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 먼 여행을 떠났다. 남미 대륙의 최남단 우수아이아, 남극으로 가는 길목이다. 땅끝 마을의 세찬 바람은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였다. 나무들도 땅바닥에 바짝 엎드려 있었다. 배를 타고 나간 비글 해협에서도 비바람이 매몰차게 몰아쳤다. 세상의 끝에서 인생의 끝을 생각해 보았다. 내 인생의 끝은 어디쯤 있을까. 그 끝자락에도 이처럼 거친 비바람과 파도가 칠까. 그것이 두려워서 몸과 마음이 위축된 것은 아닐까.
강산이 다섯 번 변하는 세월을 학교에서만 보냈다. 학교는 온실 같은 곳이다. 온실의 식물을 바깥에 옮겨 놓으면 싱싱함을 유지하기 힘들다. 추운 날씨에 얼어 죽을 수도 있다. 온실을 벗어난 식물처럼, 정년퇴직 후 몸과 마음이 시들어 가는 듯하였다. 땀과 열정이 모두 증발해 버리고 난 후의 상실감인가.
변해버린 환경의 던져진 곳에서 정체성을 바로 잡을 수 없었다. 무리 속의 아주 평범한 하나의 개체임을 깨닫게 되기까지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누가 준 것이 아니라 스스로 느낀 감정이었다. 그동안 하였던 강의와 연구 외에 별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도 좌절감을 증폭시켰다. 난 한 명의 사회 초년생일 뿐이었다. 그것도 별 쓸모없는 인간으로 말이다.
남극의 펭귄 얘기이다. 남극에 겨울이 다가오면 생존을 위하여 모든 생물이 떠난다. 영하 오십 도의 극한 추위 때문이다. 몰아치는 매서운 바람도 혹독한 환경에 보탬을 한다. 그런데 그 추위 속으로 들어가는 이상한 동물이 하나 있다. 바로 황제펭귄이다. 기우뚱거리는 걸음으로 미끄러져 가며 강행군이 계속된다. 도착한 곳은 오아모크 빙산이다. 어떻게 혹독한 환경 속에서 죽음과 같은 인고의 시간을 버텨 낼 수 있을까.
허들링(huddling)으로 혹한의 겨울 추위를 견디어 낸다. 장애물 경기의 허들이 아니다. 제아무리 남극의 펭귄이라도 혼자서는 절대로 감당할 수 없다. 바람이 매서우지면 허들링 대열을 만들기 시작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밀착하여 원형으로 겹겹이 에워싼다. 바깥쪽에 있는 펭귄들의 체온이 떨어질 때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다. 무리 전체가 돌면서 바깥쪽과 안쪽에 있는 펭귄들이 계속해서 서로의 위치를 바꾼다. 바깥에서 칼바람을 맞으며 바람막이에 떨었던 펭귄들은 안으로 들어가 몸을 녹인다. 이를 통해 자신들의 체온을 지켜낸다.
퇴직 후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는 것은 시간이었다. 갑자기 불어난 시간은 여유가 아니라 불안감으로 다가왔다. 따분함과 실망 좌절감 등도 따라왔다. 그걸 메꾸기 위해 여러 가지를 하였다. 스포츠 댄스, 색소폰, 가곡 합창, 캘리그래피, 팝송 영어, 수필 쓰기, 국선도를 하러 다녔다. 너무 바빴다. 몸도 피곤해졌다. 어느 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었다. 많은 것들이 공허감을 채워줄 수는 없었다. 잠시 물러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문제는 내 마음에 있었다.
마음에도 근력이 있기는 할까.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에 인생의 시련과 역경이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 아쉬움도 있었지만 지난 세월은 돌이킬 수 없다. 남은 길에서 어떤 힘든 일을 만날지도 모른다.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 것인가가 문제가 아닐까. 생각의 관점이 중요하리라. 긍정적인 생각으로 모든 것에 감사하는 태도가 마음의 근력이다. 역경에 처해서도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고 다시 올라서는 힘이다. 심리학에서는 회복탄력성이라 한다.
펭귄 주변에는 추위와 얼음, 차가운 극지방의 바람이 전부다. 이런 곳이 어떻게 그들에겐 빙원의 오아시스가 되는 것일까. 모두 떠나버려 어떠한 천적도 없다. 마음 놓고 사랑을 하고 알을 낳아 기를 수 있다. 혹독한 추위가 펭귄들에게는 생명을 안전하게 지켜내는 축복의 장소가 된다. 동료애로 필리아의 천국을 스스로 만들어 낸다. 사랑의 공동체이다.
마음은 작은 우주이다. 우주처럼 시시각각 변한다. 태어나서 제일 먼저 느끼는 좋은 감정은 포근함이라 생각한다. 따뜻한 솜이불 같은 느낌이 아닐까. 포근한 엄마의 품에서 안심하고 새근새근 잠들 수 있다. 손주의 자라나는 모습을 보면 기쁨이 저절로 생겨난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모습에 행복하다. 손주의 마음 건강에 유난히 신경 쓰는 딸의 모습이 내 젊은 시절의 모습과 대조되었다. 훈육으로 기르던 우리와는 달라 보인다. 뭔가 가르치기보다는 그때그때의 감정의 변화에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손주가 보는 감정동화에 펭귄이 나온다. 오아모크 빙산에 있는 황제펭귄의 생각에 이른다. 나의 마음을 바라본다.
감정의 상처를 내버려 두면 마음이 황폐해진다. 감정이 한 무리의 펭귄이라 그려본다. 내 마음속의 힘든 감정은 세찬 바람맞는 곳에 있는 펭귄이다. 안으로 보내 따뜻하게 감싸주어야 하겠다. 대신 감사·사랑·만족·즐거움·열정의 펭귄들을 바깥으로 보내어 맞서게 하면 되리라. 후회·슬픔·뉘우침·불안·당황이 엄습할 때는 차분함과 너그러움의 펭귄을 내보내면 되지 않을까. 외롭고, 포기하고 싶고, 그립고, 우울하고, 따분함이 찾아올 때는 희망과 신나는 펭귄들을 내보내자. 황제펭귄의 허들링이 내 마음의 길잡이가 된다. 마음의 공동체에 허들링을 만들면 마음의 맷집도 커지지 않을는지.
내 건강에 빨간불이 켜졌다. 몇몇 건강 지표가 카르텔을 형성하여 반기를 들고 나선다. 지난번에는 허리가 시위하더니, 여기저기서 이상 신호를 보낸다. 마음도 우울해지고 무기력해진다. 왜 이렇게 되었나 하는 자괴감에 빠져든다. 평소에 생활 습관도 그리 나쁘지 않았고, 음식도 신경을 썼다. 운동도 정기적으로 해왔다. 내 몸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빠지고 있다. 마음도 덩달아 움직인다.
내 인생에 벌써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는 것인가. 이대로 몸과 마음이 지칠 수는 없는 일이다. 긍정의 힘을 길러야 한다. 감사하는 마음이 심장박동수를 가장 정상적으로 유지하는 방법이다. 감사의 펭귄 개체 수를 늘려 허들링으로 바람막이를 만들고 싶다. 세찬 비바람과 파도를 맞닥뜨릴 때라도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마음의 근력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의 맷집이 두둑해져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