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을 넘나들며 / 이정호
화창한 봄날 아는 지인의 모임을 참석하기위해 프리웨이 2번을 따라 운전하고 있었다. 프리웨이가 끝나갈 무렵부터 아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다시 깨어난 곳은 LAC+USC 중환자실에서 뭔가 말소리가 들릴 때였다.
의사의 말이 들렸다. “이렇게 살은 것은 기적이에요. 이 환자같이 다친 경우는 거의 다 죽어요. 1000명중에 1명 정도 살으니까요. 국제학술잡지에 이 환자가 살아난 것을 실을 거예요.” 그리고 내 wife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죠. 기적이죠? 정말 이렇게 살려 주신 것 감사합니다.”
나는 내가 병원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것도 인지했다. 내 왼쪽 발은 기부스가 되어 있었다. 심장에 구멍이 나서 큰 수술을 했다는 것도 알았다. 방 입구 쪽에 의사들과 가족이 보였다. 그리고 유리 너머로 중환자실 사무실이 보였고 일하고 있는 간호원들이 보였다.
내 wife가 약간 흥분하며 말했다. “상대방 차는 보험도 없고 운전 면허증도 없어. 20대 중반의 여자야. 그 차는 5차선으로 달렸고 자기 차는 2차선으로 달리고 있었는데 타이어 빵구 난 그 차가 자기 차를 옆으로 덮쳤어. 다행히 목격자들이 911로 빨리 신고를 해서 LAC+USC 병원 응급실로 가서 살 수 있었어. 그 여자도 많이 다쳤지만 자기만큼 다치지는 않았어.”
침대에 두 다리를 뻗었다. 앞 벽 위에 시계가 보였다. 간호원들은 밤과 낮 교대로 왔다. 나는 마치 애기처럼 느껴졌다. 나에게는 기저귀가 차져 있었고 그나마 옆으로 움직이는 것도 쉽지 않았다. 간호원이 기저귀와 베드 시트를 갈 때 옆쪽 침대를 잡고 움직였고 그리고 조금 있다 간신히 힘들게 다른 쪽 옆으로 갔다.
CT 촬영을 위해 나는 처음으로 방에서 나갔다. 복도 천장을 쳐다보며 나의 침대는 이동하고 있었다. 창문 사이로 따사한 햇볕이 들어왔다. 빌딩과 푸르른 하늘이 보였다. 몇 개의 복도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CT 촬영 방에 도착했다. 담요로 둘러싸인 내 몸은 CT를 위한 침대에 던져졌다. 거대한 CT기계속으로 내 몸은 왔다 갔다 했다.
CT결과가 나왔다고 하며 의사가 들어왔다. 대장에서 새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바로 수술을 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고 했다. 대변 주머니를 밖으로 만들어야 하며 대체적으로 다시 안으로 집어넣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어 영원히 대장주머니를 밖으로 차야 하기도 한다고 한다. 전화로 한국 통역사를 연결해서 자세히 설명했다. 그리고 사인을 하라고 했다.
수술은 잘 끝났고 약 2-3시간이 걸렸다. 수술 후 내 몸을 보니 왼쪽 배 밑에 대변 주머니가 달려있었다. 난생 처음 보는 것이다. 밥은 잘 먹히지 않았다. 속이 매스꺼웠다. 한국음식을 wife에게 갖다 달라고 해서 먹었지만, 많이 먹히지 않았다. 하루에 2-3 번씩 피를 뽑았다. 피가 잘 나오지 않아 몇 번이고 팔에 주사를 꼽을 때는 많이 힘들었었다.
한 달 반 정도 지나 나는 굿 사마리탄 병원의 재활치료센타로 옮겨졌다. 내가 회복되고 있다는 신호로 여겨져서 기뻤다. 누워서 발을 폈다가 오므리는 운동부터 시작해서 앉아서 발 펴기, 발 들기, 발 회전하기 등부터 비닐 끈을 손으로 팽창하기, 그리고 재활치료 방으로 가서 각종 도구를 이용해서 팔과 다리의 힘을 기르는 훈련을 했다. 보행기를 이용해서 걷기 운동도 했다. 하지만 심장박동수가 높게 나와서 많은 운동은 할 수 없었다.
그동안 중환자실에 있을 때에는 면회를 온다고 했지만 사양하였다. 이리로 온 다음부터는 사람들이 면회를 오기 시작하였다. 우선 내가 다니는 교회 담임목사님과 부목사님이 왔고 교회 구역원들이 왔다. 참으로 고마웠다. 그들이 내게 주는 걱정과 기도와 격려는 나에게 큰 힘이 되었고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하였다.
이 재활치료센터에 온 지 20일이 지났을 때 퇴원을 준비하게 되었다. 집에서 계속 Home Care를 받는다고 한다. 대장수술을 하고 나서 배를 가른 곳이 아물어 지도록 기구에 연결되어 피를 뽑고 있는데 그 기구가 더 작고 간편한 것으로 대체되었다. 결장루 다시 말하면 대변주머니를 가는 것을 가족들이 도와주거나 나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해서 가족들과 같이 연습을 하였다.
아들차에 몸을 실어 집으로 향했다. 두 달 반 만에 바깥 세상으로 나온 것이다.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졌다. 신선한 바람, 푸르른 하늘, 스쳐 지나가는 빌딩, 그 모든 것들이 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소중함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집에서 Home Care를 계속 받고 있고 간호원이 일주일에 2-3번 정도 온다. 주로 수술부위를 아물게 하기 위해 피를 뽑아 내는 도구와 연결된 부위와 튜브를 갈아주며 다른 상처 난 곳도 치료해준다. Physical Therapist도 생활에 나가는데 필요한 힘을 회복시켜 주기 위해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오고 있다.
결장루에 있는 대장을 다시 몸 안으로 집어넣는 수술이 남아있다. 얼마 있으면 수술날짜가 잡힐 것이다. 이번 교통사고를 통해 삶과 죽음이 백지장 차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나에게 다시 살 수 있게 함을 감사한다. 그리고 지금은 힘이 들어도 머지 않아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 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선생님,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이겨내셨습니다.
모든 것이 감사하네요.
곧 완쾌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