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달 / 고경서(경숙)
해풍을 싣고 달려온 트럭들이 시장 입구에 멈춰 섭니다. 길모퉁이를 꺾어 도는 사거리에서 차량 대여섯 대가 노점상을 벌이는데요. 큰 마트를 끼고 있어 자리 쟁탈전이 심하답니다. 이들뿐만 아니라 텃밭에서 키운 싱싱한 푸성귀를 좌판에 놓고 파는 보따리 장꾼들도 많지요. 시장이란 곳이 늘 번잡하고 수선스럽다 보니 하루에도 몇 차례씩 진풍경이 펼쳐지곤 하더라고요.
짐차들은 갖가지 채소나 과일, 계란이나 생선을 파는데요. 시장이나 마트보다 양도 푸지고 값도 저렴해 일찌감치 장사를 끝내는가 하면 남은 물건을 가지고 밤늦도록 시간을 뭉개는 날도 있더라고요. 먹먹한 어둠이 단골처럼 찾아들고, 인적이 뜸할 때까지 자리를 지키는 사이 밤은 오는데요.
아마 그래서일 겁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주차 민원이 들어가는지 불시에 단속반이 출동을 합니다. 노점상들은 생계를 들먹이며 실랑이를 하지만 씨알도 안 먹혀들지요. 결국 다른 장소로 옮겼다가 다시 돌아옵니다. 도로를 무단 점거하는 불법이 생계와 맞장 뜨는 살벌한 곳이지요.
얼마 전부터 트럭 한 대를 힐끔힐끔 훔쳐보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확성기에 카세트를 틀어 시장 주변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잘도 파는데요. “누님, 누님” 객쩍은 소리로 덤을 얹어가며 총총거리는 행인의 발걸음을 멈추게도 하고요. 그런데 제가 말하려는 이 남자는요. 나이가 오십은 훌쩍 넘어 보입니다. 검게 탄 얼굴에 파인 이마의 주름살은 미소나 친절 따위의 상술과는 동떨어진 무뚝뚝한 인상을 풍깁니다. 어떤 꼬랑지 긴 세월이 그를 끌고 다녔는지 다른 상인들처럼 애면글면 손님을 기다리지도, 물건을 못 팔아서 안달하지도 않은 채 밤늦도록 장사를 하는 겁니다. 이 일에 이골이 난 성자 같은 표정을 짓고서요. 내일이 없고, 오늘만 살아가는 사람처럼 말입니다.
그가 길바닥이나 짐칸에 내놓은 물건이란 것도 씻은 고구마나 흙 묻은 감자, 우엉이나 양파, 견과류 등속입니다. 시르죽어도 행인들의 눈길을 잡아끄는 품목이지요. 지루하고 따분한 시간을 한 소쿠리씩 탑처럼 쌓아놓고 팔려가기를 간절히 염원하는 것도 같습니다. 누가 휙휙 가다가 양이 수북하다고, 헐값으로 준다한들 시든 권태나 기다림을 사 가기나 하겠어요?
이 남자는 말입니다. 근처 아파트 너머로 해가 지면 칠이 벗겨진 플라스틱 간이의자에 앉아 개나 쳐다보기 일쑤인데요. 아, 견공이라고 해야겠습니다. 간판도 출입문도 없는 노상에서 오가는 사람들을 멀뚱히 지켜보며 점원처럼 경비를 서고 있으니까요.
어머! 서론이 길었네요. 애완견인지 반려견인지 모를 그 남자의 개를 이야기하려던 참이었는데 말이죠. 한눈에 봐도 누리끼리한 때깔하며 꾀죄죄한 몰골이 혈통이 좋은 품종은 아닌 게 어렸을 적 우리 집에서 키운 똥개랑 비슷하게 생겼는데요. 긴 혓바닥을 내밀거나 머리를 삐딱하게 꼬아 눈알을 끔벅이며 꼬리를 칠 때는 보기에도 가련한 충견입니다.
길바닥에 벌러덩 누워 낑낑거리거나 엉덩이를 흔들면 그는 견공을 끌어안고 장난을 칩니다. 그때서야 이마의 주름살도 펴지더라고요. 삼시 세끼 먹이를 주는 것 같지도 않은데 주인을 향한 복종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마치 자기가 《플란다스의 개》의 ‘파트라슈’라도 되는 양 착각하는 것일까요. 개는 아무리 친하더라도 사람보다 개를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모르나 봅니다. 근데 이 견공은 그렇지도 않은 모양입니다.
남자가 조수석에 앉아 졸고 있네요. 개와 주인의 종속 관계라는 것도 목줄 길이만큼의 구속이나 자유를 허용하면서 상생하는 게 아닐까 합니다. 주인이 개의 목줄을 잡아당기고, 풀어줄 때의 한정된 영역만이 개의 몫일지도요. 그래서 목줄 너머의 세계는 절대 꿈꾸지 않지요. 심심한 말뚝이 견공을 뱅글뱅글 돌릴 때 손님이라도 오면 킁킁거리면서 주인을 깨웁니다. 물건을 고르고 흥정할 때 심드렁하다가도 눈치 없이 컹컹 짖기도 하는데요. 몇 푼 깎으려고 주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 아줌마가 고까웠을까요. 그 소리에 물건이 시들었다고 타박하던 그녀가 잰걸음으로 내빼는 모습이라니요! 이렇게 손님을 놓쳤어도 꼬리만 살랑살랑 흔들면 금방 얼굴에 화색이 돕니다. 인정머리 없는 세상이라지만 서로에게 신경 써 주는 마음이 딱하지 않습니까.
견공의 눈에 잠이 설핏 고이는 서너 시쯤 됐을까요. 호각소리를 앞세우고 단속차가 들이닥치고, 바닥에 깐 물건들을 후다닥 챙겨 싣고 피신한 차량들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2차선 도로를 마주 보는 길가에 트럭 두 대가 전을 막 차리려던 참이었어요. ‘첫 끗발이 개 끗발’ 이라고 했나요. 오늘따라 남자가 찜한 자리가 명당이었는데요. 저만치 멀쑥한 승용차 한 대가 좁은 길을 밀고 들어오는 게 보였습니다. 그가 잽싸게 차에 올라타는 게 아니겠어요. 그리고 접촉사고가 났지 뭡니까. 착시인지 모르지만 제 눈에는 트럭은 제자리에 있고, 승용차가 움직인 것 같았는데요.
경찰이 달려오고, 행인들도 모여들어 꽤나 소란스러웠는데요. 도로는 하얀 스프레이로 칠해지고, 찰과상을 입은 자동차는 사진이 몇 방 찍혔고요. 이 상황을 지켜본 경찰관이 내린 최후의 심판이 글쎄, 이 남자의 과실이랍니다. 누가 후려친 줄도 모르는 따귀를 맞으면 저런 표정일까요. 목에 핏대를 세우고 분통을 터뜨렸어요. 그 소리에 허공도 팽팽히 조여지더라고요. 고래고함을 질러봤자 누가 꿈쩍이나 해야 말이지요. 고막을 찢고 흩어진 아우성들이 장바닥에 뒹굴었습니다.
“나는 죽어도 합의 못 해. 차라리 감방에 처넣어.”
어이쿠, 감방이라는 격앙된 말투에 놀란 견공이 사납게 울부짖고요. 몰래 엿보던 마트 간판도 혀를 끌끌 차며 미간을 찡그립니다. 눈엣가시 같던 뜬구름을 살짝 밀쳐낸 낮달도 혼잣말인 양 내뱉습니다.
‘나처럼 행상이라 어쩔 수 없는 일이죠.’
해풍만 드잡이하듯 바리케이드를 치더라고요. 한바탕 북새판이 벌어진 시장통에서 붉으락푸르락 대거리하는 견공을 구경꾼들은 쳐다만 보고 있었습니다. 컹, 컹컹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