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골매 추억
이 종 운
얼마 전 엘에이에서 동쪽으로 약 60킬로 떨어진 인구 17만의 소도시 ‘코로나’로 이사했다. 집에서 자동차로 15분 정도 걸리는 곳에 ‘도스 라고스(Dos Lagos)’라는 골프장이 있다. ‘도스 라고스’란 스페인어로 ‘두 개의 호수’라는 뜻이다. 이 골프장은 서쪽의 클리블랜드 국립공원과 그 동쪽 ‘레이크 매튜 에스텔’ 산 사이에 남북으로 흐르는 계곡을 따라 꾸며진 링크 스타일 퍼블릭 코스다.
이 골프장은 티 박스에도 그늘을 만들어 줄 만한 나무가 거의 없지만, 후반 코스는 길고 평탄한 것이 시원스럽다. 게다가 산비탈에 설계돼 있는 티 박스에 들어서면 방금 거쳐 온 코스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여 마치 구름 위에 서 있는 기분이다. 잔디가 폭신폭신한 솜이불 같아 그 위로 당장 뛰어내려도 몸이 상하지 않을 것만 같고, 파란하늘을 가득 담은 평화로운 두 개의 호수도 풍덩 다이빙하고픈 충동을 일으킨다. 그뿐인가 건너편 서쪽의 클리블랜드 국립공원의 산세가 겨울에는 푸름으로, 여름엔 오히려 메마른 갈색으로 내 안의 자연사랑을 불러일으킨다.
실은 내가 이 골프장을 좋아하는 이유는 두 마리 매 때문이다. 날개를 쭉 편 채 하늘을 나는 매의 활공 선을 따라 보노라면 마치 움직이는 동물이나 사람의 형태를 짧은 시간에 그려내는 속사화(速寫畵) ‘크로키‘처럼 매력적이다. 쏜살같이 내리꽂는 매로부터 찬란한 아침햇살 싱그러운 생명력을 느낀다. 아마도 이들 매의 보금자리가 17번 티 박스 골짜기 어디쯤에 있는 듯하다. 매가 보이지 않아 고개 들어 두리번거리다 홀연히 다시 나타나 우아하게 활공하는 그들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보고 또 보곤 한다. 티샷 차례가 됐는데도 멍하니 그쪽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가 동료의 재촉에 서두르기도 한다.
그런 매가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는다. 오늘도 골프를 치려온 것인지 매를 찾아 온 것인지 하늘을 바라보지만 거기 매는 없다. 종적을 감춘 것이다. 무슨 사연일까. 아주 영원히 날아 가버린 것일까. 그러고 보니 매만 자취를 감춘 게 아니다. 호숫가 바위에 앉아있던 목이 긴 흰 두루미도 보이지 않는다. 떼 지어 다니던 다람쥐나 토끼도 한두 마리만 보일 뿐이다. 골프 카트 의자에 무심코 놓아둔 쿠키를 훔쳐 날아가던 까마귀도 그 수가 분명 크게 줄었다. 빗나간 공을 찾으려 덤불 가까이 다가서는 골퍼의 간담을 싸늘케 하던 똬리 튼 방울뱀도 눈에 띄지 않는다.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가뭄이 계속되는 탓인 게 분명하다.
몇 해 전 부터 북쪽 산 전체를 야금야금 폭파해 불도저로 깎아내려 거대한 계단식 택지로 그 면모를 확 바꾸어 놓은 채석장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매의 보금자리가 있는 동쪽 산봉우리도 차츰 머리 부분이 깎여 사라지는 중이다. 사이렌 소리에 이어 터지는 다이너마이트 폭파소리에 참새도 놀라 날아 가버리곤 한다. 골프장을 에워싸고 있는 산골짜기는 유난히 뾰족하게 드러난 바위들만 돋보여 더욱 황량하다. 먹이사슬의 생태 환경이 바뀐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인지 방울뱀이 출몰하는 골프장 산기슭에 꽂혀있는 똬리 튼 방울뱀 케리커쳐와 경고문이 담긴 표지판이 오늘따라 새삼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이 지역에는 방울뱀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연 공동체의 중요한 구성원입니다. 그들은 공격 하지는 않지만, 방해를 받거나 코너에 몰리면 스스로를 방어 할 것입니다.”
상승기류를 타고 날개를 쭉 편 우아한 매의 모습은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 사랑재골 외갓집 송골매 추억을 끄집어내 주었다. 주말이면 세 살 위형과 나는 십 리 길 외가로 가곤 했다. 외삼촌은 우리 형제를 뒷동산으로 데리고 나가 매로 사냥하는 것을 보여주었고, 우리는 그 매사냥이 신기해서 더 자주 외갓집을 찾았다. 외삼촌은 그 매를 송골매라고 불렀다. 송골매가 꿩과 산토끼를 잡아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형과 나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기만 했다. 산과 들을 이리 저리 뛰어다니던 매사냥은 참으로 신나고 신났다.
한 쌍의 매가 날던 골프장 하늘은 오늘도 그저 한가로이 흐르는 구름뿐이다. 산에는 메마른 나뭇가지와 덤불로 황야 같다. 계속되는 가뭄 속에 여기저기 산불로 아우성이다. 자연 파괴로 이어지는 인간의 외부적 환경 폐해도 문제지만, 그보다 인간의 내면적 환경, 즉 심상이나 정서를 잔혹하게 파괴한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자연의 파괴는 인간의 영혼까지 파괴한다. 인간의 영혼이란 무엇일까. 따스한 기억, 아름다운 기억, 위로되던 기억, 이런 것들이 우리의 영혼을 이루는 요소가 아닐까. 미움과 분노와 상처로 가득 찬 영혼은 죽음이리라.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인간은, 나무든 풀이든 강이든 산이든 곤충이든 짐승이든 각각 포근하고 정겨운 추억이 서려 있는 매개체다. 자연을 파괴한다는 것은 우리가 간직하고 싶은 영혼의 구체적 실물을 영원히 없애버리는 일이다.
그 매가 사라졌다고 확신하는 날, 동료가 내게 물었다. “자네, 어디 아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