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너라는 선물! / 정조앤
올 12월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모든 행사와 모임은 물론이고 가족 모임도 취소됐다. 때마침 백신이 나와서 이미 접종을 시작했다는 소식이 반가웠지만, 한편으로는 섭섭하기 그지없다. 한집에 사는 식구 외에는 만나지 말라는 방침이 옳은 줄 알면서도 세상이 얄궂다.
쓸쓸한 집안에 따뜻한 온기로 가득 채우고 싶다. 창고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성탄 트리와 소품 상자를 꺼냈다. 키 높은 트리를 세우고 전구 줄을 두르고 크리스마스 장식품을 매달았다. 전기 스위치를 누르는 순간 작은 불빛이 하나둘씩 반짝이며 주위를 환하게 밝혔다.
크리스마스이브 오후 무렵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찾아올 사람이 없을 텐데 누굴까. 남편이 흥분된 목소리로 작은아들이 왔다며 이층을 향해 소리친다. 나는 서재에 있다가 황급히 계단을 내려갔다. 녀석을 보자마자 와락 부둥켜안았다. 얼마 만인가. 재작년 크리스마스 때 가족 모임에서 본 후로 올해 처음 보는 얼굴이다. 그동안 여러 번 집에 다녀가라고 연락하면 오케이! 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어느 때라도 불쑥 나타나서 엄마에게 어리광을 부리면 오죽이나 좋을까마는, 어린 시절의 개구쟁이 그 모습은 어디로 갔나.
작은아들은 어릴 때부터 개성이 남달랐다. 그 집 둘째 아이를 주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한번 NO! 하면 끝까지 NO! 하는 아이다. 초등 2~3학년 때였다. 여름방학을 맞아서 교회 주일학교에서 빅베어로 캠프를 갔다. 점심으로 쌀밥 위에 짜장면 소스를 얹어 줬는데 맛을 보기도 전에 새카맣고 이상하다며 손사래를 쳤단다. 담당 교사들의 설명에도 귀를 막고 있는 아이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다. 그 일로 더욱 기분이 상해서 저녁 식사를 굶었다고 한다.
아이의 대쪽같은 성격에 미용사가 혀를 내둘렀던 적이 있다. 아들의 두상을 보더니 너는 이런 머리가 잘 어울리겠다며 모델 사진을 보여줬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씩씩대며 문을 나서더니 큰 도로로 향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뒤쫒아 나가서 네가 원하는 머리를 하면 된다고 설득해도 엄마와 눈을 맞추지 않고 그대로 네 블록을 걸어서 집으로 갔다. 승용차를 몰고 뒤따르며 제발 차에 올라타라고 애원해도 꿈쩍하지 않던 아이였다. 나중에 안 사실은 머리 스타일 모델이 미국 꼬마 배우였는데 보는 순간 무조건 싫었단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패션 스타일에 관심이 많고 위트가 넘치는 아이로 인기가 많았는데.
남편은 자신의 의견을 딱 부러지게 말하는 아들에게 사사건건 말대꾸한다며 호되게 꾸짖었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아들은 아빠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들은 세대 간의 문화적인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갈등의 골이 생겼다. 아들은 직장을 다니게 되면서부터 일찌감치 집에서 독립해 나갔는데 이유는 아빠와 집안에서 마주치기 싫다는 것이다. 나는 묵묵히 기다려 주는 것밖에는 달리할 방법이 없었다. 나이가 들면 생각이 깊어져서 부모의 사랑은 한없다는 것을 알게 될 날이 올 것이라 믿었다.
오랜만에 보니 의젓하다. 아들은 우리를 향해 하얀 이를 드러내며 멋쩍게 웃는다. 무슨 좋은 일이 있는 모양인데 표정이 예전과 달리 부드럽다. 집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현관 밖에서 손짓으로 길가를 가리킨다. 순간 아들의 어깨너머로 하얀색 세단이 한껏 멋을 부리고 주차돼 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T 브랜드 전기 차가 이닌가. 타고 싶은 차종 1순위라고 노래를 부르더니 결국 장만했나 보다. 몇 시간 전에 딜러에서 아들이 사는 아파트로 차를 배달해 주었는데 뿌듯한 마음에 엄마, 아빠에게 자랑하고 싶어 달려왔단다. 노심초사 걱정하는 부모를 향해 나는 잘 살고 있으니 이제는 걱정하지 마시라는 무언의 행동이었다. 우리는 아들의 속 깊은 마음에 감동되었다. 첫 시승자가 되어 기분 좋게 아들 차에 올라앉으려는데 아뿔싸! 손잡이가 보이지 않는다. 어리둥절하며 촌스럽게 행동하는 우리 모습을 보고 아들이 키득키득 소리 내어 웃었다. 여기를 누르면 된다며 감추어진 부분을 보여준다. 아들이 운전하는 차에 몸을 싣고 드라이브에 나섰다.
테크롤로지(technology)가 접목된 터치스크린과 디지털 계기판, 그리고 스티어링 휠 컨트롤이 미디어, 내비게이션, 통신, 실내 제어 및 차량 정보와 끊김 없이 연결되어 있어서 편리한 점이 무수히 많다고 한다. 무엇보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듯이 터치를 하니까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만족감이 크단다. 게임과 비디오 서비스에 접속하면 바로 화면에 뜬다니 차세대 차종인 것이 분명하다. 나는 엄지를 치켜세웠다. 아들, 최고!
남편이 콧노래를 부른다. 그동안 서먹했던 아들과의 관계가 좋아졌음을 가슴으로 느끼는 중이다. 그날 아들을 얼싸안고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앞으로 자주 얼굴을 보자고 부드럽게 말을 주고받는 부자의 모습을 보았다. 나는 감격에 겨워 그만 울컥했다. 두 아들의 생일이 일주일 간격으로 곧 다가오기에 무심한 남편의 옆구리를 찌르며 아이들에게 전화하라고 부추겼다. 그는 “너희들 생일은 아빠가 책임질게!” 라며 호탕하게 웃으며 말한다. 이제야 내 마음이 편하다.
성탄절 이브에 찾아온 작은아들과의 시간을 회상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우울한 시기에 아들은 우리에게 가장 기쁜 선물을 주었다. 바로 너라는 선물!
자식은
부모에게는 선물입니다.
보는 것 만으로도
행복해지지요.
보고 또 봐도 보고 싶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