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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 이태영 작품 7월,2022

중앙일보 - 이 아침에 / 나를 숨쉬게 한 '그 젓가락' / 김영교 4-2-2022

 

봄비가 다녀간 후 그날 따라 뒷정원에 엎드린 나의 흙손이 빨라지고 있었다. 참으로 미안했다. 방심했나, 어쩌자고 이런 일이....봄 정원 손질하다 꽃삽으로 지렁이를 그만 두 동강이를 내고 말았다. 흙 아래 자기 집에서 변을 당한 것이다. 나는 흙을 들쑤셔 화초를 심는 데만 열중했었다. 지렁이 보다 더 놀라 나는 얼른 땅속으로 다시 밀어 넣었다. 두 마리로 살아나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가슴에 미안한 바람이 불었다. 지렁이 절단 사건 후 살았을까 죽었을까 물을 뿌려주면서도 여전히 미안한 견눈질로 화단을 살펴봤다. 

 

이 주택단지에는 앞치마 같은 작은 잔디밭이 차고 양쪽으로 있다. 어느 날 물기 없는 시멘트 바닥을 기어 가고 있는 한마리 지렁이를 발견했다. 잔디밭을 많이 벗어나 메마른 땅을 향하고 있었다. 안타까웠다. 얼른 젓가락을 들고나와 촉촉한 잔디밭으로 옮겨주었다. 적군으로 알고 꼬불어라지듯 꿈틀댔다. 안전지대로 피신시켜주었다. 꿈이나 꿨을까? 나는 안도했다. 

 

인간에게 매우 유용한 동물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 지렁이를 지사부*로 여기게 되었다. 절단사건 후 미안한 마음도 작용했으리라. 수박 껍질, 낙엽 같은 유기물질을 채취한 지렁이 분변토는 땅을 중화시키는 가장 좋은 천연비료라는 걸 이번 기회에 배웠다. 땅속 깊은 서식지까지 운반하여 흙과 함께 먹고 살면서 흙을 파 사방으로 작은 굴을 많이 뚫어서 옥토를 만들어댄다고 하니 참으로 기특하다. 바로 그 분변토가 땅 표면으로 옮겨져 산성화된 땅을 중화시켜 박도가 옥토가 된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매우 비옥하게 되는 그 비결로 지렁이 존재가치가 세상에 알려져 있다. 바로 세균과 효소, 가장 질 좋은 자연비료라고 그 유명한 찰스 다윈도 이미 알고 책까지 저술해 베스셀러가 되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지렁이가 건강하게 살아있는 땅은 그래서 생명이 있다. 누구한테 배우지도 않았지만 미물인 지렁이 생리는 토양 속에 서식하고 있는 많은 생물체들의 환경을 보호해주면서 살아가고 있다. 지렁이는 적을 만나면 대적할 이빨도 없고 찌를 침도  할킬 손톱도 없다. 도망갈 다리도 발도 더더욱 없다. 싸움과는 거리가 먼 평화주의자다. 온갖 공해 물질을 먹어치워서 정화시키고 생태계를 살리고 유지시키는 장한 일을 하고 있으면서 뽐내지도 않는다. 농약과 화학비료 등 온갖 공해 또 도시계획으로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는 인간보다 훨씬 더 유익한 일을 하는 그런 지렁이를 지사부라 여겨도 무난하지 않을까! 두 동강이 낸 내가 이제는 더 미안해 졌다.

 

암이란 어둡고 메마른 일상 속에 나는 갇혀 있었다. 체중이 줄고 면역체계가 비정상이었다. 그때 보도 포장 위로 보이지 않는 젓가락이 나를 집어 올려 건져주었다. 그 때 숨 쉬어졌다.

 

'생명이 오그라들 때

목수 청년이

보이지 않는 젓가락으로 나를 집어 올렸다

그리고 질척한 흙 속으로 밀어 넣고

그때 나는

햇볕 쨍쨍한 시멘트 바닥에서

체액이 말라가는

길 잃은 한 마리 지렁이 였다' - '그 젓가락' 전문 / 김영교시집 '파르르 떠는 열애'중에서

 

이제는 뒷마당 꽃밭 일할 때면 안경까지 쓰고 조심한다. 경험을 통한 배움은 이렇듯 좋은 스승이 된다.

 

<이 아침에> 중앙일보 4-2-2022 (토)

*지렁이 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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