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글라바! / 박금아

 

 

한 나라가 문명국인지, 아닌지의 기준을 정교한 언어를 가지고 있느냐의 여부로 삼았던 적이 있다. 가령 품사의 활용이 다양한 언어를 가질수록 문명화된 민족이라고 여겼는데 프랑스어가 대표적이다

명사마다 성의 구별이 있고 남성과 여성, 단수인지 복수인지에 따라 이름씨를 꾸미는 형용사의 형태가 바뀔 뿐 아니라 동사 활용 또한 섬세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인칭과 수(數), 성(性)에 따라 동사가 다르게 변화한다는 사실로도 말의 품격이 느껴졌다. 시제 또한 단순히 현재, 과거, 미래형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과거와 미래 안에도 여러 형태가 있어서 일이 일어난 시점이나 지속 정도에 따라 복합과거, 반과거, 대과거 등으로 나뉘고, 진행 순서나 확실성 여부에 따라 단순미래, 전미래 등으로 갈라지는 식이다. 이렇듯 촘촘한 시제 구분에서도 프랑스인들의 언어에 대한 극진한 마음을 보는 듯했다.

그러나 이 생각은 미얀마를 다녀오고부터 바뀌었다. 활용이 단순할수록 하나의 말이 품는 의미가 그만큼 넓고 깊을지도 모른다는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되었다. 미얀마를 여행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밍글라바!”였다. 처음 만나 나누는 인사는 물론이고, “사진을 찍어도 될까요?” 하고 동의를 구할 때도, 길을 물을 때도, 시장에서 물건의 이름이나 값을 물을 때도, 비싸다고 깎아 달라고 할 때도 “밍글라바!” 한마디면 통했다.

미얀마 중부도시 아웅반의 한 가정에 초대되어 간 적이 있다. 녹차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 부부와 두 아들 내외가 사는 집이었다. 젊은 여인이 가게 입구에서 우리를 맞았다. 그 집 둘째 며느리였는데 갓난아기를 안고 있었다. 아기는 포대기에 싸여 곤히 잠들어 있었다. 입가에 달린 신비스러운 미소라니……. 아기를 내려다보는 엄마의 입가에 달린 웃음빛도 똑같았다. 아가가 금세라도 눈을 뜨고 나를 향해 “밍글라바!” 할 것 같았다.

최빈국에 속하지만 기부 지수는 세계 1위라는 나라에 사는 사람들의 미소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갖고 태어나는 모양이었다. 미얀마 사람들을 일러 ‘천년의 미소’를 간직한 사람들이라고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혼인 잔치 때는 식장 앞을 지나는 사람이면 이방인까지 초대해서 음식을 대접하고, 길손들이 마실 수 있도록 길거리마다 나무 선반을 만들어 물독을 올려두고, 식당에서는 식사를 하지 않더라도 쉬어갈 수 있도록 찻잔과 녹차 주전자를 놓아두는 배려의 미소였다.

아기 엄마에게 아기를 가리키며 “밍글라바?” 했다. 태어난 지 몇 달 되었냐고 묻는 뜻인 줄을 어찌 알았는지 집게손가락 한 개를 들어 보이고서는 고개를 살짝 옆으로 누이며 가로젓는다. 갓난아기인 것으로 보아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다는 말인 듯했다. 그리고는 벽에 걸린 여자 인형을 가리키며 쌩글거린다. 품속 아기가 딸이라고 하는 말이었다.

온 가족이 함께하는 저녁이었지만 좀처럼 이야기라고는 없었다. 사람의 내면을 온전히 나타낼 수 있는 말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진즉에 깨우친 사람들 같았다. 마음길이란 하도 아득하여 담으려고 하면 할수록 본래의 자리에서 멀어진다는 것을 다 아는 듯 말이다. 미소로만 한 상 가득 차린 식탁이었지만 오만 가지 말이 들려왔다.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드세요. 무척 덥지요? 한국에는 사계절이 있다지요? 겨울엔 눈이 내린다고요? 잘 쉬었다 가세요, 부처님께서 당신을 축복하시기를요…….’

나도 전염이 된 모양이었다. 미얀마를 여행하는 동안 실실 웃는 버릇이 생겼다. 사람을 만나면 눈가에 조롱조롱한 미소부터 맺혔다. 무슨 말을 할지 마음먹기도 전에 속웃음이 쳐지면서 “밍!” 하는 말이 쫓아 나왔다. 짧은 사이, “글!” 하면 어느새 입꼬리가 완두콩 꼬투리처럼 올라가고, “라!”에서는 노래하는 듯한 표정이 되면서 눈꼬리에 달려 있던 웃음 망울이 또르르 굴러 내렸다. 끝말 “바!”를 발음할 때는 잘 여문 웃음 씨앗이 톡톡 터지는 경험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와서도 한동안은 구꿈맞기 일쑤였다. 무심코 있다가도 집안일을 하거나 길을 걷다가도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되뇌곤 했다. “밍글라바!” 하고 입술을 달싹이기만 해도 순박한 낯빛이 떠오르면서 누군가에게 인사를 건네고 싶어졌다. 그러면 입을 동그랗게 벌리고서 상대를 향해 눈을 활짝 열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축 처져 있던 마음속 근육 한끝이 살짝 당겨 올라가면서 이내 속 자글자글한 주름이 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 말을 떠올리면 가슴 한쪽이 무겁다. 2021년 2월에 미얀마에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고, 민주화를 향한 시민들의 불복종 운동 소식이 들려오면서다. 미얀마 소식을 전하는 텔레비전 화면에서는 이제 그 선한 웃음을 찾을 수 없다. 거리의 시민들이 펼쳐 든 ‘세 손가락 인사’*에서 수천수만의 웃음기 가신 “밍글라바!”를 들을 뿐이다.

 

*영화 ‘헝거 게임(The Hunger Games)’에 나오는 독재 저항의 표시. 오른손의 검지, 중지, 약지 세 손가락을 세워 머리 위로 들어 올린다.

 

<수필과 비평 2022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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