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그 평화롭던 날들 / 허정진

 

푸르스름한 동살이 담장을 넘어서나 보다. 아랫목 군불 열기가 아직 후끈거리는데도 창호지 너머로 벌써 마당 쓰는 소리 들려온다. “싸르륵 싸르륵” 새벽 강가에 사공이 노를 젓는 소리, 햇살 알갱이거나 싸락눈 굴러가는 댓바람 소리 같기도 하다. 싸리 비질 소리가 곧 여명이고 천명의 시간이 된다. 희붐한 빛줄기가 들자 마당의 민낯이 보자기처럼 펼쳐진다.

그 새벽의 마당은 언제나 집안 가장의 몫이었다. 아버지가, 외삼촌이, 고모부가 그 자리에 동바리처럼 서 있었다. 할아버지가 힘에 부치면 아버지가, 그리고 또 그 아들이 장대비를 넘겨받았다. 장독대와 작은 텃밭이 있던 뒤란이 어머니의 공간이라면 대문을 향한 앞마당은 아버지들의 ‘터’이자 ‘품’이었던 셈이다.

이른 아침에 마당을 쓰는 일은 새벽 절 마당을 빗질하는 수도승처럼 일종의 수행 의식 같았다. 하루를 시작하겠다는 천지를 향한 신고식이고, 가족의 안녕과 무탈을 기원하는 합장 기도였다. 어쩌면 깨달음이든 뉘우침이든 억새 같은 삶이 헤쳐 나가야 할 길수를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막의 낙타가 길을 내듯 혹등이 같은 아버지의 굽은 등이 세상으로 향하는 문을 조심스럽게 열어젖혔다. 간간이 뱉어내는 마른기침 소리에 늦잠 자던 풀벌레 서둘러 깨어나고, 젖은 꽃들 눈뜨고, 장막 같던 긴 어둠이 사라져갔다.

뒤늦게 문을 열고 부스스 나가면 마당에는 벽지를 발라놓은 것처럼 결 고운 빗살무늬가 가지런히 새겨져 있었다. 맨발로 뛰어다녀도 될 만큼 고운 흙으로 채워진 마당은 어느 한 곳 흠집이나 돌부리 하나 없이 곱게 붓질한 새색시 얼굴 같았다. 바람이 불어도 흙먼지가 일지도 않았고 장대비가 내려도 함부로 패이거나 질퍽거리지도 않았다. 식구들의 수많은 발걸음으로 다져진 마당에서는 구석기 같은 오래된 흙내가 났다. 변화무쌍한 하늘과 사계절 변하는 산을 품은 마당은 대청마루에서 바라본 한 폭의 풍경화였다.

그곳은 안전지대였다. 문만 열면 밖이 되는 아파트가 아니라 속바람으로 나가도 여전히 품안이고, 손안이고, 집안이 되는 곳이었다. 외부인 듯 보이지만 내부였고, 밖이었지만 아무도 넘어올 수 없는 보안의 구역이었다. 내 집 마당에 놀고 있으면 아버지 두툼한 손을 붙잡고 있는 것처럼 세상이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아무런 근심 걱정도 없이, 궁하거나 더 바랄 것도 없는 평온하고 행복한 시간이 늘 우리 곁에 맴돌았다.

아이들은 마당에서 크고 자랐다. 신발을 신고 첫발을 내디딘 것도 마당이었고 동무를 사귄 것도 마당이었다. 뜀박질도 배우고, 놀이도 하고,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서성거리기도 했다. 마당 한구석에 바지랑대 밀어 올린 빨랫줄에는 식구들의 옷가지들이 새물내를 풍기며 뽀송뽀송 말라갔다. 밤이면 마당에 멍석을 깔고 모깃불 피워 별자리도 헤아리고, 옛날이야기 자장가 삼아 깜빡 잠이 들던 그 시절도 잊을 수 없다.

그 마당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노란 병아리 떼가 봄날 하루를 종종거리며 돌아다니고, 아침저녁으로 황소가 징검다리 건너듯 성큼 가로질러 가기도 했다. 콩이나 팥을 햇볕에 말려 도리깨로 타작하는 날도 있었고, 낟가리 쌓아 탈곡기나 풍석을 돌리면 부검지가 온 집안에 날리며 부산을 떠는 날도 있었다. 때로는 농악대가 찾아와 한바탕 신나게 놀기도 하고, 어떤 날은 혼인이나 환갑잔치가 열려 온종일 북적거리기도 하고, 간간이 동냥을 얻으러 오는 누추한 행려인도 있었다. 그야말로 의식주 생활에 직접 관여한 복합적 공간이었다.

마당은 어쩌면 사람을 키워내고 담는 그릇이었는지도 모른다. 겨울에 창호지 유리 조각을 통해 내다본 비밀스러운 구석처럼 그곳엔 혼자만의 기억들도 많았다. 갖고 놀던 풍뎅이나 사슴벌레가 죽어 묻어주는 공동묘지도 있었고, 속상하거나 슬픈 일이 있을 때는 감나무 둥치에 등을 기대고 먼 허공을 바라보기도 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몰래 토끼장 옆 낮은 양철지붕 아래 숨어들었다.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듯 지붕으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에 영혼의 마당은 알게 모르게 또 한 뼘씩 넓어졌는지도 모른다.

마당에도 분명 귀가 있는 것 같았다. 아장거리고, 종종거리고, 껑충거리고, 때로는 비틀거리거나 터벅거리는 발걸음 소리 들을 모두 듣고 있었다. 기쁜 날이 있을 때는 마당이 먼저 알고 온몸으로 들썩거렸다. 때로는 마당도 밤을 꼬빡 새우는 날도 있었다. 이런저런 걱정에 밤새워 뒤척이다 방문을 열고 나가면 대낮보다 밝은 하얀 달빛을 손안에 가득 채운 마당이 내 어깨를 토닥이고 위로해주었다.

마당은 직선보다 곡선이고, 음지보다 양지의 공간이다. 누군가 찾아오는, 누군가를 위해 마련해둔 열려있는 공간이다. 소통의 공간이고, 만남과 작업의 공간이며, 나눔의 공간이다. 서로 감싸 안았던 공존의 터이자 광장이며 사람과 사람, 삶과 삶이 어우러지고 부딪치는 곳이 마당이다. 신나게 뛰어놀던 그 시절, 마당은 좁았지만 세상은 더없이 넓고 평화로웠던 시간이었다.

마당이 사라졌다. 장식성과 권위성이 부각 된 상류층 주택의 잔디 깔린 정원만 남았을 뿐 하루의 일기체 같았던 흙 마당은 어느새 퇴화가 되었다. 시골에 사는 사람들도 읍내 아파트가 살기 편하다며 마당 있는 집을 버리느라 동네가 텅텅 비어간다. 농경사회를 벗어나 마당의 농기구 역할이 없어지고, 사람과의 어울림도 줄어들고, 바쁜 세상이라 마당에서 서성일 일도 없어서 쓸모없는 공간이 되어버린 것 같다.

우리는 뜰도 마당도 없는 아파트에서 공중살이를 한다. 이웃과 세상으로 가는 징검돌이자 소통의 창구였던 마당은 이제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가상현실, 증강현실의 공간으로 자리바꿈을 하였다. 실체적인 삶이 없는 비대면 디지털화가 될수록 우리의 삶이 각자의 방으로, 자기만의 공간으로 점점 쪼개지고 낱낱이 흩어져 버린 셈이다. 연결망은 무한대로 확장되었지만 개인의 삶은 더욱 소외되고 황폐해져 간다. ‘땅, 장소’라는 사전적 의미 외에도 ‘논다, 불러들인다, 품는다’라는 동적인 의미도 함께 가졌던 마당은 문자나 영상이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삶의 공간이고 뿌리였다.

마당이 없는 삶은 조급하고 각박하다. 방향도 없이 속도에만 열중하는 것 같다. 현관문을 열면 바로 바깥이 되고 마는 공간은 너와 나, 좌와 우, 앞과 뒤의 경계가 너무 명확한 일이다. 비록 좁고 불편했을지라도 넉넉함과 푸근함, ‘함께’라는 공동체 의식을 느낄 수 있었던 마당은 안과 밖의 완충 역할을 하는 마음의 여유가 아니었던가 쉽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피하는 일 없이 시련과 고난을 덮어주고 감싸주는 가족 같은 마당이 그리워진다.

마당을 쓸었더니 지구 한 모퉁이가 깨끗해지고, 아름다워지고, 밝아졌다는 나태주의 시처럼 마당이 있는 집이 그립다. 아침이면 기다란 빗자루를 들고 여기부터 저기까지 동심원을 그리며, 그동안 각다분하게 살아온 세상에 일그러진 마음이나 번외 했던 시간이라도 쓸어내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선수필. 2022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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