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이희숙



  어릴 적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라는 놀이를 했다. 술래가 "무궁화꽃이 ..." 외치며 눈을 감고 있으면 우리는 몰래 발걸음을 떼어 술래에게로 다가갔다. 구호가 끝나면 부동 상태로 정지해야 하는데 이때 동생은 움직이는 모습을 술래에게 들켜 잡히고 말았다. 잡힌 동생은 술래 옆에서 내가 구출해 줄 때를 기다렸다. 동생을 구해주어야 하기에 숨을 죽이고 민첩하게 움직였다. 기다린 끝에 손을 터치해 구해내면 우리는 흥분하여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이 게임이 넷플릭스 미디어를 통해 서바이벌 드라마 '오징어 게임' 9부작으로 제작되어 역대 최고의 흥행을 기록하다니. 전 세계를 아우르는 파급력으로 인해 놀라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 어린이도 같은 놀이를 즐겨한다. 'Freeze, Go, Stop' 하며 지시에 따라 행동하는 얼음 놀이다. 요즈음 우리가 바로 이 게임을 하는 듯하다. 일상생활이 얼음 상태로 모든 것이 멈춘 상황이라고 할까.

  20203월에 코비드 19 대응 긴급 행정명령이 시행됐다. 미국 전역에서 "자택 대피령이 발령되어 재택근무를 실행했고 집안에서만 생활해야 한다. 학생을 대면하지 못하는 딸은 새벽부터 학생을 위한 온라인 수업 준비에 바쁘다. 화상채팅으로 교사와 회의를 하고 학부모와 카운슬링을 한다. 손녀딸도 피아노 레슨을 화상으로 받는다.

 

  집회와 모임이 취소되고 전화와 카톡이 큰 역할을 하며 안부를 묻고 대응책에 대한 정보를 받는다. 몸이 조금 이상하면 "내가 전염병에 걸린 게 아닐까?"라고 코로나 신드롬 증상을 보인다. 65세가 넘은 나는 면역성이 약한 노약자로 분류되어 자녀로부터 마켓까지 출입금지령이 내려졌다. 우리 20여 명 가족은 할머니 추모 예배를 화상채팅으로 드린다. 이웃에 대한 배려라 생각하며 우리 가족이 솔선수범하기로 한다.

더욱이 양로병원(Nursing center)이 문을 닫았던 사실은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면역성이 가장 약한 어른을 보호하는 차원임을 이해했지만, 뇌졸중으로 쓰러져 혼자 음식을 잡수시지 못하는 엄마를 방문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딸을 인식했는지 엄마는 황급히 본향을 향해 떠나셨다.


  유독 겨울이 춥고 길게 느껴진 탓에 몇 년 전에 가졌던 워싱턴 DC 방문을 회상한다. 포토맥강 주변 벚꽃이 만개하는 시기를 잡아 계획을 세웠는데 3월 초에 꽃봉오리를 터뜨리던 벚꽃이 갑자기 몰려온 강추위에 얼어 죽었다는 가슴 아픈 소식을 들었다. 벚꽃을 볼 수 없다면 일정을 연기할까? 망설이다 비행기표와 호텔을 취소하기가 번거로워 그냥 추진하기로 했다.

 

  그런데 웬일인가. 예상치 못한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한 3월 말, 워싱턴 대통령 기념관과 국회의사당은 벚꽃에 휩싸여 있었다. 포토맥강 주변은 꽃잎이 흩날리며 연분홍 물결로 출렁였다. 수줍은 몸짓으로 만개한 벚꽃을 바라보며 내 몸도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못했다. 기대하지 못했던 일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게 아닌가. 기념 카드에서 보았던 풍경에 카메라를 쉬지 않고 눌러댔다. 일부러 벚꽃 나들이를 계획한 셈이 되었기에 화사한 빛 그늘에서 나는 소녀처럼 즐거워했다. 나뭇가지 아래에서 꽃비를 흠뻑 맞으며 강물을 바라보았던 시간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3월 초에 불어 닥친 갑작스러운 추위에 꽃봉오리는 얼어 떨어졌지만, 옆 가지에서 새로운 순을 틔워 꽃잎을 피운 것이었다. 새 가지에서 연한 순은 돋는다.

 

  재빠른 백신 개발로 모임이 활기를 찾는 듯싶더니, 강도 높은 변이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긴장을 놓지 못한 채 또 한해도 지나간다. 3, 4차 부스터 백신을 개발하고 술래에게 계속 접근하면 언젠가 바이러스에 사로잡힌 사람을 구출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자유롭게 포용하며 보고 싶은 얼굴에 뺨을 댈 수 있길 그린다.

우리 일상도 'Go' 제자리로 돌아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