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마른 그 땅에도 생명의 단비가.
양상훈
종교는 사회의 누룩이다. 불교의 윤회설, 기독교의 부활설을 강조하고 진리추구와 영성화로 세상에 빛과 소금믜 역할을 끊임없이 요구한다.
교회마다 역점사업으로 국내외 복음전도를 위해 선교 팀이 조직되어 활약하고 있다. 우리교회도 뉴욕권의 해외선교기구와 연대하곤 한다. 본교회의 선교 팀이 올해는 특별히 특정지역으로 해외 단기 선교 팀을 구성하게 되었다. 가장 젊은 40대 중반 담임목사를 포함 전원 자발적인 31명의 시니어구룹으로 영적무장을 한 청년노인들이다. 선교지역은 과테말라공화국의 후띠아빠(Jutiapa)州로 이미 선정되었다. 중남미에서 치안이 가장 열악하여 국내에서도 우범지역으로 악명 높은 지대이다. 한때 폭력배와 살인강도가 백주에도 난무하여 일주일에 10여명의 사상자를 속출했다는 <죽음 계곡>이라고 부르는 지역이다.
“땅 끝까지 청지기의 사명을 다하라” 는 성령의 지침이라지만 교회마다 이 지역을 재고하는 경향이 현실이었다. 그러나 본교회가 이런 오지의 땅에 선교를 특정하는데 몇 가지 결정적인 요인들이 작용했었다.
10여 년 전에 본 교회가 이 버려진 땅을 우연히 아주 싸게 구입해 놓았다. 지금까지 험악한 지역으로 방치상태에 있는 공간을, 이곳에 최근 당국에서 건축허가가 떨어진 것이다.
바로 해외 선교센타를 건립할 프로젝트를 구성하게 되어 약2년 전부터 시공하여 마무리단계에 이른 것이다. 이번 미선트립중에 먼저 이 선교센터 봉헌예배행사를 일정으로 잡혀있다. 이 선교센터를 중심으로 지역교회간의 화합을 이끌고. 주변 미未전도지역에 복음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 목표이다. 이곳 37개의 교회가 서로 불화로 대립하여 교회의 본질을 훼손하는 행태가 지역사회의 정서에 나쁜 영향을 미쳐 왔었다, 이들 중 대형교회로 “엘사이다” 교회의 담임 로버트목사가 우리가 허용한다면 선교센터를 이용하여 공동회의와 연합행사 등으로 화합을 주도하려는 신념으로 적극 나서 접근해왔다. 또 다른 큰 요인은 과테말라시에서 제일 큰 한인교회가 날로 부흥하면서 부대 시설의 확충이 필요하던 차에, 이에 선교센터의 효율적인 관리와 이용을 위해 우리교회와 연합운영 방식을 제안해 온 것이었다. 이와 같은 사안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후띠아빠에 복음의 전당으로 선교센터의 존립성이 더욱 힘을 받게 되었다.
해외 선교팀은 테스크 포스 작전으로 돌입했다. 준비 작업을 위해 사역별 역할분담으로 조별계획을 세웠다. 훈련을 통한 시뮬레이선을 반복해 나갔다. 사역준비훈련은 다음과 같은 프로그렘으로 스케쥴에 따라 진행해 나갔다.
1) 스패니쉬 언어훈련 12주 코스로 전문 강사가 봉사를 맡았다. 마침 브라질에서 이민 온 성도 한분이 맡게 되었다.
2) 사역 현지인에게 가장 필요하고 인기 있다는 안경사역 준비작업의 만전이다. 주변에서 수집한 중고안경 프레임에 렌즈를 도수별로 구분하여 맞춤 안경을 제작 준비. 현지에서 시력 검사 후 바로 맞는 안경을 착용케 하는 준비작업.
3) 의료 진료사역. 한방사역과 일반진료사역으로 구분한 준비과정이다. 한방사역에는 침술과 부황 뜸으로 한의사 중심이 되어 환자를 치료하는 사역이다. 일반진료는 의사와 간호사가 한 팀이 되어 환자를 진찰하고 약을 처방하며 전문 치료가 필요한 환자에게는 전문병원으로 추천 이송시키는 사역.
4) 중보기도 팀의 협력이다. 복음상담은 늘 기도로부터 시작하듯이 일상생활에서 저마다 겪고 있는 고충을 해결하는 간구의 기도는 중보기도 팀이 전담한다.
5.) 선교팀이 현장의 복음전도에 필요한 영성화 훈련과정의 일환으로 <사도행전>을 여러 번 숙지하고 자필 노트를 정리하는 작업이다.
이상의 준비훈련과정과 현지적응 훈련을 마치고 10/3일 개천절에 현지 봉헌예배에 맞추어 영적무장을 한 선교 팀은 10/1일 마침내 대장정의 날을 맞이했다.
새벽 예배를 마치고 31명분의 공용화물과 개인 사물이 합쳐진 엄청난 물량의 준비물에 일일이 번호를 부착하고 순서대로 적재하였다. 뉴왁공항(뉴저지)에 집결하여 5시간여만의 오랜 비행 끝에 과테말라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유사군복 차림에 무뚝뚝하고 엄습한 공항분위기를 빠져나오니 시원하였다. 현지 후원 한인교회의 따뜻한 안내를 받으며 교회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고 바로 사역준비 점검에 들어갔다. 외부 치안이 살벌하다보니 밤에는 개별적으로 보안상 일체 외출이 허용되지 않아 답답하였으나 어쩔 수 없었다.
다음날 이 한인교회와 함께 합동 예배를 드렸다. 우리팀은 열심히 준비해간 스패니시 특송을 합창하여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오후 늦게 과테말라시에서 우리의 아지트인 후띠아빠 선교센터로 향했다. 험준한 고산도로가 낙조에 잠겨 굽이굽이 곡예를 하며 중천에 달을 쳐다보며 달렸다. 골짜기마다 피어오른 구수한 장작 타는 연기, 지날 때 마다 사립문을 열고 뾰족이 바라보며 고사리 손을 흔드는 어린이 모습이 그렇게도 귀엽기만 했다. 비포장 길을 달리는 버스에 감회에 젖기도 했지만, 피곤한 몸을 던진 체 4시간 만에 현지에 도착했다.
현지의 미완성 건물에 수도와 전기시설이 완비되지 않아 손전등을 사용하면서 보물 찾듯이 헤매기도 했다. 우물에서 임시 설치된 자동 발전기로 퍼 올린 뿌연 물을 정화하여 간단한 샤워와 세수를 고양이처럼 끝내곤 했다. 다만 음료수는 시장에서 구입하여 마셨다.
저넉식사를 간단히 때우고 예배와 회의가 끝나자 선교센터 본관 마루바닥에 각자 준비해온 개인 침낭을 깔았다. 젊은 시절 한때 열악했던 군 내무반식의 딱딱한 침상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주변에는 불빛마저도 찾아볼 수 없는 캄캄한 산기슭의 고립무원(孤立無援)에서 온몸이 녹초가 되어 첫날밤을 맞이하였다. 취침 중에 코를 골거나 민패를 끼치어 잠버릇이 불량한 벗님네는 가차 없이 퇴출되기 전에, 솔선하여 별실로 이동했어야했다 아침 일찍이 우렁찬 닭 울음의 합창에 신기하게 일제히 눈을 뜬 남국의 여명.
어렵고 힘든 환경 속에 바쁜 일정을 강행하는 일상에서도 대원들의 표정은 피곤함이 없어 오히려 밝아보였다. 적극적이고 여유로운 모습에 서로 축복받고 감사와 은혜를 나누고 있었다..
첫날 우리 팀의 사역출정식이 시작되었다. 후띠아빠 엘사이다 지엮 교회를 사역 장소로 정하여 아침9시부터 오후3시까지 봉사하기로 스케쥴이 잡혔다. 로버트 목사를 중심으로 이 교회의 많은 성도들이 우리사역에 적극적인 협조와 통역관들의 도움으로 무난히 마칠 수 있었다. 뙤약볕에 이 지역 주민들 수 백 여명이 장사진을 이룬 가운데 사역 절차에 따라 차질 없이 진행하였다. 안경사역 ,의료진료, 이발 봉사, 전도지 배포(스페인어. 영어) 중보기도 등으로 사역 첫날에 만족할 호응을 받았다. 특히 안경사역은 큰 인기를 끌었다. 늦은 점심이지만 목사부인이 정성껏 준비한 과테말라 특식을 시식하였는데 거부감 없이 모두 뜻 깊게 즐겼다. 로버트목사 가족은 친절하고 사모의 전통요리는 최고 일품이었다. 그런데 아쉬운 점은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은데 온 가족과 영어소통이 안되어 불편하였다. 감정의 소통은 이루었지만, 어느 지역 멕시코까지 어떤 교회에서도 스패니쉬 명설교로 끝내주어 아무런. 불편이 없다고 한다.
이 날 일과를 마치고 늦게 선교센터에 도착하니 끔직한 뉴스가 기다렸다. 위험지역이라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큰 사고가 날 줄이야. 전날 저넉 우리 선교 팀의 축하 예배에 참석하였던 현지 선교사 두 분이 큰 화를 당할뻔 한 소식이었다. 예배가 끝난 후 밤늦게 과테말라 시내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선교센터 비포장 진입로 500m 거리에서 권총강도를 만나 몇 발의 연속 총격을 당한 것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한발이 어깨위로 스쳐가 경미한 부상만 입었을 뿐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끔직한 사고였다. 이런 사고발생 지점은 시내에서 30여분 떨어진 외딴지역에서 종종 일어난다고 했다. 잦은 사고 경험으로 요령 있게 피신하는 훈련된 파송선교사라 하지만 우발적 상황에 매우 위험한 환경에 참 잘 대처한 것이다.
다음날 그 선교사가 미국서 온 우리 션교 팀의 기도로 살아났다는 감사의 전화를 받고서야 전후 사정을 알게 되었다 이웃도 없는 외딴 건물이 강도들의 표적이 된다는데 우리는 또 한 번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역 일정 이틀째 우리대원들은 후띠아빠에서도 가장 험악한 지역인 '‘부에나 비스터’'란 산간 마을에 이동사역을 하게 되었다. 진흙 창으로 이어진 산길을 따라 한 시간 남짓 버스로 올라갔으나 사역 장소인 어린이 학교까지는 진입할 수 없어 모두 하차하여 15분정도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미 산간 300여명의 주민들이 기대에 찬 모습으로 우리를 고대하고 있었다. 서로 반갑게 처음 간단한 인사말 Co'mo esta' usted?(꼬모 에스타 우스뗃 ? 안녕하십니까?) 인사말은 쉽게 나왔으나 결국 서투른 말씨와 바디 랭귀지가 동원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의 평소 익숙한 열린 마음이 이심전심으로 문화의 벽을 자연스럽게 넘어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었다. 그들은 가난한 환경에서도 명랑하고 순박하며 낙천적이라 헤어질 때에는 허그 할 정도로 쉽게 친숙해졌다.
이날은 카나다에서 온 기자 일행이 한방사역에서 사람을 민망하게 눕혀 놓고 부황 뜸 침으로 마구 찌르는 진료 과정을 보고 놀라며, 신기한 듯 열심히 비디오 영상에 열중하는 장면도 보였다.
특히 이날 사역 장에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대중 속에 ‘마리아’란 젊은 여성이 친구의 부축을 받으며 눈 치료를 받기위해 안경사역 부츠로 다가왔다. 그런데 이 환자는 간단한 안과 치료나 안경착용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었다. 전문병원에 이송하여 근본적인 치료를 필요로 하는 환자임을 알게 되었다.
전문병원으로 이송하기 전에 우리는 일단 중보기도 팀으로 보내어 기도로 간구하는 방법을 우선 택했다. 함께 중보 기도하는 중에 마리아는 갑자기 우아! 큰 소리 치며 흥분하기 시작했다. 시력이 거의 없던 눈이 보이는 기적이 일어났던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이기 시작하여 성경을 읽으며 대중에게 확인까지 하는 이변이 일어났다. 그녀의 친구 에스터의 통역으로 특별 인터뷰까지 이어지는 감동분위기에 환희의 페스티벌로 사역장이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어 사방으로 소문이 퍼지면서 이번 미션트립의 한 페이지를 크게 장식하는 귀중한 실증적 체험(간증)을 목격 하게 된 것이다.
이번 단기선교는 불모의 지역, 후띠아빠에 세운 선교센터를 중심으로 미전도의 땅에 복음의 나라를 건설하여 불신자를 인도하는 사역이 주된 목표였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대원들이 현지적응은 물론 일사불란하게 봉사 할 수 있었던 저력에 감사할 뿐이었다.
무사히 선교를 마치고 건강하게 돌아오면서 앞으로 어떠한 어려움도 돌파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경험했다. 처음에 망설이며 두려워했던 후띠아빠 선교는 짧은 기간이지만 선교차원을 넘어 현지에서 감명 깊은 은혜와 교훈은 시사하는 바가 컸다.
과테말라는 중앙아메리카에 위치, 인구1,660만 국민소득 3,700불.22개주로 구성. 스패인의 오랜 식민지에서 벗어나 과도기에 멕시코와 합병하여 혼란 중에 멕시코의 쿠데타기회에 완전 독립한 후 중미연방공화국을 건국하였다.. 목화 대량생산국으로서 한국과는 미미 1962년에 수교하여 교역하는 파트너쉽관계를 유지해왔다.. 잦은 군부쿠데타로 정국이 불안하여왔다. 소수 백인이 중심이 되어 국부를 대부분 독점하는 상황에 빈익빈貧益貧부익부富益富 현상은 더욱 심해갔다. 앞으로 빈부의 격차,농업인구50% 이상과 국민전체의 절반이상 문맹율은 정부가 풀어나가야 할 중요과제라고 본다. 가난한 국가로 분류되지만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마야문화민족으로 남미 최고의 관광지와 민주주의 기반으로. 잠재력이 강한 개발도상 국가로 부상하고 있다. 한편 미국과는 전통적으로 선인관계를 유지하며 가끔 인권 시민운동 군사문제 등 갈등을 빚기도 하지만 다방면으로 지원을 받고 있다. 좋은 이웃이 되어있다.
형형색색의 열대 꽃이 만발하는 아름다운 여름의 나라, 아이들이 많고, 열대과일이 풍부한 과테말라!
험악하고 열악한 환경으로 모든 사람이 외면하였던 후띠아빠는 주 안에서 이미 우리와 한 가족이 되어 여러 면에서 활발히 교류하고 있다. 이젠 어둠의 빛이 걷어지고 있다. 밝은 빛으로 변하는 가운데 생명의 단비로 초원은 짙어지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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