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의 폭발 / 신혜원
구름 한 점 없는 3월의 파란 하늘 밑에 ‘카니발 미러클’ 이라는 큰 배가 떠가고 있다. 그 배 안에 삼천 여명이 타고 4박 5일을 지내며 유람한다. 롱비치에서 출발하여 카탈리나섬, 멕시코의 앤쎄나다를 서서히 거쳐 오는 처음으로 가는 크루즈 여행길이다.
“여기가 어디에요?”라고 백두산이 물었다. 나는 “큰 배 안 입니다. 저기 바다 보이지요?”라고 대답했다. 백두산의 “바다를 보고 있으니까 왠지 처량해요” 라는 말은 내게 햇살 없는 파도처럼 가슴을 철렁거리게 했다. 간간히 낮 햇살에 비치는 청색 바다물결은 파도에 분산되어 은빛 별 꽃처럼 빛났다. 저녁 바다는 성난 파도처럼 검붉게 물결을 밀쳐내기도 했고, 아침바다는 조용히 달래는 엄마의 넓은 치마폭처럼 부드러웠다. 그러나 백두산이 보는 태평양 바다는 무척이나 처량하게 보는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남편과 내 여동생, 그리고 우리 교인 두 명과 그의 친구들 모두 열한명이 한 그룹이 되어 크루즈 여행길에 나섰다. 가족처럼 지내는 백두산은 연세가 백두 살이 넘어가므로 우리가 애교로 백두산이라고 말한다. 이 어른을 양로병원에 맡기려는 딸의 곤란한 처지를 듣고, 우리 부부는 딸도 좀 쉬게 하며, 우리가 함께 가면 괜찮을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함께 모시고 가자고했다. 따님은 기뻐하며 쾌히 우리 의사를 받아주었다. 왠지 이번 여행이 어머니와의 마지막 추억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있었고, 남편은 이 어른을 돌아가신 친 어머니 같다는 생각이 처음부터 들었다고 한다. 나도 그분의 조용하고 아담한 모습이 우리 시어머니와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백두산은 3년 전 많은 친지들과 자손들의 축복 속에 백수연을 지내셨다. 그 후 코비드19으로 좋아하시는 시니어 센터에 모이기 어렵게 되자 조금씩 예쁜 치매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간병인과 간호사가 주기적으로 다녀가고 따님은 매일 출퇴근 하다 아예 어머님과 함께 주무시고 지낸다. 백두산은 혼자 아파트 생활을 오래 하시며 화초 가꾸기, 청소 등 부지런하고 조신하게 지내신 분이시다.
백두산은 첫날 많이 힘들어 하셨다. 특히 크루즈 안에서의 잠자리가 바뀐 것에 적응이 안 되어 계속 쓰시던 전기담요를 꽂으려고 소켓을 찾다가 늦게 잠이 드셨다. 여행 셋째 날 돼서야 “나 집에 데려다 줘, 언제 집에가? 우리 양념 딸이 언제 오냐“는 등 계속 묻고, 보채는 일이 잦아들었다. 지인들과 관광 온 것을 인지하신 후 한번만 더 자면 집에 간다는 확신도 드셨는지 조용해 지셨다. 수면제를 미리 준비해서 드시게 하길 참 잘했다 생각되었다.
넷째 날 오후 나는 몇몇 일행과 처음으로 9층 야외 선박에서 에어로빅 클래스를 즐기고 있었다. 백두산에게 재킷을 두 개나 입혀드리고 휠체어에 앉혀드리고 구경하게 놔두었다. 추워하시는 어른을 어느새 남편이 모시고 다니며 얘기 동무가 되어 주기도 해서 안심하고 운동을 따라하며 몸을 풀었다. 클래스가 끝나고 나는 다시 백두산과 물을 마시며 따님 친구들과 모여 앉아 있었다. 그때다. 따님 옆에 앉아계시던 백두산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내가 친구들 다 있는 곳에서 이제 말해야겠다. 니가 사람이니? 사모님한테 내가 얼마나 미안한 줄 알아? 화장실 갈 때마다 네가 엄마 휠체어를 밀어야지 너는 뭐하고 남에게 다 하게하니? 엄마를 내팽개치고 네가 그러고도 커피가 입에 들어가니? 나는 뭐 사람이 아닌 줄 알아? 내가 다시는 같이 여행 오지 않을 거야.”
그동안 별 말씀이 없이 조용하셨기에 우리는 그분의 생각을 거의 헤아리지 못했다. 모두 놀라서 고개를 숙이고 침묵만이 흘렀다. 나는 가슴이 두근거려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권사님, 저를 생각해 주신 일은 참 고맙고 감동인데요.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아요. 따님 쉬시라고 제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에요.”라고 하자 더 이상 설명할 시간도 없이 백두산의 화는 멈추지 않고 치솟았다. “듣기 싫어요. 사모님은 아무 말 하지 말고 계세요.” 마치 벼르고 작정한 듯 딸을 향해 야단을 치시는 백두산의 자존심과 노여움은 결코 치매가 아니었다.
백두산의 슬픈 분노는 무엇을 말하는가? 크루즈 여행에 와서 먹고, 바다만 바라보라고 내팽개쳐진 것 같은 그의 처지가 받아들일 수 없는 수치와 모멸감 때문만 이었을까? 진정으로 그녀가 원하는 것을 폭발하기 전까지 우리는 읽지 못했다. 백두산은 그냥 나이만 드신 노인이 아니었다. 젊은이들과 신체적인 질이 똑같을 수는 없어도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정서와 생각과 가치관이 내재되어 있었다는 것을 느낀다. 백두산은 남의 손을 필요로 하는 것이 신세지는 것으로 생각하셔서 화장실도 자주 가지 않으시려고 조금만 드시며 참으셨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늘 ‘우리 딸이 최고야’ 하며 의지하듯, 딸이 보이지 않으면 찾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녀는 딸과 좀 더 이야기 하며 자연을 즐기고, 쇼도 함께 즐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백두산의 삶 속에서 그녀는 사랑받으며 동반해줄 남편도 필요했을 것이고, 재혼할 기회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동안 절제하며 자녀들과의 신뢰를 지키며 신앙으로 극복해 나갔을 것이다. 나름대로 아름답게 가꾼 꽃인데 귀가 어두워지고, 기억력이 가물가물 해지고 몸이 자유롭지 못하다고 존경받기는 커녕 짐처럼 느껴진 존재가 얼마나 처량하고 비통하셨을까. 이렇게라도 폭발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에게 쏟아낼 수 있을 것인가. 우리의 미래는 백두산 근처라도 오를 수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