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꽃, 꽃 바다 / 정조앤
따스한 바람과 함께 봄이 성큼 다가왔다. 4월이 되면 남가주의 초원지대에는 들꽃의 항연이라 불릴 만큼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핀다. 눈을 유혹하는 드넓은 꽃 바다로 달려갈 생각에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LA에서 북쪽으로 약 3시간 운전해 가면 샌 루이스 오비스포 카운티의 카리조 평원(Carrizo Plain National Monument)이 나온다. 길이 50마일 넓이 15마일의 제주도 면적 절반 남짓하다. 그 지역은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양지바른 땅인 동시에 악명 높은 샌 안드레아스 지진대가 지나가는 곳이다.
나지막한 산으로 둘러싸인 광대한 초원은 카리조 평원만이 가진 신비스러운 풍경으로 우리를 맞았다. 야생화 종류는 수십 종에 이르지만 노란 바다를 연상케 하는 골드필즈(goldfields)가 단연 돋보인다. 멀리서 보면 끝없이 펼쳐진 초록 캔버스에 노란 물감을 흩뿌려놓은 듯하다. 가까이 다가서면 청빛 파셀리아(phacelia)와 보랏빛의 피들넥(fiddle neck)과 불루 딕(blue dick), 오울 크러버(owl clover)가 어우러져 꽃물결로 출렁인다.
들판 한가운데 소다 레익(Soda Lake)이 있다. 수백만 년 전 바다의 물길이 막혀 생긴 천연 소금호수다. 겨울철에 비가 오면 물이 고이고 여름에 물이 마르면 소금밭으로 변한다. 호수가 하얀 소금으로 덮이는 모습이 베이킹소다를 뿌려놓은 것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하얀색과 화려한 꽃 무리의 조화로움에 넋을 놓고 바라본다. 소다 레이크가 내려다보는 룩오버 힐(Lookover Hill) 언덕에 올라서면 끝없이 펼쳐 보이는 카리조 대평원을 백팔십도 방향으로 감상할 수 있다. 그곳에는 베이비 블루 아이(Baby Blue Eye) 가 지천으로 깔렸다. 꽃들 사이에서 키재기를 하듯이 발돋움하는 모습이 앙증맞다.
사방천지가 꽃, 꽃, 꽃 바다를 이루고 있다. 나는 꽃 멀리에 정신이 혼미하다. 여기가 지상에서 손꼽을 만큼 아름다운 천상의 화원이라 여겨질 만큼. 그들과 눈높이를 맞추려고 자세를 낮추며 곁으로 다가갔다. 바람결에 꽃잎이 나풀대며 콧잔등을 간지럼 태우며 살포시 입맞춤한다. 나의 영혼은 새가 비상하듯 들녘을 누비는 환상에 젖었다. 푸르른 하늘 위로 떠다니는 솜털 구름 따라 날기도 하며 한 마리 나비 되어 꽃잎에 사뿐히 앉는다.
꽃내음을 맡으며 사잇길을 걷는다. 거닐다 보면 도화지가 없어도 스스로 화가가 될 수 있으며 오선지가 없어도 절로 노래가 나온다. 친구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즐거운 한나절을 만끽하고 있다. 누군가가 기억에 남을 인생 샷을 찍자며 손을 잡아끈다. 서로 질세라 멋스러운 모델 포즈를 취하며 카메라를 바라본다. 앳된 열일곱 살 소녀들이 되어 굴러가는 소똥만 보아도 깔깔대며 웃었던 추억을 회상하며 웃음잔치를 벌였다. 이런 소소한 것들에서 행복을 찾는다.
들녘의 작은 꽃들은 자연의 리듬에 맞추며 살고 있다. 누군가의 발에 짓밟혀도 원망 없이 훌훌 털고 일어나는 모습을 보았다. 묵묵히 제 갈 길을 가는 고고함까지 지녔다. 세상에 사는 동안 가르침을 받아야 할 스승이 많다. 더불어 자연에서 얻는 가치는 무한하다.
꽃은 미소로 답한다. “나는 그대의 기쁨을 위해 피어납니다.”라고.
정조엔 선생님 글을 읽다보면 벌써 봄이 온것같은 ... 꽃바다에 흠뻑 젖어들고 싶어집니다.
화창한 봄을 느끼고 갑니다. 고맙습니다.