한민국에는 [한국인 이슬람교]도 많다. 그 숫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라고 그들은 말한다. [진정한 무슬림(이슬람교도)은 하나님(알라)을 경외하고, 생명을 빼앗거나 종교를 강요하지 않는다. 꾸란(이슬람 경전)의 가르침을 따라 경건한 삶을 사는 신앙인이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의 하나님은 [나(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내 앞에 두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한국 이슬람교 1세대 지도자인 이행래 원로 이맘은 말한다.

[이슬람교의 이념은 첫째가 평화다. 그 다음이 평등이다. 또 형제애를 중요하게 여긴다. 형제애의 넓은 의미는 인류애다. 전 세계 무슬림은 아크(형제), 우크트(자매)라 부르며, 형제애를 우선하고 있다]고 강변한다.

그런데 아랍천지에서 그렇게 여자들을 학대하는가?

 

[너희들에게는 너희들의 종교가 있고, 우리에게는 우리의 종교가 있느니라(꾸란 109장 6절)]는 구절도 있다. 그런데 그런 말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을 그렇게 처참하게 처형하는가?

이런 이슬람의 본거지가 이태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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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과 인접한 용산구 우사단로에 위치한 한국 이슬람 모스크

 

진열된 할랄 가공식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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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면서.....

할로윈 축제가 왜 이태원에서 열렸을까? 오라고 손짓하는 사람도 없었다. 초대장도 없었다. 초청자도 없었는데(?) 사귀(邪鬼)에게 제사 지내고, 동성애로 난잡할 데로 난잡한 음탕한 다문화(?)의 도성 이태원에 모였다.

10만 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모였다. 무엇에 홀린 사람들처럼 꾸역꾸역 모여들었다. 그리고 황당하기 그지 없는 압사사고가 벌어져 사람들이 서로 엉켜서 깔려 죽었다. 누가 한 짓일까?1.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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