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음식

                                                                                                                                                이희숙

 

  내가 운영하는 어린이 학교를 졸업하며 떠나는 외국 엄마의 질문이다. "프리스쿨에선 잘 먹는데, 집에서 내가 해주면 안 먹어요. 이제 공립 킨더가든에 진학해서 점심 도시락을 싸 주어야 하는데 샌드위치 속에 어떤 재료를 넣었어요?"라고 묻는다. "우리 애가 집에서 Black Noodle (짜장면)을 만들어 달라고 하는데 무엇을 어떻게 요리하는지 가르쳐 주세요" 학부모들은 유치원에서 먹는 음식 메뉴의 요리 과정과 사진을 부탁한다. 졸업 후에도 프리스쿨에서 먹던 음식을 그리워하는 학생의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한다. 많은 사람은 어렸을 때 먹던 음식을 좋아한다. 입맛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어릴 적에 공무원인 아버지의 빈번한 전근 덕분에 농촌에서 전원의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었다. 동네 언니를 따라 들과 언덕을 다니며 나물과 쑥을 캐곤 했다. 풀도 나물인 줄 알고 바구니에 집어넣어 혼나기도 했다. 하얗고 포동포동한 줄기의 쑥을 캐면 바구니 속은 기쁨으로 꽉 찼다. 엄마는 내가 캐온 쑥을 자랑스럽게 쌀가루와 버무려 시루에 쪄서 쑥버무리를 만들어 주셨다. 부드러운 쌀 속의 쑥의 향기가 입안을 가득 채웠다. 쑥의 양이 많은 날은 쑥개떡을 만드셨다. "하필 이름이 왜 개떡이야?"고 웃곤 했다. 비가 오면 엄마가 부쳐주던 김치부침개는 고향의 맛으로 떠오른다. 지글지글 튀겨지는 부침개의 바삭한 맛은 창에 튀기는 빗방울과 어우러져 감칠맛이 났다. 지금도 비가 오면 그리운 맛이 되어 프라이팬을 꺼낸다.

 

  아버지는 담 밑에 구덩이를 파고는 삽질이 끝나면 호박씨를 심었다. 노란 호박꽃을 피우고 호박을 맺으면 둥그런 호박보다 더 큰 알차고 기쁜 열매가 매달렸다. 엄마는 넓적한 호박잎을 따서 끓는 밥 위에 얹어 찐 후 그 잎에 된장을 발라 쌈을 싸 주셨다. 첫아이를 임신해 입덧으로 밥을 못 먹을 때 나는 그 맛을 엄마에게 요청했다. 약으로도 해결할 수 없던 입맛을 돋우어 주었던 고마운 음식이다.

 

  내 나이 20대에 초등학교 어린이와 같이 생활했다. 추운 겨울엔 조개탄을 교실 난로에 피우는 것은 경험이 적은 여교사에게 어려운 과제였다. 잘 붙지 않는 조개탄의 연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며 콧속은 검게 그을렸다. 불이 발갛게 달아오르면 어린이가 싸 온 노란 도시락을 난로에 기술 좋게 쌓아 올려 데웠다. 데워 먹는 재미에 아이들도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태우지 않게 도시락의 위치를 바꿔 줘야 한다. 노르스레 구워지면 구수한 냄새가 교실에 진동했다. 그것이 점심시간을 기다리는 이유가 되었다. 추억의 도시락은 그렇게 탄생했다.

 

  명절과 더불어 설날에 방앗간 앞의 줄은 길었고, 엄마와 함께 물에 불린 쌀 양푼을 머리에 이고 순서를 기다렸다. 김이 모락모락 나며 가늘게 빠져나오는 가래떡을 보면 침을 꿀꺽 넘기며 참을 수 있었다. 부드러운 흰 살을 드러내며 길게 늘어지는 자태에 매혹되어 우리는 추위를 이겼다. 가래떡을 길게 나란히 눕혀 참기름을 발라 조청에 찍어 먹으면 별미였다. 지금의 어떤 산해진미가 그 맛을 낼 수 있으랴.

며칠 후 물기가 마르면 예쁘게 잘라 떡국으로 끓여 먹었다. 사골을 오랜 시간 고아 우린 뽀얀 국물에 고명을 얹은 떡국은 우리 고유 명절의 상징 음식이었다. 한 그릇을 먹으면 한 살이 많아지는 기쁨을 함께 얻으면서 말이다.

먹다가 남은 말라버린 떡은 뻥튀기를 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뻥이요!" 하고 외치는 아저씨 소리와 함께 떡은 크게 부풀려 튀어나왔다. 소리를 듣고 많은 동네 아이가 몰려와 환호했고 골목은 웃음으로 꽉 찼다. 과자가 흔치 않던 시절의 재미있던 간식으로 기억한다. 세월이 흘렀어도 추억의 떡국으로 난 여전히 즐겨 먹는다.

 

  주말에 흥겨운 축제가 열렸다. 626 Night Market에서 눈에 익은 한글 사인이 있었다. '엄마 손맛 : Designer inspired by the love that surrounds me'

한국 2세가 어렸을 때 엄마가 만들어 즐겨 먹던 음식을 그림과 카드를 통해 외국인에게 소개했다. 그 소녀는 정성으로 빚어진 음식을 먹고 성장했다고 자랑스럽게 사진을 가리켰다.

엄마는 음식을 맛있게 먹는 가족을 볼 때 행복하다고 하셨다. 잊을 수 없는 음식이 우리를 추억 속으로 인도했다. 사랑으로 버무려진 엄마의 손맛이기에. 추억의 음식에서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