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이 머무는 곳 / 허정진
지난가을, 깃털 달린 새처럼 제절 아래 삐비꽃을 신나게 가꾸더니 어느새 마른 잔디를 외투 삼아 겨울을 나는 무덤이다. 본때 없는 세월 따뜻한 봄날을 꿈꾸듯 산소 하나 지난한 계절을 여닫는다.
일찌감치 시골로 귀향한 덕분에 선산에 자주 간다. 어릴 때는 무섭고 음산했던 곳이 지금은 집 앞 공원처럼 편하고 친근한 장소가 되었다. 엎어 논 밥공기 같다던 어느 시인의 말처럼 갈색 대지 위에 외딴 섬들이 고요 속에 그리움을 소환하고 있다.
거기서도, 여기서도 외로운 세상일 것이다. 조실부모하고, 세상에 등받이 하나 없이 혼자 살아내야 했던 아버지였다. 기댈 곳 없는 생(生)은 그만큼 가족에 대한 사랑과 희생으로 불타올랐다. 언제나 온화하고, 다정다감하고, 부지런한 모습이었다. 아마 지금도 바람결에 자식들 숨소리 놓칠세라 밤마다 하늘길 열고 계실 것이다.
어린 시절, 시골 읍내 외곽으로 이사를 한 적이 있었다. 집은 허름했지만, 마당은 넓었다. 크고 작은 호박돌로 쌓은 돌담이 골목길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었다. 나지막한 담장 위로 하늘은 넓고 새들은 자유로웠다. 아버지는 가내공장과 살림방을 내기 위해 돌담을 헐어내고 아래채를 세워 담장을 대신했다. 집은 대문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바깥에서 보이지 않는 높은 성채가 되었다. 마당에는 연못도 만들고 온갖 꽃나무를 심어 화려한 정원이 되었지만, 하늘은 좁아지고 바람도 길을 잃은 집이 되었다.
돌담이 사라진 그 집에서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바쁘게 사셨다. 일복을 타고난 사람처럼 한 치의 여유도, 촌각의 해찰도 없이 시간에 쫓기며 살았다. 방향보다 속도, 정서보다 합리를 앞세우며 평생을 황소처럼 일했지만, 아버지의 생에 있어서 진정한 행복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그때 그 돌담을 그대로 두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높은 언덕 아버지 곁에 오면 마음이 평온하고 편안해진다. 세상 두려움과 근심 걱정이 일시 멈춤이 된다. 세상살이 투정과 하소연을 해도 뭔지 모를 넉넉함과 위안이 느껴진다. 길 없는 길 걷는 늙은 자식일지라도 세상에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주고, 안아주고, 지켜주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무슨 일이든 물불 가리지 않고 몸으로 막아줄 것 같은, 세상에서 제일 든든한 내 편이라는 생각에 나는 품 안의 어린아이가 되는 순간이다. 그만큼 슬프고, 아프고, 외로운 세상이다.
산소를 자주 찾는 것은 그리움 때문만은 아니다. 잘못한 일이 많아서,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을 어쩌지 못해 용서받는 마음으로 그곳에 간다. 살아생전 한 번도 고맙다는 말 하지 못하고, 자식 된 도리로 호강 한 번 시켜드리지 못한 면구함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산소가 있어 다행이다. 마음에 그리거나 허공을 보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가슴 한편이 허전한 날, 어딘가 다녀올 곳이 있다는 것이 고향을 찾는 것처럼 마음이 편하다. 내 자식은 나와 다르니 후일 한점 바람이 될 생각이지만 그래도 나만은 기일제사와 벌초와 성묘를 하며 신심(身心)으로 아버지를 찾고 싶다.
살면서 힘들고 외로울 때마다 “아버지~”하고 입버릇처럼 불러본다.
<시와소금. 2022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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