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즈 워드와 미스 펜실바니아
박진희
스크린으로 보던 스타와 악수를 하며 체온을 느끼고 눈빛과 몇 마디를 나누는 순간이 개인 역사에 남는다. 그리고 전혀 예기치 않은 스타를 만나는 경우, 어떤 스토리로 다가오며 어떻게 기억하는 것 또한 개인의 몫이 아닐까.
얼마나 고대하던 순간이었던가! 아들이 속한 보이스카웃 모금을 마련하는 자선 행사에서 이루어진 특별한 만남은 몇 달 전에 선약이 되었다. 미식축구의 최고 챔피언인 하인즈 워드를 피츠버그 방송국에서 만나기 위해 풋볼도 준비하고 스케줄도 비어 놓았다. 하인즈는 한국 엄마와 군인 출신 흑인 아버지 사이에서 한국에서 태어나 조지아주에서 자랐다. 어릴 적 아버지는 가정을 버려 엄마가 파트타임 세 개를 가지고 키웠다. 한국 엄마의 지극한 교육열로 프로팀을 마다하고 조지아 대학에 진학했다. 그는 1998년부터 피츠버그 스틸러스 (Steelers) 팀에 들어가 날렵하고 천재적인 터치 다운으로 2006년과 2009년에 미국 최고팀으로 이끈 장본인이다. 하인즈는 팀의 맹훈련이 끝나고도 더 연습을 했다는 소문이 있다. 그가 2006년 봄, 미국 슈퍼볼에서 최고 MVP를 받고 그의 어머니와 함께 29년 만에 한국을 방문한 목적에 대한 말을 잊을 수가 없다. 한국에서 다르게 생겼다고 놀림과 무시를 받고 자기와 비슷한 처지의 혼혈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던 하인즈. 미국에서도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엄마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공부와 스포츠에 전념했다. 수백만이 지켜보는 풋볼경기에서 공중으로 몸을 정확한 각도로 날려 볼을 잡아 터치다운으로 승리했던 그 순간. 그는 귀여운 미소로 답례했고 한국인의 모습으로 자랑스럽고 찬란하게 남아있다. 2011년 은퇴 후 ‘Dancing with the Stars’란 프로에서도 식지 않은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그 스타가 내 코 앞에서 친숙한 미소를 짓고 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We are very very proud of you, Hines!”란 말이 저절로 나왔다. 그는 고맙다며 우리가 가져간 풋볼에 성심껏 사인을 해주었다. 미국 풋볼 경기 내용을 분석하는 바쁜 촬영 일정에도 우리 부부와 아들에게 일부러 시간을 내 준 그에게 한국식 정담을 나누고 미국식 포옹을 했다.
하인즈와 몇 분간의 만남을 아쉬워하며 돌아서자 곧바로 반짝이는 큰 왕관을 쓴 화사한 백인 미녀가 서있는게 아닌가. 미스 펜실바니아 휘장을 두른 긴 갈색머리의 늘씬한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얇은 빨간 드레스는 풍만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와 길게 뻗은 다리의 윤곽을 한 눈에 들어낸다. 그녀의 꽃향기가 한 번에 나의 들숨을 압도해 버린다. “Hi, I am Valerie. I am Miss Pennsylvania USA 2014!” 정답게 자신을 소개하는 몇 명의 미녀들은 만났지만 발레리처럼 따스한 봄바람처럼 다가온 여자는 처음이다. ‘저런 옅은 갈색 눈을 깊고 그윽해 보이기 위한 눈화장과 긴 머리를 풍성하고 곱슬거리게 하려면 몇 시간이나 걸릴까? 저런 몸을 가지려면 무슨 운동을 얼마동안 해야 저렇게 몸이 섹시할까? 그녀의 부모님은 물론 미남미녀겠지?’ 같은 여자로 궁금해지는 것은 본능인가.
치아가 옥수수처럼 고른 발레리의 입술은 고혹적이고 음성은 메조 소프라노에 가깝다. “저는 피츠버그 대학 졸업 후 마케팅 고문으로 일하고 있어요.” 자기 소개를 하고 나서 잠시 머뭇거리더니 충격적인 고백을 이어간다. “엄마가 19살에 얼굴도 모르는 남자에게 위협받아 강간당해서 제가 태어났어요.”… 어머나, 저런! 정말? 난 놀란 표정을 감추고 침착하고 싶다.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럽고 떨림이 없다. “하나님이 저를 이 세상에 보내신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환경에 구애 받지 않고 살아가도록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불가능한 것은 없다는 희망을 주고 싶어요.” 그런 끔찍한 출생의 비밀을 처음 보는 나에게 전혀 막힘없이 밝히는 그녀의 용기가 대견하고 놀랍다. “여자들이 자신의 몸을 방어하도록 self defense에 대한 캠페인을 하고 있어요. 우리의 몸은 소중하잖아요!” 발레리와 그녀의 엄마는 상상조차 힘겨운 어두운 사실이 자신을 얽매이지 않도록 얼마나 노력했을까. 그녀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손에서 교회에 손에 이끌려 크리스찬으로 굳세고 밝게 자라났다고 한다. 역시 세상에서 찾기 어려운 아름다움은 하늘에서 오는가. 우연하게 만난 그녀를 보고 외모에만 급급했던 자신이 창피하고 부끄럽게 여겨진다. 난 그녀의 반짝이는 눈망울을 한참 바라보다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미스 펜실바니아, 당신은 정말 훌륭하고 대단해요. 행운을 빌어요!
아들과 남편은 하인즈가 사인해 준 볼을 들고 함박 미소로 방송국을 더 둘러보고 출구 쪽으로 걸어간다. 난 특별한 스타들과 만난 후 가슴이 벅차 올라 뒤쳐지다가, 돌아선다. 하인즈는 카메라 테스트를 받는 중이고 발레리는 어느 방송인과 대화를 하고 있다. 인종은 다르나 출생의 굴레와 편견의 허물을 벗어내고 빛나게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눈부시게 다가온다. 하인즈가 숱한 조명을 받자 탄력 있는 몸매와 미소가 더욱 선명해 보인다. 가까이에서 매력적인 미스 펜실바니아의 화려한 왕관이 스튜디오를 더욱 환하게 비추고 있다.
박진희 선생님, 안녕하세요?
양 손에 떡을 쥔 행운의 날이네요.
하인즈 워드와 미스 펜실바니아를 만난 날.
고교시절 교감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나요.
"환경의 지배를 받지 말고 환경을 지배하라."
열악한 환경을 극복한 멋진 분 들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저에게도 특별한 감상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