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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문학평론가
칭찬은 고래도 웃게 한다지만 가족의 사랑과 격려의 힘이야말로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IMF로 어려움을 겪던 때 가장이 함께 그 고통 속에 있으면 그걸 이겨냈지만 가정이 무너지면 삶도 무너져버리던 것을 참 많이 보았다. 부모가 자녀의 힘이 되어주는 가정, 아내가 남편의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는 가정, 자녀가 부모의 희망이 되어주는 가정은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는 힘이었다.
한 때 ‘아빠 힘내세요!’라는 노래로 수많은 부모들이 힘을 얻었다. 주저앉을 수밖에 없을 때도 ‘아빠 힘내세요’ 하는 어린 자녀들의 노래는 세상의 어떤 힘보다도 더 강하게 아빠들을 일으켜 세웠고 힘 풀린 다리로도 일어서게 했고 비틀거리면서도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세계적인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2007년 7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런 그에게도 무명 시절이 있었는데 큰 음악회가 열리던 날 유명한 음악가가 갑자기 출연을 못 하게 되어 그 자리를 무명인 그가 메꾸게 되었단다. 관객들은 그의 노래 실력은 들으려고도 않고 이름 없음만을 생각하며 관심도 가져주지 않아 관중석은 썰렁하기 그지없었단다. 본인조차 당황하고 있는데 멀리 무대 뒤쪽에서 박수소리와 함께 “아빠 최고예요!”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 아이가 너무나 열심히 박수를 치며 ‘아빠 최고예요’를 외쳐대자 그 주위의 관객이 하나 둘 따라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그 박수는 온 극장을 울리는 박수로 변하면서 썰렁하기만 하던 파바로티의 무대는 순식간에 엄청난 감동의 무대로 바뀌어버렸단다.
파바로티는 훗날 ‘그날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라고 회고했다. 그게 가족의 힘일 것이다. 가족은 희망이고 그 희망의 힘이 곧 생명의 힘인 것이다. 고기가 물이 없으면 살 수 없듯 희망이 없으면 살 수 없는 게 사람이다.
‘사람은 음식 없이는 40일, 물 없이는 4일 공기 없이는 4분밖에 생존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희망이 없으면 단 4초도 살 수 없다.‘고 존 맥스웰도 말했다.
K그룹에서 물러난 J사장은 다음 날부터 갈 곳이 없었다. 그래도 어제와 같이 집을 나섰다. 양복주머니에 빵 하나씩을 사서 넣고 무작정 걸었다. 퇴근 시간에 맞춰 집에 들어가길 며칠째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오늘은 아내에게 얘길 해야지 하면서도 머뭇거리고 있는데 아내가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더니 자기도 같이 나가겠다고 하더란다. 둘은 말없이 한 시간도 넘게 걸었고 언제부터인지 아내의 손이 그의 손을 잡고 걷고 있었다. 아무 말도 안 했지만 둘이는 수많은 말을 나눴고 그날부터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서로에게 힘이 되어준다는 것만큼 아름다운 일도 없을 것이다. 서로가 든든한 기둥이 되어주는 것만큼 힘이 되는 것도 없을 것이다. 서로를 영혼의 숫돌로 삼아 서로 갈고 닦아 서로에게 잘 맞는 존재로 만들어져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일일 것이다.
사실 이만큼의 내 삶도 지나고 보니 내 힘으로 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어느 것 하나도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던 순간도 여러 번이었지만 그때마다 누군가가 도움을 주었다. 누구에게나 삶의 전환점이 될 ‘그날’이 있었다. 오늘이 있다는 것은 그날을 이겨냈다는 말이 된다.
매사는 마음먹기에 달렸다지 않던가. ‘자살’을 거꾸로 읽으면 ‘살자’가 되고 ‘내 힘들다’를 거꾸로 하면 ‘다들 힘내’가 되는 것 처럼 어려운 한순간을 지나 그날을 추억하는 날이 되게 하는 것도 각자의 힘이었다기보단 함께의 힘이지 싶다.
가족이건 친구건 이웃이건 서로 손 내밀어 격려하고 힘을 보태준 그것들이 오늘을 만들었음이다. 그래서 지난 것은 아름다워지는 것 아니던가. 오늘의 나는 지난 모든 어려움을 이겨낸 승리자이지만 지난 그 날이 있었기에 오늘에 감사하고 감격하는 삶이 되고 있음이지 않는가. 말 하자면 우리에겐 ‘그날이 없었더라면’ 같은 ‘그날’이 있었기에 오늘이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최원현 nulsaem@hanmail.net
사)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사)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한국수필창작문예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