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역귀 / 김영식
미역귀는 귀가 많다. 귀속에 귀가, 그 안에 또 귀가 잔뜩 들어있다. 꺼내도꺼내도 자꾸 나오는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귀가 많다는 건 마음이 선량하다는 것. 귓밥처럼 넓고 두터운 잎을 들추면 속살 깊숙이 갈색의 파도 소리가 켜켜이 쌓여 있다. 소쿠리에 소복이 담긴 미역귀에서 물씬 바다 향이 끼쳐온다.
미역 줄기 위에 달린 씨앗 주머니를 미역귀라 하는데, 통상 한줄기에 한 개씩 열린다. 경상도 사투리로 ‘꾸다리’라고도 하며, 모양은 흡사 탐스럽게 핀 장미나 국화 같다. 마르기 전에는 루비, 마른 후엔 흑요석 색깔과 비슷하다. 갓 채취한 것을 생으로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밥도둑이 따로 없다. 말린 후 무치거나 바삭하게 튀각을 만들어 반찬으로 먹기도 한다.
동해안 구룡포에선 해마다 3, 4월 중에 돌미역을 채취한다. 자연산인 돌미역은 양식미역과 달리 맛이 고소하고 쫄깃하다. 그래서 값이 더 비싸다. 이때쯤이면 뭍이 가까운 연안의 바위 틈새에선 여기저기 해녀들이 테왁을 띄우고 작업하는 광경을 볼 수 있다. 혹한의 겨울 바다에서 자란 미역이 연중 가장 맛있어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어릴 적, 봄이 되면 어머니는 집 근처 해안가로 나갔다. 아직은 꽃샘추위가 남아있어 물에 들어가기도 전에 손발은 얼얼해진다. 종아리까지 차오르는 수심에서 떠밀려온 미역을 건지다 보면 차가운 파도를 뒤집어쓰기도 했다. 두어 시간도 채 안 되어 바구니는 가득 찼다. 집으로 이고 와선 일일이 미역귀를 딴 후, 미역 올과 함께 널찍한 그물 발에 널어 말렸다. 그럴 때면 기다렸다는 듯 야산 중턱엔 산벚이 피어났다.
<동의보감>에 ‘미역은 성질이 차고 맛이 짜며 독이 없다. 열이 나면서 답답한 것을 없애고 기가 뭉친 것을 치료하며 오줌을 잘 나가게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자산어보>에는 ‘부리의 맛은 달고 잎의 맛은 담담하며 임산부의 여러 가지 병을 고치는데 이보다 나은 것이 없다’라고 했다. 중국 당나라 시대 백과사전인 <초학기>에 ‘고려 사람들이 고래가 새끼를 낳으면서 생긴 상처를 미역을 먹으며 치유하는 것을 보고 산모에게 먹였다’는 대목이 나온다고 한다. 생일에 미역국을 챙겨 먹는 것은 우리나라의 고유한 풍속이다.
봄 햇살을 쬐며 사나흘 정도 지나면 미역과 미역귀는 잘 말려진다. 어머닌 가지런히 손질한 후 보자기에 싸두었다가 오일장에 내다 팔았다. 그 돈으로 밀린 육성회비도 내고 가난한 식탁에 고기반찬도 올렸다. 그런 날엔 초가집도 배가 부른지 마파람에 지붕이 더 둥글어졌다.
미역귀는 미역에 비해 점성이 높으며 오돌오돌한 식감을 가지고 있다. 예전에는 부산물로 여겨 식재료로 잘 사용하지 않았다. 최근에야 신진대사와 해독작용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특히 끈적거리는 진액인 후코이단 성분은 암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요즘 부쩍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이순은 논어의 육십이이순六十而耳順에서 나온 말로 나이 예순 살을 이르는 말이다. 불혹과 지천명을 거쳐 온 인생에 경륜이 쌓이고 사려와 판단이 성숙하여 남의 말을 잘 받아들이는 나이라는 의미이다. 어느새 이순의 나이에 이른 지금, 나는 아직도 미역귀처럼 순한 귀를 가지지 못했다. 입과 눈이 귀보다 많아 듣는 것보단 보는 것과 말하는 것에만 치중했다.
고흐는 어느 날, 면도칼로 자신의 귀를 잘라버렸다. <귀를 자른 자화상>은 오른쪽 귀를 붕대로 싸매놓은 그림이다. 고갱과의 불화 때문이라는 세간의 이야기가 있지만, 궁극적으론 자신의 예술을 승화시키기 위한 깊은 고뇌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을까. 세상의 잡다한 소리를 듣지 않고 오직 내면의 궁극에만 집중하겠다는 그의 결연한 의지 앞에 새삼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부처의 귀가 큰 이유는 모든 중생의 생각을 듣기 위함이라고 한다. 인디언 격언 중에는 ‘귀 기울여라. 너의 혀가 너를 귀머거리로 만들기 전에’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듣는 것이 소중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미역귀를 초장에 찍어 먹으며 생각한다. 내 귀가 더욱 많아지고 순해지기를. 그래서 사람과 시詩의 말을 제대로 들을 수 있기를.
좋은수필 2022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